1화. 아빠의 어린 시절
초딩 딸아이가 물었다.
"아빠 아빠! 전에 차에서 해줬던 거, 아빠 어린 시절 이야기! 또 해줘!!"
말간 얼굴로 침대에 누운 채 엄마, 아빠의 굿나잇 인사를 기다리던 여덟 살 딸아이가 엄마, 아빠를 5분이라도 더 제 방에 붙잡아두려고 오늘도 어김없이 묘수를 쓴다.
밤 9시 10분.
나는 평일의 피로함이 온몸에 덮쳐와 이제 그만 침대에 드러누워 핸드폰이나 보며 쉬고 싶은 마음이 간절하지만, 아이의 반짝반짝 기대하는 눈빛과 이대로는 절대 곱게 잠들지 않겠다는 의지에 찬 얼굴을 보자 이내 포기하곤 이야기를 시작한다.
아내는 어느새 슬쩍 아이방을 나가 제 할 일을 하고 있다.
"음.. 저번에 어디까지 얘기했더라? 아, 그렇지. 아빠 어릴 적 살던 집 옥상에서 닭 키우던 이야기까지 했었나?"
"응. 맞아 맞아!! 완전 재밌었어. 그 닭 이야기! 어떻게 강아지도 아니고 고양이도 아니고 집에서 닭을 키워?? 크하하"
"그러게. 그땐 아파트가 아니라 몇 층 짜리 작은 건물에 딸린 방에 살았었는데. 옥상이 있는 게 그래도 참 좋았지. 아파트에 살면 할 수 없는 것들도 이것저것 할 수도 있고.
거기가 부산에 있는 전포동이라는 동네인데, 지금은 거기가 완전히 바뀌어서 온천천 부산 할머니집처럼 카페들이랑 술집이랑 많이 많이 생겼다더라. 그런데 아빠가 어릴 때 살 때에는 아무것도 없는 그냥 부산의 어느 뒷골목이었지. 전포동 뒷골목."
아이는 내 이야기를 한참이나 더 듣다가 겨우 나를 안방으로 보내주었다.
마흔이 다 되도록 나름 열심히 살아왔는데 최근에 아이에게 내 어린 시절 이야기를 해주기 시작하면서
삼십 년 정도 기억 저 뒤편에 묻어만 두었던 부산에서의 희미한 기억들이 떠오르기 시작했다.
'국민학교'가 '초등학교'로 바뀐 후 두어 해를 더 초등학교를 다녔던 나는 그 시절 즈음에 부산 감만동에서
전포동으로 이사 갔다. 부모님의 숙박업 사업이 조금 잘 되기 시작하여 돈을 좀 모으셨고, 허름한 여관 뒷방을 벗어나 신축 건물로 세를 들어 이사를 갔는데 거기서도 부모님은 숙박업을 이어하셨다.
그놈의 지긋지긋한 모텔.
지금에서야 모텔이란 이름으로 많이 불리지만 옛날엔 여관 또는 여인숙이란 이름으로 불리던, 지금에 봐서도 그 이름이 썩 더 잘 어울리는 허름한 곳들이었다. '여기어때'나 '야놀자'어플에는 절대 검색되지 않을 허름한 모텔.
외동아들인 나는 학창 시절 내내 부모님이 숙박업을 하시느라 거의 방치하다시피 하여 키워졌다. 귀한 외동아들이었지만 살뜰한 보살핌을 받지는 못했고, 오히려 숙박업이라는 특성상 부모 둘 중 하나라도 반드시 사업장을 지키며 밤낮없이, 주말 없이 일해야 했기에 가끔 부모가 모임 약속이나 급한 볼일이라도 있을 때면
어린 나이에 카운터에 혼자 내던져지기까지 했다.
"오늘 학교 마치면 바로 와! 엄마아빠 어디 가야 해!"
"민준아! 엄마, 잠시 요 앞에 볼일 좀 보고 올게. 카운터 잠시만 앉아있어!"
하는 말을 늘 듣고 자라서 어린 마음에 친구들과 마음껏 놀지도 못하고 심지어 자주 억울하기까지 했다. 작고 어두운 택배상자 안 같은 모텔 카운터에 갇혀있다고 느껴졌다. 나는 늘 갑갑하고, 짜증 나고, 저 밝은 세상에 나가 동네 친구들이랑 더 많이, 더더더 많이 놀고 싶었다.
나는 늘. 탈출하고 싶었다.
마음껏 돌아다니고, 마음껏 놀고, 마음껏 친구도 만나고, 부모로부터, 이 갑갑하고 좁은 방으로부터 탈출하고 싶었다.
그것이 내 좁고 어두웠던 어린 시절의 가장 강력한 기억이다.
-다음편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