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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식빵 Jul 16. 2024

3화. 사기꾼이 분명해... 경매강의를 듣다.

나는 죽어가고 있었다.

본격 육아휴직에 들어가기 이전에 남편은 올해 남은 연차를 소진할 수 있었다.

그 말인즉슨 월급은 그대로 나오는 기간이지만, 휴직 시작한 것처럼 집에 24시간 붙어있다는 뜻이었다....

아침에 아이를 학교에 태워다 주고 집에 오면 8시 반 정도, 집안일을 대충 해놓고 나름의 자유를 누리며 살림과 글쓰기를 하던 무명 프리랜서 작가인 나는 날벼락처럼 하루아침에 자유와 여유로움을 박탈당하고 감시세계에 떨어져 밥순이가 되었다.

남편 은퇴 후 집에 하루종일 붙어 있으면 싸우는 부부가 그렇게 많다더니... 사실 말은 바로 하긴 해야지.. 눈치는 나보다 남편이 더 보고 있었고, 나는 결코 삼시 세 끼를 다 차려준 적이 없었으나 나는 정확하게 그렇게 느낄 정도로 스트레스를 받고 있었다.

나는 나쁜 아내인가? 앞으로 1년간 남편 월급이 안 나올 거라고 남편에게 눈치를 준 적은 결코 없다 생각했는데, 낮 동안만큼은 나만의 공간이던 30평 아파트 안에서 남자 사람 하나가 더 조용히 들어앉아 컴퓨터를 하루종일 바라볼 뿐인데, 나도 모르게 엄청나게 틱틱대고 그에게 짜증을 부리고 있었다.


사실 경매 공부를 해보자는 합의는 연초부터 된 거였다. 부동산의 ㅂ 자도 모르던 바보천치였던 나는 남편이 인스타그램에서 보고 추천해 준 한 경매 커뮤니티의 온라인 수업을 (아이가 개학한) 3월부터 듣고 있었다. 그 커뮤니티의 대빵은 꽤 유명한 사람이었는데, 내가 느낀 그 사람의 첫인상은 '사기꾼'이었다. 

나중에 언젠가 이 사람을 추앙하며 받들고 있을지도 모를 일이긴 하지만 첫인상은 말 그랬다. 누가 봐도 강의팔이, 작은 경험을 크게 부풀려 사람을 꾀어 돈을 벌려는 사기꾼, 알고 보면 자기는 경매든 부동산이든 한두 개 성공해봐 놓고 진짜 돈은 강의로 다 벌고 있을 게 뻔한 사람... 

나는 원래 자기계발서를 극도로 싫어했다. 부동산은 물론이오 경제서적 같은 건 절대로 읽지 않았다. 남편의 권유로 미국배당주 관련 책이나 주식차트 보는 법 같은 책을 시도해 본 적은 있으나 결코 한 권을 다 읽어낸 적은 없었다. 나는 작가니까, 영문학 전공자니까, 우아하게 세계문학전집이나 젊은작가상 수상작품집 따위를 읽어야만 했다. 10년째 그런 돈줄에 도움도 안 되는 책이나 주야장천 읽고 있는 나를 보며 남편이 얼마나 참아준 걸까, 현실물정 모르는 날 보며 얼마나 속이 터졌을까, 생각해 본 건 한참이나 지난 뒤였다.


뭐 어쨌거나 없는 돈에 몇십만 원 치 강의료를 결제해서 듣기 시작한 수업이니 성격상 착실하게 형광펜으로 줄까지 그어가며 끝까지 참고 듣긴 들었다.

들으면서는 머리털이 죄다 없어지도록 쥐어뜯었다. 도대체가 무슨 말이지 알 수가 없어서이다.

그전에 사전지식을 조금이라도 쌓기 위해 관련 책을 읽기도 했으나 별 도움은 되지 않았다. 그 책도 반쯤 읽다가 포기하긴 했었지만...


'아오... 진짜 도대체 무슨 쌉소리야... 말소기준권리? 근저당? 점유이전금지가처분신청? 내용증명도 보내고 명도소송도 하고, 낙찰자가 해야 할 건 왜 이렇게 많으며? 이게 정말 수익이 남긴 남는 거야???

아니 그런데 도대체 전국에 흩뿌려져 있는 수없이 많은 물건들 중에 내가 입찰할 물건을 어떻게 선별하지? 수익률 계산은 대체 어떻게 하는 거야? 이 엑셀표는 왜 이따위야? 여기다가 0.3%는 왜 곱하는 건데?? 응???? 경락잔금대출은 얼마나 나올지 미리 알 순 없는 거야? 대출이모님들?? 모의 입찰을 해보라고? 요즘 경매가 다시 붐이라 법원에 사람들이 미어터진다고?'


머릿속의 질문은 끝도 없이 이어졌고, 내가 수업을 겨우 한 바퀴 돌려 다 들었을 무렵, 남편이 연차 소진하며 집에 있기 시작하는 기간과 맞물려 극도의 스트레스와 우울에 빠져들기 시작했다. 보통 겨울이 오면 아이의 짧은 여름방학과는 사뭇 다른 긴 겨울방학, 짧아지는 바깥활동, 비타민D의 부족으로 인해 나는 우울의 시기를 겪곤 했다. 이번에는 그 강도가 더 극심해졌다. 한동안 멈춰뒀던 글쓰기를 시도할 수조차 없었다. 남편은 경매도전기를 글로 써보라는 헛소리를 시전하기도 했다.

나는 소설을 써야 한다고 이 양반아!

당장 남편 월급이 안 들어올 마당에 소설 쓰고 신춘문예에 내겠다는 말을 하면 남편 속도 뒤집어질 것이 뻔하기에 나도 최소한의 눈치는 지켰다. 그리고 일단은 남편이 집에 있는 동안에는 나도 열심히 물건을 뒤졌다. 강의를 한 바퀴 들었으니 이제 진짜로 법원에 가서 입찰을 하긴 해야 할 타이밍이 다가오고 있었다.


입찰을 하려면 물건 감정가의 10%의 보증금이 필요했다. 감정가 2억짜리 집의 경매에 입찰하려면 2천만 원을 입찰 보증금으로 수표 한 장으로 뽑아가야 했다.

그런데 우리에게 현금 2천만 원이 있을 리가...?


부동산 경기라든지 다시 되팔기 위한 조건이라든지 여러 가지를 따져봤을 때 현재 시점에서 지방의 부동산에 투자하는 것은 별로였다. 게다가 지방의 부동산에 입찰하려면 지방의 법원까지 가야 했다. 수많은 경쟁자들을 제치고 1등이 되어 낙찰을 받는다는 보장도 없는데 시간과 교통비를 들여 가는 것도 오버고, 어쨌든 수도권 내에게 우리가 가진 돈으로 할 수 있는 물건을 찾자니 눈알이 빠질 것 같았다.

문제는 보고 보고 또 봐도 도저히 이 집이 다시 잘 팔릴 집인지, 이 가격이 제대로 된 감정가인지, 시세 파악이 제대로 된 건지, 경쟁자가 많지는 않을 물건인지 알 수가 없었다는 것이었다.


나는 혼돈의 쓰나미... 태풍의 눈 한가운데에 멈춰 서서 두어 달가량을 보냈다.

나는 죽어가고 있었다.....




(다음 화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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