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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식빵 Jul 16. 2024

2화. 마약같은 월급 중독에서 벗어나고파!!

과연 회사가 내 가족을 평생 지켜줄 수 있을까...?

우리 부부에겐 아이가 하나 있다. 이제 초등학교 2학년으로 만 8살을 갓 넘겼다.

가끔씩은 혼자 집에 있을 수도 있고, 점점 더 제 부모보다 친구랑 놀기를 좋아하고 제 앞가림은 어느 정도 할 수 있어지는 나이이다. 아이는 제법 똘똘한 편으로 나를 닮아선지 책 읽는 걸 좋아하고, 성격은 남편을 닮아선지 꽤 외향적이다. 아직 혼자 밥을 차려 먹거나 큰 대로를 몇 번 건너 몇 블록 떨어진 학원에 혼자 갈 순 없지만 곧 가능해질 것이다. 맞벌이이거나 부모 성향에 따라서는 그런 걸 1학년 무렵부터 교육시키기도 한다.

공부에 관해서라면 점점 더 잔소리가 늘어날 수도 있겠지만, 그 이외의 것들에 관해서는 부모의 손이 점점 덜 필요해질 거란 뜻이다.

하지만 이 대한민국에서는 아이가 초등학교에 입학할 때면 많은 경력단절 여성들이 생긴다. 4시, 5시까지 (혹은 어린이집에 따라 저녁 7시까지도) 아이를 봐주던 어린이집/유치원을  졸업하니 갑자기 1시, 2시에 학교 일정을 모두 마쳐버리는 요상한 교육 시스템 덕분이다. 돌봄 등록에 실패하거나 조부모의 도움을 받지 못하는 맞벌이 부부들은 어쩔 수 없이 퇴근시간 무렵까지 아이를 학원 뺑뺑이 돌리거나 부모 중 하나가 육아휴직 또는 완전히 퇴사를 할 수밖에 없어지기 때문이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헷갈리긴 하지만 나는 돈 못 버는 프리랜서 작가라 아이의 1학년을 온전히 책임질 수 있었고, 아이는 초등생활에 무난히 적응했다. 우리에게 한쪽의 육아휴직이나 퇴사라는 거대한 변화는 없었던 것이다.


나라에서 지원되는 육아휴직은 아이가 만 9살이 되기 전에 사용해야만 한다.

회사생활의 괴로움을 토로하고 눈물마저 보였던 남편은 아이가 2학년이 된 어느 봄날, 거대한 대출이자 앞에서 차마 사직표를 냅다 던지진 못하고 1년의 육아휴직을 내버렸다. 마음을 먹고 나자 저질러버리는 건 아주 쉬웠다. 물론, 내 입장에서는 겉으로만 보이니 '쉬웠다'지만, 남편의 입장에선 몇 달을 고민하고 또 고민했을 터였다. 나는 남편이  '나 육아휴직할까'라고 넌지시 몇 번 던질 때까지만 해도 설마 그걸 저질러 버리리라곤 예상하지 못했다. 휴직하면 1년간 수입이 극도로 줄어든다. 사실 줄어든다기보다 없어지는 것에 가까웠다. 외벌이 가정에서 한쪽의 수입마 없어지다시피 하는 것이다. 3개월 정도는 100만 원이 조금 넘는 돈이 들어오고, 연말에 아주 약간의, 몇 달간 일한 것에 대한 성과급이 일할계산되어 들어오면 나머지는 모두 마이너스통장으로 버텨야만 한다.


나는 당황스러웠고 너무 놀라 어버버거렸다. 으로는 '애는 8년 동안 나 혼자 키우다시피 했구만 애는 다 컸는데 이제 와서 '육아'휴직은 무슨 육아휴직!' 싶은 못된 마음도 좀 있었다. 물론 돈을 포기하고 시간을 벌어 뭔가 다른 걸 해보겠단 말이란 걸 이성적으론 이해하지만, 당장 다음 달 월급이 안 나온다니 비뚤어진 속마음이 불쑥 나오기도 했다는 거다.


"여보... 어쩌려고 그래... 너무너무 힘든 건 알겠는데... 내가 도와주지 못해서 너무 미안하기도 한데... 우리 한 달에 대출이자만 얼마 나가는지 네가 더 잘 알잖아. 무슨 대책이라도 있는 거야? 정말 택배 상하차라도, 막노동이라도 하러 가겠다는 거야? 나도 지금 알바천국 열고 뭐라도 뒤져야 하는 거야?"


우리는 세금을 제하고 받는 남편 월급, 600만 원이 조금 넘는 돈에서 한 달에 약 250만 원을 주택담보대출 이자로 내고 있었다. 그것도 남편이 1년 전 대기업으로 이직해서 꽤 오른 연봉이라 겨우겨우 버틸 수 있었고, 그 이전에는 그보다 적은 월급으로 한 달에 무려 350만 원씩을 갚아나가고 있었다. 최대치로 받아놓은 마이너스 통장의 잔고는 줄어들 여지가 없었다. 불행 중 다행으로 최근 금리가 살짝 더 낮으며 상환기간을 40년으로 늘린 다른 대출로 갈아타면서 매달의 부담이 조금 낮아지긴 했지만, 다달이 고정적으로 들어오는 수입 없이는 아무것도 할 수 있는 상태가 아니었다. 물론 아주 조금, 개미 쥐똥만큼 모아둔 돈이나 마이너스를 기록하고 있는 주식 통장에서 돈을 빼서 몇 달 정도는 생존가능하겠지만, 그 이후는?

과연 우리가 남편의 회사생활이 아닌 다른 뭔가를 해서 돈을 벌 수, 그것도 셋의 최저 생활비와 대출이자를 감당할 만큼 벌 수 있을까?


나는 앞이 까마득했다.


사색이 되다시피 했을 내 얼굴을 들여다보며 남편이 말했다.


"여보... 내 말 좀 들어봐...

내가 아무리 생각해도... 은퇴할 때까지 직장 생활할 수 있을 것 같지가 않아. 어찌어찌 잘 버텨낸다고 해도 내 미래가 회사에 가면 늘 보는 그 팀장, 실장, 기껏해야, 엄청나게 잘해봐야 회사 임원이 겨우 된다는 건데.. 그건 내가 바라는 미래가 아니야. 9시부터 6시까지 회사에 매인 채 일하는 것도 싫고, 아무리 대기업, 대기업 해도 회사생활로 벌 수 있는 돈에는 한계가 있어. 분명히 다른 방법이 있을 거고, 그래야만 해. 나는 1년 동안 죽으라고 그 방법을 찾아낼 거야. 당신도 도와주면 좋겠어.

부자가 될 방법을 알아내게 될지 아니면 결국 실패하고 회사로 돌아갈지는 아무도 모르지만, 최소한 1년간 내가 회사 밖에서 뭔가 해봤다는 게 나중에 후회가 없을 것 같아. 정말 만약에 모든 게 실패로 돌아가고 그냥 참고 회사 다니는 게 낫다고 결론 나면 나는 그냥 복직하면 되는 거야.

딱 1년이야. 난 퇴사한 게 아니고 휴직한 거야. 언제든 돌아갈 수 있는 보험이 있으니까 마음 조금은 편하게 먹고 여보도 나랑 같이 공부하고 우리 투자자의 삶을 한번 살아보는 거 어때? 물론 우리가 돈이 없으니까, 아주 작은 것부터 해야 할 거고, 중간중간 궁지에 몰리면 택배 알바라든지 대리운전이라든지 그런 것도 할 수 있어. 내가 못할 게 뭐 있어? 나야! 나 김민준이라고. 나 한 번만 믿어봐 줘. 진짜 열심히 할게."


사실 모두 맞는 말이라 나는 뭐라 할 말이 없었다. 우리 나이 마흔. 아이는 9살. 10년 뒤 이 아이는 수능을 치고 대학에 가고 성인이 될 텐데, 남편이 10년 뒤에도 쭉 그냥 지금 회사에 다니고 있다면 우리 삶은 크게 달라질 게 없을 것 같았다. 나는 솔직하게 말하자면 이 자리에 머무른 채 10년 뒤에도 지금처럼 아이 뒷바라지 하며 살림하고, 가끔 글이나 쓸 거고, 혼자 셋의 생계를 책임지는 남편의 어깨는 점점 더 무거워지고 얼굴은 낯빛이 되어가겠지....

운이 좀 따라준다면 남편이 해외 주재원에 나갈 수도 있고 팀장이나 실장 같은 더 높은 직급을 달 수도 있겠지. 하지만 그래봐야 회사원이었다. 그래봐야 지금 가진, 은행지분이 99%의 우리 집, 우리가 가진 단 하나인 이 집의 총 대출금액이 조금 줄어들어 있을 뿐이겠지. 그 뒤에는? 남편이 50, 55살이 되어서 좀 빠른 퇴직을 당하면 그 뒤에는? 혹여 대기업 경력을 가지고 좀 작은 회사 임원진으로 운이 좋아 갈 수 있게 된다고 해도 결국은 직장인이고, 거기서 벌 수 있는 돈도, 우리가 늘려나갈 수 있는 재산의 한계도 분명할 것이다.


솔직히 말하자면 나는 경제관념이 없다시피 해서 남편이 생각하는 것만큼 노후에 대해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그저 하루하루 앞가림하며 살아온 것도 벅차기는 했지만, 스스로를 그냥 경력단절된, 살림하는 여자라는 프레임에 10년 가까이 가둔 채 살아왔기도 했기에 내가 부자가 될 수 있다거나 지금보다 더 나은, 더 여유로운 미래를 가질 수 있다는 상상 자체를 하지 않았다.

미래는 그저 말 그대로 막연한 미래였다. 언젠가 시간이 착실히 흐르면 다가오긴 오겠지만, 거기에 대한 준비나 대비는 전혀 하지 않은 채 마흔이라는 나이를 맞닥뜨려버린 것이다.


'그래, 남편이 저렇게까지 하는 데에는 수많은 고민의 시간이 있었을 거야. 언제나 나를 몰아붙이고 돈돈거리고 하긴 했지만 결국에 가서는 남편 말이 맞았던 적이 많았잖아. 저 사람은 정말로 자기가 내뱉은 말이라면 열심히 하긴 할 사람이긴 해. 딱 1년. 그래. 뭐 설마 굶어 죽기야 하겠어. 사지 멀쩡한 어른 둘이 있는데. 뭐라도 해서 먹고살면 되지.'



투자자의 삶을 살고 싶다던 남편이 처음으로 시작한 것은 경매 공부였다. '결국은 부동산인가? 결국 집을 싸게 사서 비싸게 팔아 이익을 남긴다는 건데, 그것만이 정말 답이야?'라고 처음에는 많이 물었고, 의견다툼이 있었다. 하지만 그게 아니었다.

경매로 시작해서 공매, 토지지분 투자, 상가 투자, 특수물건, 공장 투자, 임대사업, 공유숙박업 등등 투자자의 세계는 실로 다채로웠다. 많은 사람들이 생각하듯 꼭 많은 돈이 있어야만 투자를 시작할 수 있는 것도 아니었다. 그렇게 우리는 새로운 세계로 한 발을 내딛게 되었다.




-다음화에 계속-











참고)

프롤로그에서 밝혔듯 이 새로운 이야기는 작년에 연재된 <유럽에서 온 김 과장의 서바이벌 헬조선>의 속편의 성격을 가졌습니다. <유럽~ 헬조선>의 화자이자 주인공이 30대 후반의 직장인이자 남편/아빠인 '김 과장'이었다면, 이번 이야기는 김 과장의 동갑내기 아내이자 프리랜서 작가인 '정수연'을 입을 통해 펼쳐질 예정입니다. 물론 새로운 하나의 이야기로서 완결력을 갖추려고 노오력은 하겠지만(ㅋㅋ), 만약 앞의 이야기를 읽지 않으셨다면 먼저 읽어보시는 것도 스토리의 전체적인 이해에 도움이 될 거라 생각됩니다. ^^


https://brunch.co.kr/brunchbook/kimgwaja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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