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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식빵 Jul 16. 2024

1화. 남편이 심상치 않다.

외벌이 가장의 번뇌는 집안을 흔든다.

참고)

프롤로그에서 밝혔듯 이 새로운 이야기는 작년에 연재된 <유럽에서 온 김 과장의 서바이벌 헬조선>의 속편의 성격을 가졌습니다. <유럽~ 헬조선>의 화자이자 주인공이 30대 후반의 직장인이자 남편/아빠인 '김과장'이었다면, 이번 이야기는 김 과장의 동갑내기 아내이자 프리랜서 작가인 '정수연'을 입을 통해 펼쳐질 예정입니다. 물론 새로운 하나의 이야기로서 완결을 갖추려고 노오력은 하겠지만(ㅋㅋ), 만약 앞의 이야기를 읽지 않으셨다면 먼저 읽어보시는 것도 스토리의 전체적인 이해에 도움이 될 거라 생각됩니다. ^^


https://brunch.co.kr/brunchbook/kimgwajang






1화. 남편이 심상치 않다.

 - 외벌이 가장의 번뇌는 집안을 흔든다.


여느 날과 똑같은 평범한 아침이다.

나는 6시 50분에 울리는 핸드폰의 알람소리를 듣고 일어나 눈곱만 겨우 떼고 간단한 아침을 준비한다. 5분쯤 뒤에 일어나는 남편은 뭉그적뭉그적 무거운 발걸음을 질질 끌고 화장실로 향한다.

볼일, 양치, 면도, 세수, 머리 감기의 일련의 과정을 기계처럼 하며 습관적으로 구독하는 유튜브를 틀어두는 게 남편의 루틴 아닌 아침루틴이다. 어찌 보면 뭐라도 들으며 정신을 깨워 어쨌든 회사로 무사히 출근하려는 몸부림 같기도 하다. 아침이나 출근길에는 주로 '삼프로TV'를 듣는 것 같고, 그 외에도 각종 주식, 경제, 부동산 관련 유튜브 채널을 많이 구독하고 있는 것 같다. 요즘 남편의 얼굴이 유독 어두워 보이긴 한다. 직장 상사 욕을 자주 하는 같긴 했는데... 그저 그랬듯이 회사 생활이 조금 힘들겠거니 하고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신혼을 유럽에서 몇 년 보내며 우리는 아이를 영국에서 낳았고 몇 년 전 한국에 돌아와 지금은 서울에 살고 있다. '저녁이 있는 삶'과 유러피언의 자유로움을 꿈꾸며 떠난 유럽에서 갖가지 일들을 겪고 우여곡절 끝에 한국에 돌아온 후 남편은 번의 이직을 거쳐 마침내 굴지의 대기업에 입성했다. 여태까지 받던 연봉보다 몸값이 많이 뛰기도 했고, 마침내 청약에 당첨되었던 서울 아파트에 입주해 살고 있었기에 나는 우리 삶이 지금처럼만 쭉 큰 걱정 없이 평탄하게 이어지길 은연중에 바라고 있었다.  이직하며 남편의 월급이 올랐지만 외벌이 월급으로 막대한 대출금을 갚으며 서울에서 살기란 사실 생각보다 굉장히 힘들었다. 하지만 우리는 겉으로 보기엔 남편이 대기업에 다니고, 서울에 집을 가진 30대 부부이므로 아마 큰 걱정 없어 보일지도 몰랐다. 사람들은 남의 일에 큰 관심을 갖지 않으므로. 사실은 남편이 젊은 시절 쇼핑을 참 좋아했는데 제대로 된 브랜드의 옷을 사본 것이 참 오래되었다는 것도, 가끔 외할 때에도 우리가 무의식 중에 가격을 많이 신경 쓰는 사람들이란 걸 알 리가 없었다. 내가 올리는 SNS 사진에는 늘 행복해 보이는 사진만이 전시되어 있었다.


아이를 깨워 간단히 준비한 아침을 꾸역꾸역 셋이 말없이 먹었다.

7시 30분. 남편이 먼저 집을 나선다. 식상한 표현이지만 정확하게 도살장에 끌려가는 소의 표정과 뒷모습이다. 능력 없는 나를 만나 혼자 가정 생계를 10년 동안 책임지다시피 했으니 미안한 마음이 들기도 하지만 딱히 다른 대안이 있는 것도 아니 그런 그의 뒷모습을 애써 무시할 수밖에 없다. 15분 뒤 나도 정신없이 준비시킨 아이를 학교에 태워다 주기 위해 차에 몸을 싣는다.


저녁 7시 무렵.

다시 모인 셋이 저녁 식탁 자리에 앉았다. 책벌레인 초등 아이는 식탁에서도 책을 보며 밥을 먹느라 말 한마디 없고, 남편도 무표정으로 스마트폰을 보며 꾸역꾸역 밥을 먹는다. 나도 오늘은 딱히 할 말이 있는 것도 아니어서 조용한 저녁시간은 그렇게 흘러간다. 두 시간 뒤 아이는 잠자리에 들었고, 나도 부엌이며 집안 정리를 대충 해놓고 씻으러 가려는데 소파에 앉아있던 남편이 나를 불러 세운다.


"수연아.... 하....... 나 진짜 좆같은 회사 못 다니겠어.... 미쳐버릴 것 같아..."


평소와 다름없는 직장인 신세한탄인 줄 알고, 적당히 들어주고 다시 씻으러 가려고 옆에 앉았는데 10분 뒤 나는 적잖이 당황하고 말았다. 친구 사이로, 연인 사이로, 그리고 배우자가 되어 이 남자를 20년 가까이 봐왔건만 이 남자가 눈물을 보이는 것은 처음이었다. 회사에서 무슨 일이 단단히 있긴 한 모양이었다.


남편이 속한 팀은 자기가 보기에 전혀 미래가 없고, 업무 지시를 하는 실장이나 팀장 역시 그 분야에 전혀 문외한인데 위에서 자기도 잘 모르면서 윗선 보고용 보고서나 죽어라 만들라 시키고, 그래도 본인이 나름 분야의 실무자이자 경력자인데 자기 말은 씨알도 안 먹힌다는 거다. 급기야는 실장에서 험한 소리도 들은 것 같았고, 매달 내는 담보대출이자 때문에 당장 회사를 때려치울 순 없으니 참고 참고 또 참으며 다녔는데 한계에 다다른 것 같다는 말이었다.

물론 10여 년 전이긴 하지만 나도 회사 생활을 안 해본 것도 아니고, 사회생활이 힘든 것도, 외벌이가 힘든 것도 이해는 하는데, 솔직히 당황했다. 우리는 엄청난 하우스푸어가 아닌가. 가진 것이라곤 99%가 은행지분인 이 집, 단 하나인데 부동산 침체기에 당장 팔리지도 않을 이 집을 두고 뭘 어떻게 해야 할지. 나로서는 '그렇게 힘들면 당장 때려치워! 내가 먹여 살릴게!'라고 할만한 경제적 능력이나 자신감 따위는 없었고, 그저 그를 잘 달래는 수밖에는 없었는데 이제 그것도 한계에 다다른 것인가. 우리는 정말 어떻게 해야 되는 거지 그럼....


본인도 감정이 격해져 내 앞에서 눈물까지 보인 것이 사뭇 민망했는지 그날의 일은 적당히 덮인 채 또 속절없이 몇 주가 흘렀다. 남편도 나도, 아무리 힘들어도 남편이 당장 회사를 그만둘 수는 없다는 것을 너무나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봄바람이 불어오고 남편의 눈물도 좀 잊힐 때쯤... 장미가 만개하던 5월의 어느 날이었다.

남편은 마침내 일을 저지르고 말았다.




- 다음 화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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