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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식빵 Jul 16. 2024

4화. 땡땡동의 빌라를 사야만 해!

홀로 첫 입찰을 하러 가다.

태풍의 눈 한가운데에서 시름시름 앓던 나를 못 본 체한 건지, 그럴 정신머리조차 없었던 건지 모르겠지만

남편은 아직 회사에 나가고 있던 중에도 당연히 나보다 더 열심이었고, 밤낮 가리지 않고 입찰할 물건을 찾아 헤매었다.

서울에 있는 30년 된 빌라도 아무리 못해도 1억 5천~2억은 되기 때문에 일단은 경기도를 뒤지는 것 같았다. 입찰하러 당일에 다녀올 수 있는 거리이면서 우리가 가진 돈을 영혼까지 그러모아 10%의 입찰보증금을 만들어낼 수 있는 물건, 경쟁이 그나마 적을만한 물건, 하지만 되팔거나 임대를 줬을 때 대출 이자를 내고도 최소한의 수익이 날만한 물건...

그딴 게 정말 존재하긴 하는 거야?


경매사이트에서 '관심물건'에 넣어둔 물건이 쌓여 갔다. 나도 양심상 뭔가 뒤지는 척은 계속하는 중이었기에 뭐라도 조금 괜찮아 보이면 집어넣어 두었다. 그건 남편에게 '나도 그래도 뭔가 하고 있긴 있다.'는 변명의 여지를 남겨두기 위해서도 필요한 작업이었다.

당연히 그때까지도 나는 물건 보는 눈 따위는 손톱의 때만큼도 갖고 있질 않았다. 부동산 공부 두어 달 해서 그런 걸 가지려고 한다는 것 자체가 도둑놈 중의 상도둑놈 심보이지 않겠는가. 나는 욕심이 없고 자존감도 낮은 편이다. 글쓰기라든지 아이 키우는 거라든지 그나마 관심이 많고 재능이 발휘되는 영역을 제외하고는 그 어떤 것에도 나는 관심 두길 본능적으로, 철저하게 꺼리며 살아왔다.


처음에 남편은 경기도 파주의 한 지역에 꽂혔다.

파주라면 몇 년 전 서울 서쪽 지역에 살 때 두세 번 놀러 가본 적이 있을 뿐이지, 그쪽의 부동산 시세나 분위기라든지 같은 걸 알리가 없었다. 흔히 '손품'을 판다고 표현하는데, 인터넷 지도를 살펴보고 아파트나 상가의 시세 등을 온라인으로 알아보고, '임장'을 가기 전에 미리 근처 부동산에 전화해 정보를 캐내는 작업. 그걸 몇 번 해보고는 한 지역에 말 그대로 꽂혀버렸다.

그 뒤로 내 귀는 그 파주 xx동, xx역 앞 이란 소리로 얼룩지게 되었다. 한 가지에 꽂히면 그것밖에 보고 듣지 못하는 남편이 거기에 빌라를 사야만 한다고 내게 문자 그대로 끊임없이 말했기 때문이다.

듣고 듣고 듣다못해, 저 사람이 대체 왜 저러는지 머리로는 이해하지만 마음으로는 이해할 마음이 없어져버린 자그맣고 귀여운 인내심을 소유한 나로서는 소리를 꽥 질러버리곤 했다.


"여보!! 제발 그 xx동 얘기 좀 그만해!!! 귀에 피나겠어!! 그렇게 마음에 들면 한번 가보든가!! 입찰한 돈은 있고서 거기 빌라 사겠다고 이러는 거야 지금?? 얼마를 적어내야 낙찰받을 수 있을지 감이 있긴 한 거야??!"


어느 주말의 늦은 오후, 컨디션이 좀 안 좋았던 나는 집에 머물렀고, 남편은 기어이 혼자 그 동네에 다녀왔다. 본인도 아직 초짜에 확신 없는 쫄보 상태라 차마 부동산 문턱을 넘고 질문세례를 해보진 못한 것 같았다. 그저 관심 있는 빌라 근처를 한 바퀴 돌아보고 동네 분위기를 보고 왔다고 했다.


그 뒤로 한동안 파주 이야기를 계속했다. 왜 그곳의 부동산을 사야만 하는지, 왜 경매로 싸게 사야만 하는지, 왜 우리에게 지금 이 순간에 경매 말고는 답이 없는지에 대해서 길고 긴 설득이 이어졌고, 늘 그래왔듯이 '그게 왜 안되는지, 그게 왜 망할 것인지, 그게 왜 답이 아닐 수도 있는지, 그건 어떠어떠한 걱정과 문제점들을 불러일으키는지'에 대한 나의 부정적인 피드백이 줄을 이었다.

남편은 힘들어했다. 나는 내가 생각해도 부정적 사고의 전형이라 할만한 사람이었다.

걱정과 불안과 우울은 한평생 나를 따라다닌 그림자였다.


그는 그답게 포기하지 않았다. 애초에 내 부정적 의견 따위에 금세 포기할 생각이었으면 휴직을 하지도 않았겠지.

3월의 어느 날, 남편의 생일을 하루 앞둔 날이었다.

남편 생일 선물을 제대로 준비 못한 나는 좀 미안한 마음을 가지고 저녁을 맞았는데, 생일 선물로 뭘 좀 해달라는 남편.


"여보, 내일 내 생일이니까 생일선물로 내 부탁 좀 들어주면 안 될까? 내가 말했던 그 빌라, 경매일이 내일인데, 난 회사 가야 해서 못 가니까 여보가 가서 입찰 한번 해봐 주면 안 돼?"


헐. 아직 경매가 답인지, 부동산 투자가 여윳돈이 1도 없는 우리에게 정말 답이 되어줄 것인지 아무런 판단도 확신도 없는 내게, 모든 것이 걱정투성이인 바로 이 내게, 혼. 자. 서. 법원에 가서 입찰을 하라니...

처음에는 반항했다. 나 혼자 그 큰 금액 제대로 인출해서 적어내고 도장 찍고... 법원에 한 번도 가본 적도 없는데 경매법정에 가서 그 절차들을 해내며 실수라도 하면 어떡하라고......... 난 못한다. 절대 못한다 우겼다. 정말 우리가 입찰이란 걸 하게 된다고 해도 첫 입찰은 여보 네가 연차 내고 같이 가줘야만 한다고 우겼다.

그리고 졌다.


다음날 아침, 아이를 학교에 내려주고 나는 바로 차를 돌려 파주시 관할지역인 의정부지방법원 고양지원으로 향했다. 다행히 9시를 조금 넘긴 시간이라 주차할 자리가 있었다. 서둘러 미리 서칭 해둔 근처의 은행으로 향했다. 하루라도 더 빨리 말해줬다면 전날 집 근처에서 미리 수표라도 뽑아뒀을 텐데.... 구시렁거리며 행여 늦을까 봐, 행여 OTP나 인증문제나 송금한도제한으로 필요한 만큼 돈을 뽑지 못하면 어떡하지.. 또 걱정 한 바구니를 머리에 이고서 은행 문을 열었다.




(다음 화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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