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찰할 빌라의 감정가는 1억 후반대였다. 2,000만 원에 가까운 입찰보증금이 필요했다. 우리의 통장에 현금 2,000만 원이 꽂혀있을 리는 만무했다. 내 주식통장에 들어있던 작고 귀여운,심지어 마이너스 수익률을 기록하던 주식을 몽땅 팔아 1,300만 원여를 겨우 만들었고, 나머지는 남편이 마이너스 통장에서 뽑아 겨우 보증금을 맞추었다. 내 통장에 들어있던 돈은 지난 4년여간 두 권을 책을 내며 받은 인세, 카페 알바를 하며 번 작은 돈, 코로나 역병을 거치며 나라에서 받은 프리랜서 재난지원금 등을 모은, 작지만 소중한 돈이었다. 다행히 법원 근처에 있는 은행의 계좌에서 큰돈을 바로 수표로 인출하는 데는 문제가 없었고, 늦지 않게 경매법정에 들어갈 수 있었다.
경매 커뮤니티나 유튜브에서 본 대로 정말로 신기하게도 젊은 사람들이 많았다. 예전에는 경매법정에 주로 40대 이상 50, 60대가 많았다는 것 같았는데, 언젠가부터 파이어족이나 투잡, 쓰리잡,주식, 부동산투자 등을 하는 젊은 사람들이 많아지면서 경매 투자를 하는 20, 30대가 많아지고 있다고 한다. 심지어 돌도 안 되어 보이는 아기 유모차를 끌고 온 젊은 부부도 있었다. 아직 부동산 경기는 회복될 낌새가 보이지 않았으나 코로나가 끝나고 경기가 조금씩은 회복될 거라는 희망회로 때문인지, 결국 부동산이 답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많아져서인지 모르겠지만 법정은 100여 명 정도가 앉을 수 있는 좌석을 가득 채우고도 모자라 자리를 잡지 못한 사람들은 양 옆과 뒤에 서있어야 할 정도로 꽉 찼다.
나는 행여나 숫자를 잘못 적기라도 할까 봐 심혈을 기울이고 긴장하며 우리가 입찰할 금액을 남편이 알려준 대로 적고, 내 도장을 찍고, 입찰보증금을 보증금 봉투에 넣고 다른 사람들이 하는 대로, 인터넷에서 미리 본 대로 무사히 입찰을 했다.
입찰자용 입찰보증금 수취증
개찰은 약 한 시간 뒤 입찰 마감이 되면 시작한다고 해서 법정을 나가 괜히 한 바퀴를 돌아보고, 법원식당에도 가보며 시간을 죽이다 다시 돌아오니 앉을자리가 없어 뒤쪽에 서있어야 했다. 개찰이 시작되고도 집행관들이 사건번호별로 한참 동안이나 더 봉투를 정리하는 시간이 필요했고, 마침내 정리가 끝나자 앞선 사건부터 시작해서 그 물건에 입찰한 사람들이 불려 나갔다.그리고 경매판사는 그 물건의 최고가매수신고인, 즉 낙찰자를 호명했다.
"서울 은평구에서 오신 김땡땡씨, 이 물건에 3억1천500만원을 적어 최고가매수신고인이 되었습니다. 혹시 차순위매수신고 하실 분 있으십니까?"
하는 식이었다.
승자과 패자가 나뉘는 순간은 참 오묘했다.
누군가는 차순위보다 고작 몇십만 원을 더 써내서 승자가 되어 모두의 부러움을 뒤로 한채 당당하게 영수증을 받아갔고, 그가 법정 문을 나서는 순간 뒤에서 서너 명의 ‘대출이모님들’이 얼른 뒤 따라붙어 승자에게 자신의 명함을 내밀었다. 경매의 경락잔금대출을 금융권과 중개해 주며 중간에서 수수료를 챙기는 분들인데 주로 50대 이상의 여성이라 대출이모님이란 별칭이 생긴 것 같았다.
낙찰받지 못한여러 명의 패자들은 아쉬움 가득한 눈빛으로 입찰하며 함께 냈던 입찰보증금을 돌려받아 역시법정 문밖으로 사라졌다.
또 어떤 이는 1등 금액을 적어내어 낙찰을 받기는 했지만 차순위자와 몇천만 원이 차이나기도 했다. 그도 사람이라면 낙찰받아 좋긴 하겠지만 ‘아씨. 천만 원 더 적어내도 됐겠네!’싶은 안타까운 마음이 들었을 것이다.
그런 신기하고 처음 하는 구경을 하고 있다 보니 어느새 내가 입찰한 물건을 개찰할 순서가 되었다.
그 물건에 입찰한 사람들 모두가 법대 앞으로 불려 나갔다.8~9명 정도였던 것 같다. 잠시 떨리는 몇 초의 시간이 흐른 뒤 나는 여러 패자들 중 한 명이 되어 법정을 나오게 되었다. 사실 초심자의 행운으로 혹시나 낙찰을 받아버리면 어떡하지 하는 걱정이 내 온몸을 휩싸고 있었는데, 남편이 들으면 화나겠지만 나는 오히려 다행인 기분이었다.
파주의 빌라라니. 이 불경기에. 도대체 낙찰받는다고 해도 저걸 대체 어떻게, 얼마에 되팔려고? 계속해서 생각했기 때문이다. 남편이 생일선물로 입찰 한 번 가달라는데 마지못해 오긴 했지만 그때까지도 나는 경매라는 것에 대한 확신이 1도 없었다. 오히려 빌라 아닌 아파트를 시세와 거의 비슷한 높은 가격에 받아가는 사람들을 보며 탄식하던 다른 패자들과 같은 생각이었다.
‘저걸 시세처럼 사갈 거면 급매로 나온 걸 사지 뭐 하러 귀찮게 경매로 사는 거지? 실수요자인가?임차인? 실거주? 이래 가지고선 아파트는 낙찰받기조차 힘들고, 그렇다고 빌라만 하자니, 빌라왕 사건 때문에 빌라 매매가 그렇게 씨가 말랐다는데, 정말 되팔 수나 있긴 한 건가? 정말 이게 답이야?’
남편에게 패찰의 소식과 1등 낙찰금액을 알렸더니, 안타까워하며 다음에는 좀 더 높이 써야겠다는 말을 남겼다. 아니, 이걸 계속하겠다고? 하긴 그럴 민준이 아니었다. 뭔가 시작했으면 끝장을 볼 위인이었다.
그 뒤로 남편은 물건 검색에 더욱 매달렸다. 나도 시간이 날 때마다 옥션 사이트를 뒤지긴 했지만 보고 또 봐도 여전히 모르겠는 건 매한가지였다. 내게 모든 빌라는 비슷비슷해 보였다. 그저 역에서 좀 더 가깝거나 멀고, 좀 더 오래됐거나 신축이거나. 그런데 아파트처럼 명확한 실거래가나 시세를 알 수 있는 게 아니니 투자가치를 점쳐보는 게 더 어려웠기 때문이다. 이론으로만 배우다가 직접 법정에 가서 그 구름 같은 인파들을 보고 오니, 이게 정말 낙찰이란 걸 받을 수 있긴 한 건지, 낙찰받으려면 감정가의 몇% 나 써야 하는 건지 가늠조차 어려웠다. 계속 경기도를 뒤져야 할지, 좀 더 오래되고 작은 평수라도 서울 안에서 뒤져야 할지 그것조차 결정할 수 없었다.
사실 말은 안 해도 남편도 답을 모르긴 마찬가지인 듯했다. 어느 날은 내게바로 이거라며 경기도에서도 아주 외곽의 한 아파트에 대해서 말을 늘어놓았고, 어떤 날은 파주 아닌 다른 지역의빌라에 대해 설파했다. 가격면으로는 꽤 괜찮아 보였던 부천의 빌라 세 곳을 골라 놓고, 주말에 같이 임장을 가보기도 했다. 왕복 1시간이 훨씬 넘는 거리를 달려갔는데, 직접 보니 사진으로만 볼 때는 알 수 없는 것들이 많이 보였다. 너무 가파른 경사지 위쪽에 있거나, 역과 생각보다 더 멀거나, 주변 상권이 너무 없거나 등등.
그러다가 두 번째 입찰 역시 어느 날 갑자기 하게 되었다. 여전히 확신이 없던 나는 물건 뒤지기에 소극적이었고, 사실은 여전히 봐도 그게 그거 같아서 제대로 고를 수가 없었고, 역시나 이번에도 남편이 고른 물건이었다. 이번에는 빌라가 아닌 경기 남부의 한 아파트였다. 왠지 이번에는 낙찰이 되어버릴 것만 같은 김칫국 맛 나는 쓸데없는 걱정에 온갖 불안과 우울한 마음으로 전날 밤 한숨도 자지 못한 채 날을 꼴딱 새버린 나는 빨개진 눈으로 겨우 아침에 아이를 태워다 주고 바로 평택지방법원으로 향했다. 졸음운전하지 않으려고 커다란 텀블러에 아이스커피를 가득 채우고 눈을 부릅뜨고 2시간 20분여를 운전했고, 입찰 시작 시간에 맞춰 도착할 수 있었다.
-다음 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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