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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식빵 Jul 24. 2024

6화. 벼랑 끝에서 외치는 노예의 SOS

 영원한 퇴사를 갈망하는 직장인들(+부동산 투자)

초심자의 행운이 두 번째엔 찾아왔느냐고?

그럴 리가. 김새는 소리겠지만 이 경매판에서 단 두 번의 도전만에 낙찰을 받는 것 또한 로또까진 아니더라도 중박, 소박에 해당하는 행운이었다.

경쟁률이 높은 물건은 경매가 아니더라도 누구라도 갖고 싶어 하는, 입지 좋은 역세권에 있는 소위 국민평형의 아파트였고, 경쟁률이 낮은 물건은 여전히 부동산이란 영역에서 초짜 중의 초짜랄 수 있는 우리수익을 내고 되팔 능력이 되긴 한 건지 고개를 수도 없이 갸웃거릴 만한, 입지가 구린 곳에 있는 낡고 오래된 빌라였기 때문 감히 함부로 도전할 수가 없었다.


남편이 고른 두 번째 입찰 물건은 경기도 평택 옆에 있는 안성에 있는 국민평 신축급 아파트였다. 내일이면  낙찰자 신분이 되어버릴지도 모른다는 김칫국을 마시느라 밤새 걱정하며 잠 한숨 못 자고 평택법원까지 달려갔건만, 그날 내가 입찰한 그 물건은 경매 사이트에서 ‘오늘의 최다 경쟁률 1등'에 당당히 오른, 초짜라면 누구나 노리는 쉽고도 쉬운 물건이었던 것이다. 그 아파트 경매에서 승자는 단 한 명이지만 패자는 무려 49명이었다. 나는 49인 중의 1인이 되어 다시 2시간여를 차를 몰아 서울로 힘없이 돌아와야만 했다. '이렇게 입찰 여행을 열 번 정도... 아니 스무 번 정도 다니다 보면 얼마에 써야 낙찰이란 걸 받을 수 있는 건지 정말 감이 오긴 오는 걸까?' 여러 가지 복잡한 생각으로 지끈거리는 머리를 부여잡고 겨우 서울 집에 돌아온 나는 점심도 거르고 당일 5시간 가까이를 운전한 탓에 녹초가 된 몸을 침대에 잠시 뉘이자마자 금세 아이를 데리러 가야 할 시간이 되어 무거운 몸을 다시금 일으켜야만 했다.     


그날 나와 함께 평택의 그 낯선 법정에 서있던 수많은 사람들, 일전에 고양법원에서 본 구름 같은 사람들, 눈을 반짝이며 자신의 물건이 불려질 순서를 기다리던 젊은 부부와 끽해야 30대 초반으로 보이던 사람들... 그들은 대체 경매 판에서 무얼 기대하며 그 자리에 모여 있었던 걸까?      


‘일확천금? 과연 경매가 1억 5천의 가치가 있는 집을 1억에 살 수 있는 마법 같은 것이어서, 워라밸 따위 없는 거지발싸개 같은 회사에서 죽어라 하루 8시간 이상씩을 앉아있어야 겨우 버는 연봉 수준의 돈을 몇 달 만에 벌게 해 줄 수 있는 그런 것이어서일까? 민준처럼 은퇴할 나이가 될 때까지 남은 수많은 나날 동안 그깟 회사에 젊음을 갖다 바치며 시간을 낭비하고 싶지 않기에 다른 길을 찾아 나선 것일까? 그들이 찾은 답은 왜 경매이며 왜 부동산 투자일까?

그 이전에, 내가 몇 달째 계속하고 있는 고민처럼 이것이 정말 다른 일들보다 쉽게 돈을 벌 수 있는 방법이 맞기는 한 걸까? 혹시 다른 일보다 쉽게 돈 벌 수 있다는 발상 자체가 시작부터 잘못된 건 아닐까? 잘못된 투자로 오히려 가진 돈을 잃어버리지는 않을까? 결국 이러다 민준도 회사로 돌아가게 되진 않을까?’     


그 모든 것에도 불구하고 한 가지 분명한 것은, 회사란 존재가 내 가족을 영원히 지켜줄 것이며  안정적인 월급이 충실하게 내 가족의 울타리 역할을  해주리라는 믿음에 신뢰가 깨진 사람들이 어느 순간 많아지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주5일로 출근만 하면 회사가 따박따박 넣어줘서 마약 중독자처럼 뽕맞은 상태로 만들어서 뽕에 취해 분별 못하고 살던 많은 이들이 회사 밖에서 주체적으로 다른 길을 찾기 시작했다는 거다.

이건 MZ세대론까지 갈 필요도 없는 문제였다. 많은 사람들이 이전보다 더 똘똘해졌고 인생에 정답이 하나가 아니란 사실을 여러 경로를 통해 알게 되었으며, 내 인생과 내 가족을 책임지는 것은 결국 회사가 아니라 내 손이란

걸 알게 되었기 때문이었다. 그들은 꼭 부동산 투자가 아니더라도 스마트스토어를 하고 블로그와 유투브로 돈을 버는 신인류였다. 


수많은 직장인들이 어쩔 수 없이 카드값 때문에, 주거비용 때문에, 한 달 한 달 나가는 고정비용 때문에, 그렇게 어쩔 수 없이 세팅되어 있는 일상의 끔찍한 수레바퀴 때문에 개목줄 끌린 듯이 아침이 오면 회사에 나가는 관성의 법칙을 따르노예처럼 살아가고 있다. 그것을 좀 더 잘 견디느냐 아니면 참다 참다 걷어차버리느냐 하는 정도의 문제이지, 가슴팍에 감추어 들고 다니는 사표를 끄집어내 저 개 같은 상사 앞에 집어던져버리고 싶은 마음이 들지 않았던 이가 어디 있으랴.      


우리 주변에는 물론 맞벌이를 하는 부부도 많았지만, 우리처럼 아이를 키우며 남편의 외벌이에 의존해 아내가 집안일과 육아를 병행하 소소하게 용돈벌이식의 작은 사업이나 프리랜서로 일하는 이도 몇몇 있었다. 글을 쓰 일을 하다 보니 그런 인연이 계속 새로 늘어난 까닭도 있겠지만 재미있는 사실 하나는 그런 외벌이 남편들의 꿈이 모두 비슷하다는 것이었다. 그 남편들은 아내가 작은 돈벌이로 살림에 보탬이 되고 아이도 도맡다시피 케어해 주는 가정의 밸런스를 유지하다가 언젠가 본인이 회사를 이제는 정말로 때려치워버리고 싶은 시점에 도달하면, 아내의 돈벌이 수단으로 자신이 이때껏 해온 돈벌이만큼 아내가 가장으로서 돈을 벌어오길 기대다. 아이가 어릴 땐 손이 많이 가기도 하고  아내의 경력이 단절된 김에 본인도 내조를 좀 받으며 그간 커리어를 착실히 쌓기도 했으니 어느 정도는 수지타산이 남는 일이기도 했다. 하지만  가련한 가장들은 도망치고 싶어 했다. 때를 기다리는 것이었다. 어깨에 놓인 무거운 짐을 훌훌 벗고 싶어 했다.

지금은 어쩔 수 없이 출산과 육아로 경력이 끊어진 아내들이 살림과 육아를 해주며 상호보완적 관계로 살고 있지만, 그 노예 같은 회사원 생활에서, 그 9 to 6로 얽매인 지옥에서 벗어날 그날만을 꿈꾸며 아내들에게 은근한 압박을 주고 있는 것이었다. 는 반대로 불쌍한 내 남편을 회사란 지옥에서 탈출시켜주겠다는 야망을 가진 당찬 여인네들이 아이를 좀 키워놓은 뒤 30후반 40초쯤 되면 슬금슬금 전면에 나타나기도 했다.


남편 민준이 에게 기대하는 것도 비슷했다. 무명 글쟁이인 내가 밖에 나가 혹은 글이건 뭐건 간에 뭐든 해서 민준 자신이 여태 대기업에 다니며 벌어온 것만큼 큰돈을 당장 벌어오지 못할 것이라는 것은 이성적으로 알고 있을 터였다. 하지만 언젠가 내가 본인을 대체해서, 혹은 그함께 회사라는 틀 밖에서 같이 돈을 벌어 가정경제를 주도적으로 이끌어나가 주길 바라는 마음을, 소망을 늘 가지고 있었던 것을 모르는 바 아니었다. 결혼생활 10여 년 간 꾸준히 에게 바라고 말해왔다. 현실경제에 눈이 어두운 에게 그걸 세뇌시키고 주입시키기 위해 부단히 노력했지만 번번이 실패로 돌아갔을 뿐. 

스스로  발로 길을 찾아 돈을 벌어 기다리다간 회사에서 받는 스트레스 번아웃으로 제가 먼저 나가떨어져 죽을 것 같아서 육아휴직이라는 초강수를 내버린 것으로 일단락되긴 했지만. 민준은 어쨌거나 본인의 입장에서는 최대한으로 할 수 있는 용기를 낸 것이기도 했다.


사실, 용기라기보다는 발버둥과 외마디 비명에 가까웠다. 벼랑 끝에 매달린 채 외치는 SOS.

    

“살려줘! 제발 살려줘! x발 x 같아 정말 이놈의 거지 같은 회사!! 더 이상은 못 다니겠다고! 못해먹겠다고!! 10년 더, 20년 더 이걸 해야 한다고 생각하면 지금 당장이라도 돌아버릴 것 같다고! 이렇게 내 인생을 회사에서 끝장낼 순 없다고! 난 이렇게 살기 싫다고!!!"        








-다음화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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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지 사진출처= British Herit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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