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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식빵 Jul 28. 2024

7화. 여전히 탈출구를 찾아 헤매는 회사의 노예

드디어 첫 낙찰을 받다.

유명한 강사가 하는 경매 기본과정 수업에서 첫 시간에 말하는 내용은 경매의 기본절차라든가, 누구나 하라는 대로만 하면 자기처럼 부자가 될 수 있다는 말이 아니었다. 이제 와서 생각해 보면 이 순서가 맞는 것 같긴 한데, 그가 처음 말한 내용은 수강자들 역시 가지고 있을지 모를 경매투자에 대한 편견을 버리라는 말이었다.     

"잘 모르는 사람들이 경매라고 하면, 옛날 드라마에서나 나오는 장면 떠올리면서 불쌍한 집안이 풍비박산 나고, 가구 여기저기 빨간딱지 붙고 그런 거부터 생각해요. 경매로 집 사면 그런 돈 없는 사람들 집 빼앗고 길거리에 나앉게 만드는 거 아니냐고 생각해요. 물론 아예 근거가 없는 장면은 아닌데요.

임차인들 보호해 주는 법이 제대로 없었던 이삼십 년 전에야 그런 일이 있기도 했죠. 그런데 지금은 그런 일들 막기 위해서 다 임대차보호법이 생겼고, 임차인들은 법에 의해서 보호를 받고 있어요. 게다가 임차인이 아니라 집주인 본인이 살던 집이 경매에 넘어간 건 다 자기가 만든 빚을 못 갚아서 그런 거잖아요. 그걸 경매라는 제도를 통해서 다시 그 집을 팔아서 돈 빌려주고 못 받은 채권자들에게 돈이 돌아가게끔 하고, 억울한 사람 없이 경제가 다시 움직이게 하는 게 경매제도예요.

불법을 하는 것도 아니고, 이 제도를 합법적인 테두리 안에서 잘 이용해서 돈을 벌 수도 있는 거구요. 꼭 투자가 아니더라도 본인이 실거주할 집, 10억짜리를 경매로 9억 5천에 살 수 있으면 좋은 거 아닌가요? 그러니까 여러분도 이왕 여기 발을 들여놓으셨으니 그런 편견은 좀 내려놓으면 좋겠어요."

    

듣고 보니 다 맞는 말이긴 하다. 이왕 이 판에 발을 들여놓은 이상, 내가 사기를 쳐서 돈을 벌겠다는 것도 아니고, 채무자의 권리도 권리지만, 돈 빌려줬다 못 받은 채권자들의 권리도 중요하다는 게 틀린 말은 아니다.

사실은 까놓고 말하자면 강사가 말하는 그딴 건 생각해 본 적도 없었다. 경매라는 것을 해보게 될 줄 생각조차 해본 적이 없었으며, 채권자고 채무자고 나발이고 나하고는 1도 상관없는 남이며, 이걸로 돈을 번다면 땡큐 아닌가? 이런 것이 천박한 생각일까? 백번 양보해 쉽게 좀 돈 벌어보겠다는 마음이 있다고는 인정해도 지금 내 가족이 힘들어 죽겠다는데 그게 다 무슨 소용인가 이 말이다.

직장생활 10년이 훌쩍 넘어가자 번아웃과 현타를 직방으로 맞아버려서 도저히 이 짓을 영원히는 못하겠다고 하는 것은 생존의 문제가 아닐까? 민준이 겪고 있는 불안과 괴로움과 눈물은 우울증의 한 모습이었다. 내 가족의 생존 앞에서 빨간딱지며 임차인 보호며 사실 그런 것은 저 너머에 있는 문제였다.     

 

어쨌든 그 강의는 실속 있는 편이었다. 이런 류의 재테크나 부동산 강의가 수십만 원에 달하지만, 책이나 무료 유튜브 정보만으로는 채워지지 않는 뭔가가 있는데 그런 것을 좀 채워주는 기분이었다. 당연히 내용을 다 이해할 수는 없었고 매 순간 머리를 쥐어뜯었지만 어쨌거나 우리는 이걸 하기로 했고, 입찰을 하러 다니기 시작했으므로 결국은 하나라도 실제로 낙찰을 받아 이걸 팔거나 해서 수익을 내보는 것이 목표가 되었다.

이게 정말 제대로 굴러가는 것인지, 되긴 되는 것인지 검증이 필요했고 그러기 위해선 ‘첫 낙찰’이 필요했다. 헤매며 질질 끌다가 지쳐나가떨어지기 전에 낙찰을 받아 이론이 아닌 실전에 돌입해야 했다.      


코로나로 인한 장기적인 경기침체와 비참하고 슬픈 일을 여럿 불러일으켰던 수도권 지역 빌라왕 전세사기사건 여파 때문에 경매를 비롯한 부동산 시장 전체 분위기는 계속 암울했다. 강서구 화곡동과 부천 일대에는 전세사기 여파로 빌라 물건들이 경매시장에 수도 없이 쏟아져 나왔다. 아까운 목숨들을 잃기도 했고, 사회초년생을 비롯한 많은 젊은이들이 전세사기 소송에 휘말려 시간과 에너지를 낭비하며 곪아가야만 했다.

강사의 말대로 임대차보호법이 생겨 여러 사정상 남의 집을 빌려 사는 임차인들을 이전보다는 더 잘 보호하도록 법적인 절차가 생겨났지만, 그 법이 모두를 제대로 보호해 주기엔 역부족이었다. 학교에서는 어른이 된 후 살아가며 실제로 필요한 법이나 세금에 관한 것, 부동산 계약, 내 재산 지키는 법 따위는 가르쳐주질 않았고, 사회에 첫발을 내디딘 선량한 새 어른들이 사기를 치려고 굳세게 마음먹은 나쁜 놈들을 피할 수 있는 방법 따위는 없었다.


아무튼 그 일들 때문에 빌라를 사거나 전세로 들어가는 것을 사람들이 이전보다 더 꺼리게 되어 빌라 매매나 전세 거래는 씨가 마르다시피 했다. 우리는 여러 사정상 수도권의 부동산에 투자하고 싶었지만 아무리 대출의 힘을 빌린다고 해도 가진 자금으로 아파트를 하나 더 사는 것은 불가능했기에, 또한 입찰 경험으로 미루어 아파트를 낙찰받는다는 것 자체가 굉장히 어려운 걸 깨달았기에 결국은 빌라 경매에 다시 도전하게 되었다.      

서울 강서구 일대, 부천 일대, 인천 등지에 빌라들이 아주 밀집되어 많은 지역들이 있다. 남편은 입찰할 만할 물건을 뒤지고 또 뒤졌다. 수익률 계산, 세금 계산, 대출이자 계산 같은 걸 정확하게 할 수 있기 이전에 일단 가진 돈으로 할 수 있는 물건을 찾는 것 자체가 도전이었다. 몇 개를 간신히 추려내고 나면, 도대체 얼마를 써내야 1등이 되어 낙찰을 받으면서도 최소한의 수익은 보장받을 수 있을지 계산해봐야 했다.


아직 잘 모르겠는 상태에서 몇 번의 입찰을 더 했다. 부천의 빌라와 서울의 빌라 밀집지역들에 있는 물건들이었다. 그리고 몇 번의 실패가 더 이어졌다. 아쉬운 패배라고도 할 수 없는 것이, 낙찰금액인 1등에 한참 못 미쳐 아예 순위권 밖인 경우가 많았다. 낙찰을 받는다고 쳐도 대출이자를 감당할 수 있을지에 대한 확신이 없기에 마음은 계속 쪼그라들어 보수적인 금액을 적어낼 수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그런 마음으로는 계속해봤자 계속 마찬가지일 것 같았다.

확신을 가질 만한 물건이 필요했다.      


어느 날 민준이 시들어가던 얼굴에 제법 환한 빛을 띠며 말했다.      


"수연아! 우리 이거 해보면 될 거 같아! HUG물건 말이야!"

     

물건이라고 하니 경매 얘기하는 것 같긴 한데, 이해가 되지 않는 단어가 끼어있었다.


"허그....? 그게 뭔데....? 뭘 껴안는데....?"   


민준은 나의 가짢은 개그에 웃지도 않으며 침을 튀며 설명했다. 유튜브에서 봤단다. 임대차 계약을 맺을 때 집주인에게 맡겨두는 보증금을 보호하기 위해 세입자는 주로 주택도시보증공사(HUG)에 전세보증보험을 들어놓는다. 만일의 경우 집주인이 빚을 못 갚아 그 집이 경매에 넘어가게 되면, HUG는 임차인에게 보증금을 대신 갚아주고 나중에 경매 매각대금으로 돌려받는 경우가 있단다. 세입자 보호를 위함인데, 이런 경우 세입자는 살던 집이 경매에 넘어간다고 하더라도 보증공사로부터 자신의 보증금을 먼저 돌려받아 이사 나갈 수가 있다고 했다.

빌라왕 전세사기 사건은 HUG가 먼저 임차인들에게 갚아준 보증금들을 경매로 돌려받지 못한 무수한 사건들을 만들어냈다. 한마디로 HUG는 자신에게 보증금 보호를 맡긴 세입자들에게 돈을 먼저 내줘야 했지만, 집주인이나 경매절차를 통해 그 돈을 돌려받지 못해 재정난에 엄청난 문제가 생기게 된 것이다. 예를 들면 1억의 보증금을 집주인 대신 돌려줬지만 집주인이 세금체납 등의 문제가 있는 경우 경매를 통해 해당 집을 매각한다고 해도 세금이 먼저 빠져나가기 때문에 1억을 다 돌려받지 못하는 경우가 수도 없이 많이 생겨나게 되었다. 자구지책으로 1억을 다 받지 못할 게 뻔한 상황에서 최소한의 금액이라도 돌려받아 재정난을 메꾸기 위해 HUG 본인의 대항력을 포기한다는 각서를 법원에 제출하는 일들이 생겨났다고 했다.

그의 설명을 따라가자니 아직 그쪽으로 머리가 팽팽 돌아가지 않는 나에게 혼란의 빛이 어른거렸을 터였다. 민준이 말을 이었다.      


"그러니까, 어떤 전세 세입자의 보증금이 1억인데, 집주인이 이전에 전세 갭투자로 집을 사서 전세로 바로 돌린 거야. 그러다가 코로나도 터지고 부동산 하락장 들어가니까 매매 시세가 오히려 8,000만 원이 되어버린 경우가 있을 거 아냐. 그러고 금리가 겁나 올랐으니까 대출이자 감당이 안 됐을 거고, 집이 경매에 넘어간 거지.

근데 그 집을 경매로 팔아치워도 시세가 8,000으로 떨어져 버렸고, 세입자 보증금 1억을 돌려줄 수가 없으니까 그런 집 경매에는 아무도 입찰을 안 하지. 오히려 손해니까. 근데 그런 사건들이 수백 수천 개가 되니까 허그가 일부 쪼금이라도 건지고 유동성 확보하려고 대항력 포기해서 입찰자들이 경매 들어오게 한 거지.

이해했어??"      


이해하기 싫었지만 이해해야 했다.

나에게는 이런 각종 절차와 전세사기 사건, 갭투자 숫자놀음 같은 것을 이해하는 데에도 많은 시간이 걸렸다. 너무 어렵고 생소한 용어들 투성이었다. 민준의 말로는 이 HUG물건이 이런 이유로 경매판에서 뜨거운 감자가 되었고, 임차인들이 이미 보증금을 보증공사로부터 먼저 돌려받고 이사 나가서 공실인 경우가 많기 때문에 명도의 어려움도 없어 좋다고 했다. 정확하게 이해하긴 어려웠지만 낙찰을 받기만 한다면 일반 경매물건보다 상대적으로 쉬운 물건이라는 사실 하나는 이해할 수 있었다.      

경매법정 로비에서 경매정보지를 보고 있는 김민준씨(?)


결국 우리가 처음으로 낙찰받게 된 물건은 이 ‘HUG대항력포기물건’이었다. 그 이후에 일어난 일들은 모두 내가 살아오면서 언젠가 경험해 보리라고 고는 단 한 번도 생각지 못했던 일들이었다.



-다음 화에 계속-



이 연재소설은 박식빵작가 부부의 실화를 바탕으로 쓰였습니다. 좋아요와 댓글은 식빵작가가 힘내서 다음 편을 쓰는데 큰 힘이 됩니다^^!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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