즉흥적인 여행을 떠나고 싶을 때 같이 떠나 줄 사람이 곁에 있다는 건 꽤나 축복받은 일인 것 같다. 그게 누구이건 말이다. 많은 친구는 없지만 이렇게 같이 어딘가로 훌쩍 하루쯤은 내어줄 친구가 있어 다행이었던 작년 7월 초 나는 친구와 세 번째 당일치기 여행으로 속초로 떠났다.
이번 여행도 주중에 친구와 퇴근 후 저녁을 먹다 급하게 떠나기로 정했고 달라진 점이 있다면 이번에는 KTX가 아닌 고속버스를 타고 떠났다는 점이다. 게다가 이번에는 새벽이 아닌 토요일 아침 9시 버스표를 구할 수 있었다. 우리는 동서울터미널에서 버스를 탔고 2시간 을 달려 11시가 조금 넘어 속초 버스터미널에 도착했다. 그리고 내리자마자 배고픔에 택시를 타고 우리의 첫 일정인 물회를 먹으러 청초호로 향했다.
비주얼 깡패 청초수물회
이 곳이 유명한 집인 줄은 알았지만 건물도 새로 올린 지 얼마 되지 않아 넓고 전망, 편의시설도 잘되어있어 가족단위로 오기에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가격은 저렴하지 않았지만 이번 속초여행에서 제일 기대했던 음식이었기에 망설임 없이 물회를 시켜 첫 식사를 했다. 현지인만 아는 오래된 맛집 같은 느낌을 기대한다면 실망할지도 모르겠지만 나에게는 비주얼도 맛도 건물 전망도 합격이었다. 식사를 하며 청초호 전망을 구경할 수 있었는데 날씨가 좋기도 했고 근처 공원이 새로 지은 지 얼마 안 됐는지 꽤나 예쁘게 꾸며져 있었다.
청초수물회건물 옆 공원
친구와 함께 밥을 먹고 나와 호수를 바라보며 공원 한 바퀴를 돌았는데 바다가 아닌 강원도의 호수가 주는 느낌이 색다르기도 하고 요트가 서있는 모습을 보니 왠지 이국적인 느낌도 들었다. 왠지 모르게 강원도에서 요트를 볼 거라는 생각을 하지 못한 탓인지도 모르겠다. 그렇게 호수를 따라 걷다 공원에서 나와서 오래된 조선소를 카페로 바꾼 곳을 찾아 길을 나섰고 한참을 걸어 그곳에 도착할 수 있었다.
오래된 조선소의 모습을 거의 그대로 남겨두어서 입구만 보면 여기가 맞나 싶기도 했지만 입구를 지나쳐 안쪽으로 들어오면 카페로 안이 개조된 공간을 만날 수 있다. 실내에서 먹을 수도 있고 청초호를 바라보며 밖에서 커피를 마실 수도 있으니 기호에 따라서 선택하면 될 것 같아 나는 밖으로 나와 호수를 바라보며 커피를 마셨다. 뭔가 호수인데 파란 탓인지 바다를 보며 마시는 기분이 들기도 한다. 속초를 처음가 본건 아니었지만 청초호 근처를 와본 것은 처음이라 색다르게 느껴졌다.
이곳을 나와 근처 밀크티 맛집을 찾아 걷기 시작했는데 걷는 길에 만난 파란 지붕의 식당과 담벼락의 꽃이 푸르른 여름을 느끼게 해 주었고 아직도 이사진을 보면 그날의 청량했던 여름 느낌이 떠오른다.
그렇게 걸어서 도착한 밀크티 집(비단 우유차)의 허름한 문 앞에서 진짜 이곳이 맞나 하는 의구심이 잠깐 들기도 했지만 문을 열고 올라간 계단에서 우리는 고대하던 밀크티를 만날 수 있었다.
물론 도착해서 안 사실인데 홈페이지나 네이버 스마트 스토에서도 주문이 된다고 한다. 하지만, 여행 왔을 때 직접 사보는 건 또 느낌이 인터넷 배송과는 다르니까 무겁지만 밀크티를 테이크아웃(병포장)하여 나왔다. 아직 여행 초입인 데다 도보여행 중이므로 많이 사지는 못했고 두 가지 맛을 사서 집으로 돌아와 주말에 식구들과 함께 나누어마셨다. 맛은 괜찮았지만 찾아가는 게 쉽지는 않아서 또 갈지는 잘 모르겠다.
그렇게 밀크티 테이크 아웃 후 나는 나름 속초의 핫플인 '문우당 서림'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독립서점으로 유명해 어떤 책을 파는지 어떻게 다른지 궁금했기 때문이다. 서점은 2층으로 되어있었는데 내가 찾은 차이점은 책의 종류도 그렇겠지만 판매하는 책에 직원들의 추천사가 있다는 점이다. 또 책을 구매하면 종이백에 포장을 해주는데 이때 자체 제작한 책갈피와 포장 문구?를 고르게 하는데 이런 감성이 이곳까지 책을 사러 오게 만들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디지털 시대에 부족한 아날로그적 감성과 소통을 느낄 수 있달까?
이렇게 책을 산 뒤, 마지막 여행코스로 영랑호를 선택했다. 사실 계획 없이 떠났던 지라 그때그때 생각난 대로 다녔는데 청초호에 다녀온 뒤 다른 호수를 가보는 것도 좋을 것 같아 무작정 영랑호로 택시를 타고 떠났다. 택시에서 내려 입구를 지나 영랑호 가까이로 가니 지난해 강원도 산불이 끝나고 얼마 지나지 않아 그곳까지 미친 산불의 흔적을 가장 먼저 만날 수 있었다. 불의 열기로 인해 빨갛게 나무 기둥이 변했지만 그래도 생명력을 유지하고 있는 나무의 모습이 경이롭기도 했고 아직도 남아있는 탄 냄새를 맡으며 안타까운 맘이 들기도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영랑호의 모습은 유난히 예뻐 보였고 그렇게 예쁜 호수 옆에는 리조트도 위치하고 있어 당일치기 버스표를 끊지 않았다면 친구와 하룻밤쯤 자고 가도 좋았겠다는 생각을 했다.
예쁜 호수를 걸어서만 보기에는 영랑호는 무척 크기 때문에 자전거를 빌려 친구와 한 바퀴를 돌자고 호기롭게 떠났는데 자전거를 타다 보면 일방통행길임에도 반대로 돌아오는 이들이 있어 왜 그럴까 했는데 우리는 한 30분이 지나 우리의 위치를 확인하는 지도를 만났을 때 비로소 사람들이 돌아오는 이유를 깨달았다. 영랑호는 생각보다 훨씬 더 넓으며 우리가 30분 동안 탄 자전거 속도로는 도저히 1시간 안에 돌아올 수 없는 거리라는 것이었다. 깨달음을 얻자마자 우리도 역주행으로 왔던 길을 열심히 페달을 밟아 돌아왔고 오래간만에 탄 자전거로 다리는 뻐근했지만 호수를 보며 자전거를 타는 기분은 꽤나 상쾌했다.
그렇게 자전거로 많은 에너지를 쏟아부은 우리는 허기짐에 시내로 돌아와 막국수집으로 향했고 수육과 함께 속초여행을 마칠 수 있었다. 막국수를 먹으러 간다면 꼭 수육도 같이 먹기를 추천하고 싶다. 저녁식사를 마치고 아슬아슬하게 우리는 서울로 돌아가는 버스시간에 맞추어 터미널에 도착할 수 있었고 돌아가는 길에 들른 휴게소에서 만난 노을은 여행의 아름다운 마지막 한 컷으로 남아있다.
당일치기 여행이 좋아진 건 계획 없이 가볍게 떠날 수 있기도 하지만 취향을 공유하며 함께 떠날 수 있는 누군가가 있다는 것도 하나의 이유인 것 같다.
시간이 없어서 정보가 없어서 소중한 이와 함께할 시간을 내지 못한다고 합리화하기보다는 단 하루라도 시간을 내서 함께 떠난다면 두고두고 돌아볼 수 있는 즐거운 추억이 되지 않을까? 계획대로 되지 않을지라도 그 추억으로 가까운 사람과 나눌 이야깃거리가 하나 생길 테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