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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Nina P Sep 08. 2020

회사생활에서 자기 객관화의 중요성

나 자신을 안다는 것


손자의 "지피지기 백전불태(知彼知己百戰不殆), 상대를 알고 나를 알면 백번 싸워도 위태롭지 않다." 혹은  소크라테스의 "너 자신을 알라" 같은 옛 말은 한 번쯤 들어봤을 것이다. 예전에 이런 이야기를 들으면 알기는 뭘 알아? 하고 넘어갔을 법하지만 사회생활을 하며 이 말들의 중요성을 깨닫기 시작했다.  드 가십걸의 블레어가 그가 속한 사회에서 주인공으로 자리할 수 있었던 것도 "이구역의 미친년은 나야"라고 말할 수 있을만큼 자기 자신에 대해서 잘 알았기때문이다.


지금 직장에 같이 업무를 하고 싶은 사람이 있는가? 아니면 같이 일하기 싫은 사람이 있는가? 아마우리는 전자의 질문에 대해서는 떠오르지 않아도 후자에 대해서는 상대적으로  떠릴 수 있을 것이다.


이는 회사라는 공간에서 만나는 인간관계라는 어려움에서 오는 특수성도 있겠지만 나는 전자와 후자의 질문을 가르는 기준이 되는 것은 "자기 객관화, 편한 말로는 주제 파악이 되었느냐"에서 온다고 생각한다.  여기서의 주제 파악의 의미는 나 자신에 대해서 잘 아는 가이다. 정적인 의미로 누군가의 능력이나 가능성을 폄하하 의미가 아을 먼저 밝히고 넘어가고자 한다.




10년 이상을 일하다 보니 내 의지와는 상관없이 신입부터 경력직, 계약직, 산휴 대체 파견인력을 포함해 많은 이들에게 업무를 가르칠 기회가 있었다. 여기서 내가 얻은 것은 가르치다 보며  인내심도 있"자기 객관화의 중요성"에 대한 깨달음이다. 이는 타인을 판단하는 기준이 되기도 하지만 내가 직장에서 잘하고 있는지를 보여주는 지표가 되기도 한다.

업무를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거나 잘못된 근무태도로 직장 내 분위기를 망치는 행동은 대부분  지나친 자기애와 자신에 대한 관대함에서 오 것을 보았기 때문이다. 


회사에서 같이 일하기 싫은 사람은 크게 일을 못하는 사람, 근태가 엉망인 사람 혹은 이상한 사람 세부류로 크게 나눌 수 있는데 또라이 질량 보존의 법칙이란 말처럼 작은 사회를 대변하는 회사라는 조직에서 논리나 상식이 통하지 않는 존재가 있는 것은 어쩔 수 없다고 치더라도 내가 회사에서 그런 존재가 아닌가를 돌아보는 것은 나의 평판업무 태도에 중요한 영향을 미친다.




우리 부서에는 동료들이 한결같이 입을 모아 근 태안 좋고 티 나는 일만 하기를 좋아하 동료가 한 명 있다. 는 것 보다는 말하는 걸 좋아해 "소문내고 싶은 일은 그에게 말하면 된다."라고 우스갯소리를 할 만큼 남 흉보고 다니기에 바쁜 ''는 모두에게 피하고 싶은 존재였고 아무도 함께 일하고 싶어 하지 않아 하는 존재. 나 포함한 많은 이들이 상사에게  더 이상은 같이 일하지 못하겠다고 선언하기도 했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의 일관된 주장은 "본인이 노력하고 열심히 하는데 사람들이 편을 먹고 자기를 공격한다는 것이다." 어째서 이렇게 장이 상반될 수 있는 것일까?

이는 그가 타인에게 들이대는 잣대와 자신에게 들이대는 잣대가 다른 데서 기인하는 것이다. 즉, 자기 객관화의 결여로 자신이 한 노력이나 업무에 대해서는 긍정적으로 확대 해석하지만 상대방의 노고나 성과에 대해서는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이거나 축소해서  해하는 것이다. 령, 매일아침 10-20분씩 자신이 회사에 늦는 것은 차가 막히거나 집이 멀어 어쩔 수 없이 일어난 일이지만 신입직원이 어쩌다 늦면 참을 수 없는 것처럼 사소한 것부터 큰 문제에 이르기까지 본인의 행동은 이유가 있다고 합리화하며 관대하게 바라보지만 상대방에게는 그렇지 않은 것 말이다.




그래서 그는 어떻게 되었냐고? 사이다 같은 결말이 있으면 좋겠지만 그는 여전히 우리 회사에 근무하고 있다. 그리고 우리 부서의 많은 일 중 다른 사람과 가장 섞이지 않아도 되는 업무를 하고 있고 상대방과 부딪히지 않아 갈등이 없는 것을 본인은 관계가 좋아졌다고 착각하고는 하지만 매번 업무 이동으로 논의할 때 그는 어김없이 모두에게 피하고 싶은 존재가 된다. 그리고  문제는 해외에 있는 빅보스게까지 소문나 있다.


앞으로도 그는 그 위치에서 버티며 연차에 비해 상대적으로 편한 업무를 하고 사람들과 부딪히지 않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도  우리가 생각하는 것처럼 그 자리에 있는 게 편하지만은 않은가 보다.

가끔 들려오는 소문열심히 이직 면접을 보러 다니고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최종 문 턱 앞에서 그가 번번이 이직에 실패하는 건 그를 따라다니는 좋지 못한 평판 때문인지는 그도 알고 있는지 모르겠지만 말이다. 료가 당신에게 새로운 업무적 기회를 가져다 줄 수는 없을지 몰라도 당신이 원하는 기회를 뺏을 수는 있다는 것을 잊지 않길 바란다. 업계가 좁을 수록 평판은 나를 따라다니는 꼬리표가 되는 경우가 많다.




연차가 쌓여가고 사회생활을 잘하게 된다는 것은 여러 의미가 있겠지만 자리가 사람을 만든 다는 말처럼 그 나이와 연차에 맞게 성장해야 하고 그렇게 되기 위해서 자신의 능력과 가능성을 믿되 자신을 객관적으로도 바라볼 줄 안다는 것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위로 올라갈수록 사람과의 '관계'를 잘 이끌어가는 것이 그사람의 능력이 된다. 


회사에서 남들에게 인정을 받고자 남의 일까지 떠맡아가며 구성원들에게 피해를 주는 호구 짓을 하며 무능력을 과시해도 안 되겠지만  각도기 재듯 평가하며 자신에게는 한없이 관대해 누구도 같이 일하기 싫어하고 경력만큼의 성장도 없어 배울 점이 없다면  그 또한 자신의 가능성을 갉아먹고 있다는 뜻일 것이다.


물론, 나도 이따금씩 일하다 보면  자신의 상황에만 매몰되어 내 행동이나 태도를 반성하게 될 때가 많다. 하지만 나 자신을 객관적으로 돌아보는 객관적인 시선과 더 성장하고자하는 태도를 잃지 않는다면 어도 이 업계에서 일하는 동안 '그'와 같이 지워지지 않을 나쁜 레퍼런스(평판)를 달고 다지는 않아도 지 않을까 싶다. 회사는 없던 화도 일으켜주는 공간임은 틀림없지만 가끔씩은 내가 그런 '화'를 일으키는 존재가 되어있는 건 아닐지 사회생활의 롱런을 위해 한 번씩 돌아봤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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