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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Nina P Aug 20. 2020

사랑니로부터의 자유

미뤄두지 않음으로 비로소 보이는 것들


  신체 오복 중의 하나가 치아가 건강이라고 하는데 이는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인간이 견디기 힘든 통증 중 하나가 치통이기 때문일 것이다. 실제로 의료 근대화 이전 많은 이들에게 죽음에 이르게 할 만큼 큰 고통을 주었 질병이라고도 한다.


"앓던 이가 빠진 것 같다."


  한 번쯤 들어봤을 법한 이 표현의 의미를  내가  몸소 체험하게 된 건 서른 살에 미루고 미루었던 매복 사랑니를  위아래로 뽑았을 때였다. 앓던 이가 빠지는 느낌이 이런 거였다는 걸 몸소 느꼈을 때 조의 지혜와 오래된 표현, 문장의 힘이 무엇인지를 조금은 깨달았던 것 같다.




  치과에 가는 게 아무렇지 않은 이들도 있겠지만 나는 어릴 적부터 지금까지 치과에 가는 게 무섭고 싫다.  물론 성인이 된 이후로 치료받을 때 어릴 때처럼 소리 지르지는 못하지만 속으로는 비명을 지르며 두 손을 모아 꽉 쥐며 그 시간이 끝나기를 기다린다.


  나의 경우에는 20대 중반부터 사랑니가 올라오기 시작했는데 4개 전부 매복 사랑니였고 신경과 가까운 편이었다. 처음에 병원에 갔을 때는 조금 더 있다 빼라고 권유를 받았고  다음에는 편하면 발치하라고 했지만 무서움으로 미루고 미루다 30대 초반 극심한 업무 스트레스와 함께 참기 힘든 치통이 찾아와서야 당일 발치가 가능하다는 병원에 찾아가 오른쪽 위아래 사랑니를 한 번에 발치했다. 그리고일주일 뒤 병원에서 실밥을 풀었을 때의 시원한 느낌은 아직도 잊히지가 않는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치과는 무서웠고 그 후로 두 번의 추가 발치로 마지막 사랑니를 뺄 때까지 3-4년의 시간이 더 걸렸다.




  막상 사랑니를 모두 발치하고 나니  이상 앓는 이가 없다는 것은 생각보다 더 좋은 일이었다. 더 이상 사랑니로 인한 좁은 공간으로 치열이 밀릴 일도 없고 주기적으로 찾아왔던 부은 잇몸이나 통증도 부분 사라졌 때문이다.


  치과에 대한 두려움으로 앓는 사랑니를  키우다가 몇 년에 걸쳐 발치한 것처럼  나는 '언젠가' 결국은 해야 할 결정을 미루거나 해야 할 일 미뤘던 적이 있다. 하지만 이러한 미뤄으로 인해 나는 이득을 보기보다는 결국 해야 할 일을 '손해'보며 하거나 불필요한 '감' 소모해야 하는 대가를 치러야 했다.  그 순간이 두려워서 혹은  참을 수 있을 것 같아서 미뤄뒀던 것들은 결국 참을 수 없을 순간이나 정 혹은 행동이 필요한 순간이 아오기 때문이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무조건 빠른 결정이나 행동이 옳다는 것은 아니다.




  이런 경험들을 통해 는 지난해부터 '정리'를 시작했다. 정리라고 하면 뭔가 거창할 것 같지만 최근 시작한 예능프로그램 "신박한 정리"처럼 방 정리부터 내가 해야 할 일이나 소비/지출/저축계획 같은 것을 간단하게 메모로 정리하는 것이었다.

책장, 서랍 안에 넣어 둔 물건들을 꺼내 정리하고 버리는 일은 생각보다 시간이 소요되는 일이고 지금도 정리하는 중이지만 이런 과정들을 통해 사놓고 잊어버렸던 물건들 혹은 쓰지 않을 것 같은 물건들은 필요한 지인들에게 나눠주고 버릴 것들은 버렸다.

  정리 통해  방의 빈 공간을 찾게 되었고 같은 방을 조금 더 넓게 사용하게 되었다. 그리고 나의 '소비 습관'에 대해서 다시 한번 돌아보 되. 그래서 올해부터는 카드값을 계산하는 목적으로 기록만 하던 가계부 어플을 활용해서 나의 기록이 제공해주는 소비/저축비율이나 세부항목 같은 통계도 한 달에 한두 번씩은 찾아보기 시작했고 노트에 내 저축계획(월/반기/연간) 총금액 및 월 목표 카드 총액을 적은 뒤 결과를 적는 것도 시작했다.  애초에 목표가 현실적이었기에 엄청난 결과를 얻은 것은 아니지만 충동구매나 쓸데없는 지출이 많이 줄어들었고 목표를 적어두고 결과를 한 달에 한 번 확인하는 행동만으로도 목표와 결과를 비슷하게 을 수 있었다.



 

 하지만 너무 세부적으로 계획을 세우지는 않기를 바란다. 많은 계획을 세우고 실패도 많이 해 본 나의 경험을 돌아보면 지나치게 세부적인 계획은 중간에 포기하기 쉽기 때문에 성향에 맞추어 나의 상황을 정리해보고 나에게 맞게 하나씩 미뤄둔 일들을 해나간다면 우리가 '고민'만 하느라 해결하지 못했던 것들이 우리의 '행동'으로 하나씩 사라져 가지 않을까 싶다. 작은 성취, 성공이 쌓여 원하는 것을 얻는 습관을 만들어낸다는 자기 계발서들의 이야기처럼 말이다.


   같은 미루기의 달인이 있다면 오늘 내 방부터 정리를 시작해보는 건 어떨까? 그렇다면 정리되지 않아 보이지 않던 공간처럼 당신의 시야를 방해하 던 무언가를 걷어내 버릴 수 있지 않을까? 앓던 이 빠진 기분을 함께 누리면 좋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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