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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예의바른악당 Dec 03. 2018

호구정신

‘호구인가?’라는 생각은 요 며칠 새 머릿속을 떠돌지 않고 질타했던 질문이다. 


불합리해도 그것이 불공평한지 모르고, 가만히 당하고 있다는 뜻의 호구는 사전적 풀이만 해도 화가 치밀어 오른다. 나는 왜 불합리한 일에도 침묵하고 있는가를 생각하는데 집에 와서 가족한테 짜증을 부리고 있는 모습을 발견하니 그러한 내 모습에 또 한번 짜증이 난다. 


화가 나고 욕이라도 싶은데, 그러면 더 후회할 것 같아서 맘대로 털어놓지도 못한다. 


문득, 학창시절 읽었던 김수영의 ‘어느 날 고궁을 나오면서’ 시에서 조그만 일에 분개하는 소시민이 떠올랐다. 진짜 화내야 할 일에 화내지 못하고, 국밥에 나온 갈비 비계에 분노하던 그의 모습과 지금의 내가 무엇이 다른가.       



호구의 뜻을 새삼 다시 검색해보며 내 나름의 새로운 정의와 각오를 다시 써본다.


호구 虎口

1. 어수룩하여 이용하기 좋은 사람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2. 범의 아가리, 매우 위태로운 처지나 형편을 이르는 말.


일반적으로 알고 있는 호구의 뜻을 찾다 보면 한자어를 그대로 풀어 쓴 ‘범의 아가리’란 뜻도 보인다. 이마저도 범의 아가리 뒤에는 위태로운 지경을 이르는 말이라 풀어놓았는데, 호랑이 굴에 들어간 사람과 같은 상황을 생각해 위태로운 지경이라고 묘사한 것 같다. 


사람의 입장에서 풀이한 것이므로, 다시 내 입장에서 ‘호랑이 아가리’를 풀이해 보련다. 호랑이 아가리의 뜻은 그만큼 호랑이 자체가 위협적인 존재라는 뜻이기도 하다. 불평에 할 말을 제대로 못하는 것과는 상반된 이미지다. 


호랑이 동물의 특성을 살펴보면, 큰 몸집과 매서운 눈빛으로 별다른 제스처 없이 등장만으로 주변 동물들을 억누른다. 이것이야말로 굉장한 ‘아우라’다. 어찌 보면 별다른 말 안 하는 관용적인 의미의 호구와도 비슷한 것 같다. 


하지만 할 말 못하는 호구와 말하지 않아도 알아주는 호구의 아우라는 차이가 있다.  굳이 센 척하지 않아도 진가를 발휘하는 호구정신이 빛을 발하는 그날을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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