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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예의바른악당 Dec 13. 2018

혼자 떠나고 싶을 때 가면 좋은 '지리산' 여행

 

외딴 섬의 이미지는 고독하지만, 호기심을 불러일으키는 묘한 매력이 있다. 지리산 산중에 자리잡은 게스트하우스 ‘큰고래’가 그랬다. 직장 동료에게 들어 알게 된 ‘큰고래’는 이름부터 심상찮았다. 이름을 들었을 때 ‘돌고래’와 헷갈려서 큰고래라는 이름을 머릿속에 각인시키는 데도 한참 걸렸다. 


그럼에도 굳이 큰고래를 고집했던 이유는 시간을 내지 않으면 가기 힘든 ‘지리산’이라는 거리적 특성과 시간을 내서 떠나고 싶을 정도로 일단 떠나고 보자는 생각 때문이었다. 결정적 계기는 혼자 어딜 떠나본 경험이 없었다. 이번이 기회였다. 


혼자 여행을 떠나며 느낀 점이 가는 길을 찾는 방법부터 어려웠다는 것. 살면서 이렇게 혼자 해본 것이 없었나란 생각이 들었다. 가는 길 관련 블로그 글만 몇 번이나 봤는지 모르겠다. 앞으로는 좀 더 혼자 여행을 떠나봐야겠다. 


2박 3일 일정으로 ‘무념무상’ ‘발길 닿는 대로’가 이번 지리산 여행의 컨셉이었다. 주변 추천지를 찾아봐도 잘 모르겠단 생각에 최대한 자연을 만끽하자는 주의였다. 머무는 동안 아무 생각을 하지 않을 수 있는 것도 큰 행운이란 생각이 들었다. 평소에 생각이 많은 타입이니까. 


지리산 게스트하우스 ‘큰고래’ 가는 길


동서울 터미널(지리산 백무동 방향)

동서울-함양-인양-마천-지리산 / 마천 터미널역에서 내림



큰고래 게스트하우스는 픽업 서비스가 있는데, 자가용이 없는 사람들을 위해 사장님이 직접 마천터미널까지 픽업하러 오신다. 사장님의 귀여운 꼬마 아가씨 등하교 시간에 맞춰 픽업 서비스를 제공하는 것이기 때문에 픽업을 요청하려면 사전에 픽업시간을 이야기해봐야 한다.   


터미널에 내려 바라본 하늘은 정말 푸르고 맑았다. 서울에서 느껴본 적 없는 한적함이 여유로움 그 자체였다. 시간가는 줄 모르고 있다가 사장님의 빨간 자동차가 보였다. 게스트하우스로 향하는 차 안에서 이곳에 오게 된 이야기를 나눴다. 독특한 곳에 위치해서인지, 다른 사람들도 추천받거나 검색해서 오는 것 같았다.     


  


보는 것 자체가 힐링


굽이굽이 좁은 길을 올라 도착한 게스트하우스는 주차장부터 눈에 띄었다. 고물이 된 것 같은 큰 자동차가 궁금해서 무엇인지 물었는데, 예전에 캠핑 다닐 때 썼던 차라고 해서 더욱 시선이 갔다. 알록달록한 무늬로 둘러싼 차 외양이 그때의 행복감이 묻어나는 추억 같았다. 

참고로 이 게스트하우스는 사장님 부부가 직접 설계하고 지은 건물이다. 그래서인지, 내부 인테리어에서 사장님 부부의 손길을 고스란히 느낄 수 있다. 지리산 풍경을 한눈에 볼 수 있는 시원한 창이나 빈티지 풍의 장식에 정감이 갔다. 무엇보다 좋았던 것은 다락방 같은 숙소다. 


어렸을 때 ‘빨강머리 앤’이란 만화를 보며 다락방을 갖고 싶단 생각을 했는데, 멀리서나마 그 꿈을 간접 체험해볼 기회였다. 


혼자 가면 심심하고, 할 거 없지 않냐는 질문을 종종 받았는데 나는 그렇지 않았다. 아기자기한 소품들 보느라, 바깥 구경 하느라 시간이 훌훌 갔다. 짐을 놓고 다시 밖으로 나가 게스트하우스 주변을 돌아봤다. 


서울에서 느껴보지 못한 겨울공기의 청명함. 탁 트인 지리산풍경 한자락. 게스트하우스 지붕에서 모락모락 피

어 오르는 김. 이 모든 것이 좋았다.  


참고로 큰고래의 또 다른 장점은 저녁과 아침을 챙겨준다. 사실 혼자 여행가면 먹거리도 고민인데, 이 점을 미리 해결할 수 있어서 좋았다. 채소가 있는 자연식이고, 사장님이 특별히 만든 달콤한 차까지 맛볼 수 있어 정감이 넘쳤다. 


처음 보는 사장님 부부, 꼬마 숙녀와 함께한 식사는 정말로 심심할 뻔한 홀로 여행에서 감초가 되어 주었다. 여행과 책, 음악을 좋아하는 사장님 부부의 인생관을 느낄 수 있었던 시간이었다. 태국의 ‘치앙마이’를 여행지로 추천해주셨는데 이번을 기회 삼아 또 떠날 것 같다.. ㅎㅎ


머무는 동안 비가 내려 어딜 구경할 수 있을지 고민됐다. 다행히, 비가 그치고 안개가 서서히 걷혀 근처 ‘서암정사’와 ‘벽송사’를 구경할 수 있었다. 


이 두 곳은 지리산 둘레길이라 가는 길이 복잡하지 않고 도로가 잘 닦여 있었다. 걸어 올라갈 때 조금 숨이 찼지만, 이것도 운동부족이겠거니 하며 오랜만에 걸음에 몰입할 수 있는 시간에 감사했다. 



서암 정사는 주변에 꾸려놓은 연못과 정자가 볼만하다. 석상에서 또르르 물 흐르는 소리를 들으면 마음이 평안해진다. 스치듯 지나칠 수 있는 진귀한 곳도 있었는데 바로 석굴법당이다. 밖에서만 보면 평범한 법당 같은데 안에 들어가면 돌로 조각된 부처님 석굴의 웅장함에 반전 매력이 있다. 조용히 그곳에 들어가 앉아 있다가 벽송사를 봐야 했기에 가는 발걸음을 재촉해 그곳을 나왔다. 


그 위치에 가야 볼 수 있는 것들이 있다


벽송사도 지리산 유명 사찰 중 하나인데, 큰 볼거리는 소나무 두 그루다. 사장님의 추천으로 소나무를 보려고 벽송사에 들렀는데, 소나무를 보려면 안에 사찰을 지나 올라가야 한다. 사찰 안은 스님이 수행하는 곳이라 곳곳에 정숙을 요구하는 푯말이 보였다.   


가기 전에 인스타에서 본 풍경을 찾고 싶은데 처음 도착했을 땐 도저히 그 풍경의 위치를 찾을 수 없었다. 그럼에도 오르며 그 위치에서 볼 수 있는 것들을 발견했다. 소나무가 있는 곳까지 가며 한 단계 한 단계에서 사진을 찍는데 정점에 다다르니 중간 위치에서 볼 수 없었던 나뭇가지의 감이 보였고, 꼭대기에선 웅장한 소나무와 벽송사 전체를 조망할 수 있는 풍경이 눈에 들어왔다. 



문득 지금의 내 모습을 떠올렸다. 한 해를 마무리해가는 지금 위치에서 볼 수 있는 것과 처음 일을 시작했을 때 봤던 것들은 분명 다를 것이다. 전체를 조망하려는 눈은 현재에 머무르지 않으려는 부단한 노력이 필요하단 사실을 다시금 깨닫는다. 같은 장소도 다른 각도와 위치에서 보면 다른 풍경이 되니까. 


떠나는 마지막날 사장님이 틀어줬던 심수봉의 ‘백만송이장미’가 생각난다. 


미워하는 미워하는 미워하는 마음없이

아낌없이 아낌없이 사랑을 주기만 할 때

수백만송이 백만송이 백만송이 꽃은 피고


아무 생각 없이 음악을 감상했던 그 시간처럼 

훅하고 떠나고 싶은 날 다시 여유롭게 지리산 큰고래에 가고 싶다.    


블로그 https://blog.naver.com/whitemj0314/22141878568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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