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험기간에는 "배 아프다" "속 안 좋다" 징징 거리던 아이들. 시험만 끝나면 180도 달라져 잘만 논다. 부모 입장에선 "결국 공부하기 싫다는 핑계였군"이라 생각하기 쉽지만 꼭 그렇지도 않다. 스트레스가 장 기능에 영향을 줘 불편한 증상을 만든다는 것은 잘 알려진 의학적 사실이다. 그리고 이런 인과관계가 한창 공부하는 청소년에게도 그대로 적용된다는 새 연구 결과를 이 땅의 부모들에게 소개한다.
◆고3에 가까워질수록 흔해지는 '과민성대장증후군'
가톨릭대성빈센트병원 송상욱 교수팀은 경기도 지역 여중고생 820명을 대상으로 생활습관과 스트레스 정도 그리고 과민성대장증후군의 관계를 연구했다. 중학생 중 8.5%, 고등학생은 17.1%가 과민성대장증후군 기준에 부합했다. 이는 학년이 올라갈수록 증가하는 추세를 보였다. 이번 연구에선 고3 학생을 제외했기 때문에 실제 중고생의 유병률은 이보다 높을 수 있다.
증상을 가진 학생과 그렇지 않은 학생 사이에 어떤 차이가 있는지도 살펴봤다. 고지방ㆍ고염식 음식을 좋아하고 술을 마시며 하루 6시간 이하 자는 학생들에서 유병률이 높았다. 더 중요한 발견은 정신과 부분이다. 증상을 가진 학생들이 그렇지 않은 경우보다 더 많은 걱정과 더 강한 스트레스를 느끼는 것으로 조사됐다. 이는 통계적으로 유의한 차이다. 스트레스 정도를 경증ㆍ중간ㆍ중증으로 나눠보니 중증 그룹의 과민성대장증후군 유병률은 20.3%인 데 비해 경증은 6.3%에 불과해 큰 차이를 보였다. 연구결과는 대한의학회지(JKMS)에 실렸다.
◆심리적 불안 해소가 가장 중요
연구가 시사하는 바는 분명하다. 장 건강에 이상이 생긴 학생들은 기본 의료적 처치 외 정신과적 접근이 필수라는 것이다. 송상욱 교수는 "배가 아프거나 불편하다며 학교를 조퇴하고 병원을 오는 아이들이 많은데 검사해보면 특별한 이상이 발견되지 않는 경우가 흔하다"며 "이런 아이들은 어떤 정신적 고민거리를 갖고 있는지 부모와 의료진이 세심히 살펴볼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과민성대장증후군은 복통, 비정상적 복부팽창, 배변습관의 변화 등이 3개월 이상 지속되는 경우를 말한다. 유병률은 여성이 남성보다 2배 정도 높다. 대표적 증상은 설사와 변비다. 크게 3가지 패턴으로 분류되는데 설사, 변비 혹은 설사와 변비를 번갈아 겪는 경우다. 변비는 어떤 이유에서든 위장 움직임이 줄어든 경우고 설사는 그 반대다. 특정 질환이 유발하는 종류의 질병이 아니기 때문에 내시경이나 영상검사로 진단되지 않는다.
스트레스가 왜 '장'의 움직임에 영향을 미치는지는 잘 알려져 있지 않다. 우울증이 신체적 통증을 수반하는 것처럼 정서적 변화, 신경전달물질 조절 실패 등 복합적 요인이 장의 운동 기능에 영향을 주는 것으로 추정된다.
◆고지방ㆍ고염식 피하고 규칙적 식생활을…
입시를 앞둔 학생들이 그 나이에 감당하기 어려운 수준의 '성과 스트레스'를 겪는 경우가 많을 것임을 감안하면, 과민성대장증후군을 단지 약물요법으로만 해결하려 드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전문가들은 입을 모은다. 민영일 비에비스 나무병원 대표원장은 "약물치료보다 심리적 불안을 해소하는 게 가장 중요하다"고 말했다. 그는 또 "이 병이 생명을 위협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인식시키고 나을 수 있다고 믿게 해 주기만 해도 스트레스가 감소해 증상이 호전될 수 있다"고 덧붙였다.
때문에 경험 있는 의사들은 검사상 특별한 문제가 발견되지 않을 경우, 스트레스로 인한 과민성대장증후군을 의심하고 환자를 안심시키며 신뢰감을 심어주기 위해 노력한다. 환자에게 가짜 약을 줘도 증상이 호전되는 경우가 많다는 연구결과도 있다고 한다.
부모 입장에서도 아이들이 겪을 스트레스의 정도를 이해해주고 보듬어주는 것만으로도 큰 효과를 볼 수 있다. 식생활 측면에선 카페인, 알코올, 지방ㆍ염분이 많은 음식은 증상을 악화시킬 수 있으니 피하도록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