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 나는 아이, 병원에 가야할 때와 지켜봐야 할 때 그리고 다양한 상황들
아이를 키워본 부모로서, 열이 날 때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가는 매우 난해한 문제다. '열을 잰다, 해열제를 먹인다 그래도 안 떨어지면 응급실에 간다'처럼 그다지 간단한 일이 아니다(게다가 아이들은 보통 밤에 열이 난다). 아래 글은 그런 경험을 바탕으로 묻고 뒤져서 작성했다. 긴 글을 간략히 요약하면, 열이란 무엇인지 의학적 의미를 머리에 넣은 상태로(부모의 의무다!), 열을 떨어뜨리는 것이 능사는 아니다, 행동이 필요한 시점은 38도다, 그리고 이럴 때는 지체없이 병원을 가야 한다로 요약된다.
열 나는 아이를 앞에 두고 당황하는 것은 전 세계 부모들의 공통된 모습이다. '약을 한 번 더 먹여야 하나'에서부터 '응급실에 가야 하나'까지 애매한 갈림길에 선 부모들은 결단을 내리지 못한다. 판단을 도울 만한 정보는 주변에 많이 있지만, 발생하는 다양한 경우의 수를 세세히 구분해주지 못하는 한계가 있다. 심지어 대학병원 소아과 교수도 "부모의 성향에 따라 판단이 갈리는 것은 어쩔 수 없다"고 말하기도 한다. 이런 현실을 해결하고 싶었는지 미국소아과학회가 참고할 만한 좋은 논문을 최근 발표했다. 핵심은 '열은 심각한 경우가 아니라면 지나치게 걱정할 필요가 없다' 정도다.
◆'해열'은 수단이지 목적이 아니다
의학저널 소아과(Pediatrics)에 게재된 논문은 부모들이 흔히 갖게 되는 '열에 대한 공포감'을 다루고 있다. 정상적인 체온은 36.5℃에서 37℃ 수준인데 38℃가 넘으면 '발열 상태'로 본다. 체온이 올라가는 이유는 여러 이유가 있을 수 있다. 가장 흔한 원인은 바이러스나 세균 감염이다. 발열 그 자체는 질병이 아니라 증상일 뿐이며 자연스러운 신체 기능 중 하나다.
열은 주인에게 불편함을 주지만 그 자체가 질병을 악화시키는 작용을 하진 않는다. 일부 연구에서 열이 바이러스와 세균의 증식 및 성장을 지연시키고 백혈구 활동에 도움을 준다는 보고도 있다. 즉 감염으로부터 빨리 회복될 수 있도록 면역시스템을 강화시켜 주는 셈이다. 이런 의미에서 논문은 '치료의 목적은 열이 난 아이들이 편함을 느끼도록 하는 것이지 어떤 수단을 써서라도 열을 떨어뜨리는 것이 아니다'고 강조하고 있다.
◆열, 떨어뜨릴 것인가 지켜볼 것인가
발열을 하나의 방어기전으로 본다면 해열의 필요성이 없겠으나 그렇게 쉽게 생각하는 건 좀 위험하다. 발열 상태를 그대로 두는 것이 생존율 향상에 도움이 되는지에 대해선 아직 확실한 결론이 없기 때문이다.
반면 열이 건강에 즉각적으로 해를 끼치는 점은 확실해 보이는데, 체온이 1℃ 상승할 때마다 산소 소비량이 13% 증가하고 열량 소비와 수분 증발도 늘어난다. 이런 과정은 신체 장기에 상당한 부담으로 작용한다.
결국 지나치게 해열에 집착하는 것을 피하면서도 적절한 타이밍에 열을 떨어뜨리는 '판단의 묘'를 발휘하는 것은 부모의 과제로 남는다. 일단 논문은 '목적과 수단'을 구분하라고 조언하고 있다. 아이가 열이 나면 탈수 위험이 증가하므로 수분 공급에 집중해야 한다. 그리고 아이가 매우 비정상적인 행동이나 상태를 보이는가 관찰한다.
목적은 '아이가 편함을 느끼게 하는 것'이지 '무조건 열을 떨어뜨리는 것'이 아니란 점을 명심해야 한다. 즉 아이가 잠을 잔다면 해열제를 먹이기 위해 깨우지 말아야 한다. 물론 38℃가 넘는 상태로 수시간 이상 지속되는 극단적인 경우를 말하는 것은 아니다. 미열을 잡기 위해 잠을 깨운다면 목적과 수단이 바뀐 것이라고 논문은 강조한다.
◆해열제를 든 순간 부모는 의사가 돼야 한다
미열에 과도하게 대응하지 말라는 것은 많은 전문가들의 공통된 의견이다. 안강모 성균관의대 소아청소년과 교수(삼성서울병원)는 "38℃ 이하의 열은 아기가 많이 힘들어하지 않고 오히려 면역기능을 촉진시키는 효과가 있기 때문에 그냥 두는 것이 좋다"고 말했다.
기본적으로 해열제를 고려하는 순간은 38.3℃ 이상일 때다. 약을 먹인 후 옷을 벗기고 미지근한 물수건으로 엉덩이와 허벅지를 문지르며 닦아준다. 체온보다 낮은 온도의 물이면 되지 굳이 알코올이나 찬물을 쓸 필요는 없다. 앞가슴이나 배는 상처를 줄 수 있으므로 피하는 게 좋다.
해열제 사용의 기본은 정해진 용량과 용법을 지키는 것이다. 하지만 해열제를 사용하다 보면 의외의 상황에 자주 처하게 되는데, 이를 대비해 간단한 상식은 머리에 담아두는 것이 좋겠다(표 참조). 아이의 체중을 알아두고 해열제의 용량을 잴 도구를 미리 구비하는 것은 기본이다.
안 교수는 "아무런 이유도 없이 열이 오르진 않는다. 열은 병이 아니라 병이 있는 것을 나타내 주는 신호"라고 말했다. 아이가 평소에도 미열을 가지고 있거나, 발열 상태가 수일 동안 지속된다면 부모의 역할은 열을 떨어뜨리는 데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병원을 찾아 검사를 받도록 하는 데까지 이어져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