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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N Hoult Nov 20. 2015

신비로운 목소리의 여성 싱어를 만나보세요.

아이리시 록 밴드 크랜베리스(Cranberries)


크랜베리스, 많은 분이 알고 계실 텐데요.

먼저 우리나라에서 가장 유명한 곡이라고 하면 왕가위 감독의 영화 '중경삼림(Chungking Express, 1994)'의 삽입곡 'Dreams'가 등장해 주어야겠지요. 이 곡은 중경삼림에서 패스트푸드점 직원이었던 왕비 혹은 왕정문(王菲, Faye Wong)이 '몽중인(夢中人)'이라는 제목으로 불러 인기를 끌었습니다.

크랜베리스는 아일랜드 출신의 혼성 4인조 락 밴드로 장르는 얼터너티브 록(Alternative rock), 켈틱 록(Celtic rock), 드림 팝(Dream pop), 쟁글 팝(Jangle pop)입니다.


켈틱 록(Celtic rock), Celtic. 켈트어, 켈트족이라는 뜻으로 켈트 음악이라 함은 말 그대로 켈트 문화권인 스코틀랜드, 아일랜드, 웨일스, 갈리시아 등에서 연주되는 민족음악이지요. 많은 분이 좋아하는 아이리시 록 밴드 스크립트(The Script)가 '켈틱 소울'이라는 새로운 장르를 만들어 내기도 했습니다. 아일랜드 출신의 대표 밴드는 뭐니 뭐니 해도 U2가 먼저 생각나겠고요, 엔야(Eithne Ni Bhraonain, Enya)나 시나드 오코너(Sinead O’Connor) 등도 있습니다. 그리고 아일랜드는 영국으로부터 오랜 지배를 받았던 영향으로 우울한 분위기의 음악에 독립을 갈망하는 정치적인 메시지를 담고 있는 것이 특징입니다.


쟁글 팝(Jangle pop)은 쟁글거리는 기타 사운드를 중심으로 기원은 60년대이고 80년대에 이르러 확립된 하위 장르인데, 60년대 비틀스로 시작되어 버즈(The Byrds)로 이어지고, 이후 80년대에 R.E.M, 스미스(The Smiths)로 대표되는 쟁글 팝은 부흥기를 맞이하게 됩니다.


멤버는 노엘 호건(Noel Hogan/ 기타), 마이크 호건(Mike Hogan/ 베이스) 형제 퍼갤 로울러(Fergal Lawler/ 드럼) 그리고 밴드의 보컬 구인 광고를 보고 찾아온 여성 보컬리스트 돌로레스 오리어던(Dolores O'Riordan)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여성 보컬리스트의 목소리를 어떻게 표현해야 할까요? 신비롭고 마력이 있습니다. 90년대에 그녀의 목소리를 얼마나 잘 흉내 내느냐에 따라 여성 보컬을 구성원으로 둔 밴드가 유명세를 타느냐가 결정되었을 정도였다고 하니 크랜베리스의 최대의 무기는 바로 돌로레스의 목소리겠군요. 자우림에 김윤아 씨도 초기에 돌로레스의 영향을 받은 창법이었다고 하고요.


처음부터 밴드 명이 크랜베리스였던 건 아니고, 1989년 아일랜드의 작은 마을 라임릭(Limerick)에서 노엘과 마이크 형제 그리고 퍼갤과 보컬 나이올 퀸(Niall Quinn)을 구성원으로 크랜베리 소 어스(The Cranberry Saw Us) - Cranberry Sauce를 소리 나는 대로 읽은 것이라고 합니다. - 라는 이름으로 결성하였습니다. 

하지만 1990년 보컬의 탈퇴로 롤 로레스(당시 18세)를 영입해 밴드명을  크랜베리스로 바꾸었지요.



데뷔 앨범 Everybody Else Is Doing It, So Why Can't We? (1993)

처음 데뷔 앨범을 발표하였을 때 많은 반응은 이끌어내지 못했지만, 중경삼림 덕분에 뒤늦게 조명이 된 앨범입니다. 앨범 제목부터, 남들 다 하는데 우리라고 못할까 봐?


발매 연도가 93년인데 90년대는 너바나와 펄 잼으로 대표되는 얼터너티브에서 파생된 그런지의 바람이 대단했던 시기이죠. 이 시기에 다른(?) 음악이 선전했다는 건 그만큼 신선하다는 말도 되겠고요.


위에서 설명한 쟁글 팝, 찰랑거리는 기타 사운드와 아일랜드 특유의 신비스럽고 달콤한 멜로디는 신선한 충격을 주기에 충분했던 것 같습니다. 물론, 이전에 스미스나 R.E.M이 먼저이겠지만요. 상업적으로도 큰 성공을 거둔 앨범이며, 90년대를 대표할 만한 앨범으로 손색이 없습니다. 중경삼림에 쓰인 2번 트랙 'Dreams'가 수록되어 있고, 7번 트랙 'Linger'는 아담 샌들러 주연의 영화 클릭(Click, 2006)에 쓰였습니다.



두 번째 앨범 No Need to Argue (1994)

크랜베리스의 또 다른 대표곡 첫 싱글이기도 한 'Zombie'가 수록된 앨범입니다. 이들의 노래 중 개인적으로 가장 좋아하는 곡이고요. 들어보시면 아시겠지만, 전작의 'Dreams'는 상콤하고 아기자기했다면 이 곡은 헤비한 사운드가 일품입니다.


2집부터 자신들이 전하고자 하는 신념(어려서부터 보아온 아일랜드의 현실)을 가사에 담아 선배 밴드 U2의 뒤를 이어갑니다. 


국내 광고음악으로 쓰인 두 번째 싱글 1번 트랙 'Ode To My Family', 락 사운드가 인상적인 2번 트랙 'I Can't Be With You' 등이 수록되어 있고, 크랜베리스의 음악을 이해하고 싶은 분은 1, 2집을 들어보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 7번 트랙 'The Icicle Melts'는 IRA의 벨파스트(Belfast) 폭탄 테러 사건에 대해 노래했습니다. (IRA나 아일랜드의 시대적 상황은 하단에 정리해 두도록 하겠습니다.)


데뷔 앨범의 성공과 더불어 94년에 우드스탁 무대에서 아이리쉬 밴드로서의 위상을 뽐냈고, 같은 해 카펜터즈에게 바치는 헌정 앨범 형식에 트리뷰트 앨범 'If I Were a Carpenter (tribute album)' 중 카펜터즈의 명곡 '(They Long to Be) Close to You'(16번 트랙)를 불러 인기를 끌기도 했습니다.



3집 앨범 To the Faithful Departed (1996)

전작들과 다른 분위기에 3집 앨범이로군요. 앨범 제목도 심상치 않습니다. 전작의 'Zombie'의 가사도 1916년 아일랜드의 영국에 대한 혁명의 내용을 담고 있는 것으로 보아  이들은 심각한 메시지를 전달하는 가사를 많이 채용합니다. 3집 앨범은 전체적으로 더 무거워지고 심각해졌습니다. 헤비한 사운드로 문을 연 1번 트랙 'Hollywood', 5번 트랙 'War Child'와 14번 트랙 'Bosnia'는 내전으로 고통받는 아이들을 노래하였고, 강렬하게 시작해 총성으로 마무리되는 9번 트랙 'I Just Shot John Lennon', 차트에서 좋은 성적을 기록하였던 두 번째 싱글 4번 트랙 'Free to Decide' 등이 수록되어 있습니다.




4집 앨범 Bury the Hatchet (1999)

데뷔 앨범부터 3집까지 커버에 멤버의 사진이 들어갔지만, 4집에는 멤버들 대신 커버가 무척 인상적입니다. 핑크 플로이드, 레드 제플린, 블랙 사바스, 뮤즈 등의 앨범 커버를 기획했던 스톰 소거슨(Storm

Thorgerson)의 작품입니다.


앨범 제목이 Bury the Hatchet. 도끼를 묻다, 논쟁을 중단하다의 뜻으로 무기를 버리고 화해와 새로운 출발을 의미합니다. 이들은 3집 앨범 발매 이후 상당한 중압감에 시달려야 했는데요, 눈코 뜰 새 없는 바쁜 일정을 뒤로하고 각자의 가족에게로 돌아가 휴식을 취한 뒤 3년 만에 4집을 발매하였습니다.


앨범의 특징이라고 하면 우선 무거운 주제의 노래에서 다소 긍정적인 시선으로 바뀐 점이 눈에 띄고, 쟁글 팝의 성격보다는 어쿠스틱 사운드와 재즈 및 라틴음악 스타일의 곡도 눈길을 끌고 있습니다. 여러 나라에서 앨범 차트 정상에 이름을 올리며 여전히 건재함을 알리기도 하였죠. 지난 작품들에서의 신비로움은 축소되었으나 '새로운 출발'의 의미로 본다면 매우 적절한 앨범 구성이 아닌가 싶습니다.


도입부가 어쿠스틱 사운드로 시작되는 두 번째 싱글 1번 트랙 'Animal Instinct',  첫 싱글인 3번 트랙 'Promises'는 잔잔하게 시작해 헤비한 기타 연주로 이어지는 락적인 곡입니다. 아름다운 곡 4번 트랙 'You and Me'와 8번 트랙 'Saving Grace', 그리고 흥겨운 비트의 7번 트랙 'Desperate Andy' 등이 수록되어 있습니다. 




5집 앨범 Wake Up and Smell the Coffee (2001)

앨범 제목이 달콤한데, 'Wake Up and Smell the Coffee'가 '정신 차리고 상황을 직시하라'의 뜻이지 않나요? 우리나라 말로 한다면, 정신 좀 차리지 그래? 혹은 냉수 먹고 속 차리셔~....... 정도??


전작들을 아일랜드(Island Records)에서 발매를 하다가 5집은 MCA Records로 옮겨 발매하였지요.

옮긴 이유가 전 소속사는 음악을 부차적으로 여겼기 때문이라고 전해집니다.


단순한 악기 구성의 잔잔한 오프닝 트랙 'Never Grow Old'를 지나 업템포의 첫 싱글 2번 트랙 'Analyse', 시계 소리로 시작하는 3번 트랙 'Time Is Ticking Out'은 체르노빌 사태에 대해 쓴 곡이지요. 전체적으로 차분한 분위기 속에 보너스 트랙으로 정치적인 메시지를 담았던 3집의 'Salvation' 라이브 버전을 넣는 강렬함도 빼놓지 않았습니다.




6집 앨범 Roses (2012)

5집 이후 새 앨범을 위해 세션 구성을 한다는 소식도 들려왔으나 얼마 지나지 않아 활동 중단, 해체를 결정하였습니다. 이후 돌로레스는 솔로 앨범을 발매하였고, 다른 멤버 역시 프로젝트 밴드 활동을 하며 각자 고국에서 생활하였습니다.


2009년 돌로레스의 트리니티 대학(Trinity College)에서 명예 학위를 받는 날 멤버들이 한자리에 모여 그녀를 축하하는 어쿠스틱 공연을 펼치게 됩니다.  "우리가 함께 연주하던 그 순간, 우리는 결코 해체한 적이 없었던 것 같다는 느낌이 들었어요. 크랜베리스로 연주하는 것에는 항상 뭔가 특별함이 있었어요. 마치 딱 맞는 신발을 신은 듯한 느낌이었죠." 이후 재결성하여 2010년에 세계 투어에 나서고, 데뷔 앨범의 프로듀서였던 스티븐 스트리트(Stephen Street)와 새 앨범 Roses를 완성하였습니다.


앨범 커버에서도 뭔가 연륜이 느껴집니다. 공격적이고 강한 음악은 없지만, 데뷔 앨범에서의 서정적이고 고요한 음악 스타일은 처음 듣는 사람에게도 쉽게 친해질 수 있는 음악입니다. 이들의 음악임을 쉽게 눈치챌 수 있는 오프닝 트랙 'Conduct'로 시작하여 어쿠스틱 록 느낌의 경쾌한 2번 트랙 'Tomorrow', 돌로레스의 보컬을 느끼고 싶다면 10번 트랙 'So Good'과 11번 트랙 'Roses'를 들어보시면 될 것 같습니다.



크랜베리스는 여성 보컬이 무척 매력이지요. 이들의 무기이자 어쩌면 한계가 될 수도 있는 거 같고요.

하지만 이들은 무조건 내지르는 것만이 록이 아니다. 를 잘 말해 주고 있습니다.


3집 이후 느낌이 많이 달라진 크랜베리스인데, 정상의 위치에서 느끼는 중압감을 다 이해할 수는 없는 거지만 어느 정도 예상됩니다. '아이를 가져보면 어리석은 문제들로 더 이상 고민하지 않게 된다.' 실제로 여성 보컬 돌로레스는 4집 발표 전 아이를 출산하기도 했습니다.


5집에 이르러 일각에서는 '실추된 크랜베리스의 음악', '더 이상 전성기 없는 크랜베리스'라고 실망감의 의견을 낸 이들도 있었습니다만. 다만 한 가지. 상업적 성패를 떠나 이들은 부담감을 떨쳐내고  편안해졌다는 것입니다. 그 사람이 되어 그 상황을 겪어보지 않은 사람들이 섣불리 판단하는 건 옳지 않다고 봅니다. 우리 모두 역지사지의 마음이 되어 봅시다!! (이건 또 무슨 뻘마무리랍니까.... ;;)




음악을 들으시는 데에 도움이 될까 해서 아일랜드의 상황을 잠시 짚어 보겠습니다. 우리나라에 광주 5. 18이 있다면, 역시 아픈 역사인 아일랜드에는 '피의 일요일'이 있습니다. 1972년 1월 30일 일요일, 북아일랜드 런던데리(Londonderry) 시에서 영국군이 북아일랜드 시위대를 향해 발포하였고, 14명 사망, 13명이 중상을 입는 사건이지요. 사망자 중 7명이 10대 학생이었다고 합니다.


사건의 배경은 17세기 아일랜드를 식민지화한 영국이 가톨릭 국가인 북아일랜드를 중심으로 신교도(청교도)들의 이주정책을 감행하였고, 1921년 아일랜드는 영국으로부터 독립하였지만, 신교도들이 많이 남아있던 북아일랜드는 여전히 영국령으로 남게 되었습니다. 이러한 상황은 가톨릭 교도들과 이주한 영국의 신교도 이주민 사이에 충돌이 빚어질 수밖에 없었는데요, 1972년 1월 30일. 1만여 명의 데리시의 주민들은 이주한 신교도파와 동등한 권리와 시민권을 요구하는 시위를 벌이게 되는데, 영국 정부에서 이를 폭력적 집회 가능성으로 간주하여 대규모 군대를 배치, 데리시를 봉쇄하게 되지요.


이날 영국군 피해자는 단 한 명도 없었고, 시위자들은 총기를 소지하지 않았으나 이 사실을 은폐하여 정당한 사격이었다고 주장하였습니다. 사건이 일어난 지 38년 만인 2010년 6월 15일 영국의 데이빗 캐머런(David Cameron) 총리가 잘못을 인정하고 피해자 가족들에게 정식으로 사과하였습니다. "먼저 총을 쏜 것은 군인들이었습니다. 매우 유감스럽게 생각합니다. 그날 일어난 일은 정당하지 않고 정당화될 수도 없습니다. 정부와 국가를 대신해 매우 죄송스럽게 생각합니다." 


피의 일요일 사건 이후 북아일랜드 공화국군(IRA)이 무장투쟁에 나서는 계기가 되어 1998년에 평화협정이 이루어지고 2005년 무장해제를 하였지만,  그동안 유혈사태로 많은 사람들이 희생되었지요.


U2의 1983년 세 번째 앨범 War에 1번 트랙이 'Sunday, Bloody Sunday'입니다. 그날의 참혹했던 현장을 노래하였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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