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하기 전에는 가끔 떡케이크, 빵, 호두정과 등 만들어 보기도 했고, 신혼 초에는 퇴근길에 매일같이 저녁 메뉴가 될 재료들을 직접 사 요리를 했었기 때문에 내가 요리를 좋아하는 줄 알았다. 그때는 오늘은 무엇을 만들어 볼까 고민하는 것이 즐거웠고, 퇴근 후 남편이 올 때까지 요리하는 것이 소꿉놀이 마냥 재밌었다. 자랑할 땐 없지만 내가 만든 음식의 인증사진 찍는 것만으로도, 맛있게 먹는 남편의 모습을 보는 것만으로도 뿌듯함에 배가 불렀다. 신혼 때는 다 그렇지 않던가.
이제 결혼 8년 차에 접어드는 나는 훌륭한 요리 솜씨를 겸비한 준요리사가 되어 있겠지? 훗훗.
띠링~! 평생 요리 할 능력치를 모두 소진하였습니다.
헉! 안타깝게도 나는 평생 요리할 능력치를 신혼 초에 모두 소진해 버렸다. 그때 내 모든 능력을 발산해서인지 8년이 흐른 지금 오히려 할 줄 아는 음식이 더 줄어들었다. 어느 순간부터 매일 저녁 메뉴를 생각하고 요리해야 하는 일이 너무 고되고 힘들었다.
"그래, 난 요리를 맛있게 하는 편이지만, 요리하는 게 즐겁진 않아~ 아니 귀찮아!"
과거 직장 선배들이 나에게 했던 "나는 누가 해주는 밥이 세상에서 제일 맛있다니까~" "나는 직원 식당 밥이 그렇게 맛있더라~"라는 말을 지금 내가 후배들에게 똑같이 하고 있었다.
요리하는 재미도 먹는 재미도 사라진 지금의 나는 반찬 한 개 또는 국 한 개가 저녁 메뉴의 전부였고, 그 외 대부분은 배달 또는 이미 만들어진 음식을 사 오는 것이었다.그마저도 국은 엄마가 끓여 준 것을 냉동해 놓은 것이고, 반찬은 홈쇼핑에서 대량 구매 한 불고기, 갈비와 같은 것들이었다.
가끔 엄마가 상다리가 부러지도록 반찬을 해다 주지 않으면 대부분 그러했다.(우리 엄마 최고!)
그런데도 내가 지금까지 식사 담당인 것은 남편이 설거지 담당인 이유도 있지만, 고맙게도 남편은 내가 그 어떤 것을 차려줘도 다 너무나 맛있게 잘 먹는다는 것이다.우스개 소리로 "오빠는 내가 독약을 줘도 맛이게 먹을 거 같아"라고 장난치기도 한다.
얼마 전 저녁밥만 해도 미역국에 밥을 말아 죽처럼 된 일명 미역국 죽과 김치뿐이었으나 연신 맛있다 말하며 다 먹었다.미역국 죽은 못 참지! 미역국 죽, 정확히는 미역국에 그냥 흰밥만 말아 놓은 그것은 나의 베스트 메뉴이다.
한 번은 여느 때와 같이 밥과 국 한 가지 그리고 참외를 내놓았다. 밥과 국만 있는 밥상이 그날은 하도 초라하여 참외를 함께 올려놓은 것이다. 물론 참외는 밥 먹고 후식으로 먹으라는 의미로 내놓은 것이었지만, 나는 장난으로
"오늘은 참외가 반찬이야"
라고 말했는데, 그 말을 믿고 참외를 정말 반찬처럼 먹는 게 아닌가! 맙소사!
이렇게 주는 데로 잘 먹어주는 반찬 투정 없는 남편이 얼마나 고마운지 모른다.
엄마는 그런 남편 만난 것만 해도 내 복이라고 했다.
남편은 비위도 좋은지 내가 먹다 남긴 음식을 잘도 가져가 먹는다. 나는 음식을 끝까지 잘 먹지 못하고 꼭 한 두 숟가락씩 남기는 나쁜 습관이 있는데 남편은 그게 아깝다며 가져가 싹싹 긁어먹는다.
나는 이런 남편이 늘 고맙고 정말 귀엽다.
어쩌면 서두에 내가 음식을 맛있게 잘하는 편이라고 자만하게 된 것도 이런 남편 덕에 생긴 나의 오해일지도 모르겠다.
한 가지 아쉬운 건 8년의 시간이 흐른 지금, 나의 요리 능력치만 소진된 게 아니라 남편의 설거지 능력치도 함께 소진되어 버렸다는 사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