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벨로가 똑바로 선채 맞은편 책상 의자에 앉아 있는 사람을 향해 말했다. 카벨로의 바른 자세는 안 그래도 넓은 그의 어깨를 더 넓어 보이게 했다.
의자에 앉아 있는 남자는 세월이 흐른듯한 겉모습과는 다르게 매우 건장한 체격을 하고 있었고, 오랜 전투에서 살아남은 그를 사람들은 캡틴이라고 불렀다.
"갈수록 전사자가 늘어나고 있습니다, 캡틴. 병사들은 식량난에 시달린 지 오래고, 이 전쟁 또한 언제 끝날지 알 수 없습니다."
카벨로 옆에 서 있던 폴이 말했다.
"몇 달 전 있었던 치명적인 생물학적 테러로 인해 이미 많은 병사들에게 유전자 변형이 일어났습니다. 이것이 어떤 결과를 초래할지 캡틴께서도 알고 있지 않습니까? " 폴이 걱정스럽게 말을 이었다.
폴은 카벨로보다 키는 더 컸으나 마른 체격이었고, 오랜 전쟁으로 지친 기색이 영력 한 그의 얼굴은 하얗다 못해 창백해 보일 지경이었다. 폴은 늘 항복을 해서라도 전쟁을 끝내고 싶어 했다.
"우리의 현재 피해 상황은 어떻게 되나, 카벨로?" 거친 두 손을 깍지 낀 채 팔꿈치를 책상 위에 올려놓으며 캡틴이 말했다.
"최근 남쪽 지역의 약 1/5이 초토화된 이후 현재 최전방인 북쪽의 양대산맥 역시 피해가 심각합니다." 카벨로가 답했다.
"캡틴, 우리는 오랜 전쟁으로 너무 지쳤습니다. 병사들도 이제 더 이상 버틸 힘이 없습니다. 그만 항복하시죠!" 폴이 호소하듯 말했다.
"하아... 카벨로, 폴. 예전엔 우리도 행복했던 시절이 있었는데 말이야. 풍요로운 이 땅에서 우리는 배불리 먹으며 즐거운 시간을 보냈었는데... 어쩌다..."
캡틴은 자신의 두 손에 얼굴을 묻고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땡! 땡! 땡! 땡!
그때 갑자기 전쟁을 알리는 종이 울렸다.
"제군들 모두 위치로! "
캡틴이 호령했다.
"행운의 여신이 그대들과 함께 하길..."
"아아악...! 떨어진다...!"
폴의 비명이 처절하게 울려 퍼졌다.
그 소리를 들은 카벨로가 폴에게 달려갔고, 하얀 절벽 아래로 축 늘어진 몸에서 간신히 들어 올린 팔 하나가 힘겹게 카벨로의 손을 잡았다.
"폴! 제발... 힘을 내! 내 손 놓지 마!"
카벨로가 소리치며 말했다.
"으.. 으.. 윽... 카... 벨로... 나는 아무래도 오늘이 마지막인 것 같아... 이러다... 자네까지 위험해져. 이 손을... 놓아주게..." 폴이 힘겹게 말했다.
"안돼! 폴! 우리가 그동안 얼마나 힘들게 버텨왔는데... 윽... 여기서 이렇게 끝낼 순 없어!!!"
카벨로가 폴의 손을 놓지 않기 위해 안간힘을 썼고 일그러진 그의 얼굴에서 흐르는 눈물이 폴의 손등에 떨어졌다.
"카... 벨로... 캡틴에게 전해줘... 이제 그만 항복하라고... "
폴은 그렇게 말하고는 카벨로의 손을 놓았고 절벽 아래로 미끄러지듯 떨어졌다.
"하아......"
남자는 욕실 바닥에 수북이 떨어져 있는 머리카락들을 바라보면서 짜증 섞인 한숨을 내쉬었다.
"많이도 떨어졌네! 뒤통수에 원형 탈모가 생긴 것도 모자라 왜 이렇게 빠지는 거야!"
남자의 시선은 다시 거울로 향했고, 구불구불한 앞머리를 쓸어 올리면서 최근 부쩍 휑해진 M자 부분을 살피며 인상을 썼다.
현대 직장인들이 그렇듯 스트레스를 받는 일이 많았던 남자는 얼마 전 뒤통수에 원형탈모를 진단받았다. 나이가 들어감에 따라 외형은 점점 변한다지만, 예전 같지 않은 거울 속 자신의 모습을 보며 그는 가슴 한 구석이 울렁거렸다.
'하아... 우울하다 우울해.'라고 남자는 생각했다.
이 이야기는 어느 날 샤워 중 문득 물과 함께 내 어깨에 흘러내리는 머리카락 한올을 보며 머리카락을 의인화하여 만든 허구의 이야기입니다. 우리가 머리를 감거나 또는 말리는 행동을 '전쟁'으로 표현하였고, 생물학적 테러는 파마와 염색, 남쪽 지역 1/5 초토화는 뒤통수 원형탈모, 북쪽 지역 양대산맥 심각한 피해는 휑한 M자, 하얀 절벽은 두피를 의미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