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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온화 Jun 19. 2024

소풍이 아닌 현장체험학습

 

 막둥이 딸이 학교에서 소풍을 갑니다.

 오랜만에 소풍 도시락을 싸게 되었어요.


 "딸~ 소풍 갈 때 맛난 간식으로 뭐 먹고 싶어?"

 "소풍이요? 응?...... 아, 현장체험학습이요~."


 요즘은 아이들이 소풍이라고 하면 '어?' 합니다.

'현체' 또는 '현장체험학습'이라고 해야지 알아들어요.

저는 제 습관대로 '소풍'이라고 대화를 시작하면,

아이들은 아이들대로 '현체'라고 대화를 마무리짓습니다.


 현장체험학습은 뭔가 딱딱한데, 왜 소풍이 사라지고 현장체험학습이 그 자리를 대신했는지 모르겠습니다. 소풍이라는 글자가 더 따뜻하게 느껴지는데 말이죠. 딱딱한 현장체험학습이 되면서 추억 속의 소풍 도시락도 점점 사라지는 듯합니다.


 그나마 저희 막둥이 딸은 초등학교 저학년이라서 소풍 도시락을 준비할 수 있는 기회라도 있지요. 중딩이, 고딩이 큰 아들들은 도시락을 싼 지가 언젠지 기억이 안 날 정도입니다.


 제 기억 속 소풍은 아기자기하고 따뜻합니다. 유치원 때부터 고등학교 때까지, 소풍 때마다 맛있게 주셨던 엄마의 김밥 도시락이 생각이 납니다. 저희 엄마는 김밥 속에 들어갈 오이와 당근을 예쁘게 채 썰어 만들어 주셨거든요. 덕분에 친구들보다 제 도시락 속의 김밥 단면이 더 알록달록하고 유난히 예뻤던 걸로 기억합니다. 참기름도 듬뿍 뿌려주셔서 도시락 뚜껑을 열면 고소한 냄새가 훅 풍겼지요. 친한 친구들과 돗자리에 옹기종기 앉아 김밥 도시락을 먹었던 기억이 흐뭇하게 납니다.  


 그런데 지금의 아이들은 소풍 도시락을 안 쌉니다. 초등학교 고학년부터 안 쌌어요. 초등학교 저학년 때까지는 농장이나 공원 같은 야외 위주로 소풍을 가서 점심을 사 먹을 곳이 없습니다. 그래서 도시락을 싸야만 해요. 학교 근처의 가까운 곳으로 소풍 가는 날은 일정을 일찍 끝내고, 학교에 와서 점심 급식을 먹는 날도 있습니다. 이런 경우는 저학년이어도 도시락 없는 소풍이 됩니다. 초등학교 고학년이 되면 소풍 장소가 조금 바뀝니다. 키자니아, 한국민속촌, 에버랜드, 롯데월드, 박물관. 이런 곳으로 장소가 바뀌면서 점심 사 먹을 곳이 있게 됩니다. 이제부터 아이들이 먼저 소풍 도시락을 거부합니다. 친구들과 점심을 사 먹겠다고 하면서 카드 한 장 달랑 들고 갑니다.


 지난번 봄 소풍을 갔던 중딩이는 물마저 가져가는 걸 거부하더라고요.  들고 다니기 불편하다고요. 주머니 속에 카드와 핸드폰 하나만 넣은 채 빈손으로 소풍을 갔습니다. 목마르면 생수나 음료수를 사 먹겠다고 하면서요.


 놀이공원으로 소풍을 갈 때면, 점심시간에 사람이 많아서 밥 사 먹기도 힘든 걸 알기에. 넌지시 물어봅니다. '밥 사 먹기 힘들 텐데, 배고프면 아무 때나 편하게 먹을 수 있게 간단히 도시락 싸줄까? 샌드위치라도?' 아들님들 질색을 합니다. 식당에서 밥 못 먹으면, 군것질거리 사 먹으면 된다고요.   


 소풍이 사라지고, 현장체험학습이 대신하면서. 추억의 아기자기한 소풍 도시락도 점점 없어지는 듯한 기분이 들어 괜히 서운하더라고요.


 그래서 이번 막둥이 딸 소풍 도시락은 평소보다 더 즐겁게 준비했습니다. 왠지 올해가 마지막이 될 것 같은 기분이 들어서요. 막둥이도 내년이면 곧 초등학교 고학년이 됩니다. 저희 딸도 곧 소풍 도시락 대신 점심 사 먹을 돈을 달라고 하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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