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게임을 싫어합니다.
제가 하는 게임도 싫어하고, 주변인이 하는 게임도 싫습니다.
남편은 게임을 좋아합니다.
쉬는 시간에 가끔 할 정도의 즐거움으로 즐깁니다.
아들 녀석들에게도 게임을 관대하게 허용합니다.
남자아이는 게임을 어느 정도 알아야 친구들과 소통이 된다고 말하는 아빠입니다.
저희 집 아들도 게임을 좋아합니다.
시험 전날에도 게임을 할 정도로 좋아합니다.
이런 가정에서 엄마인 제가, 아들과 아빠 사이에서 게임에 대한 중도적인 입장을 취하기가 굉장히 어려웠습니다. 저는 게임이 그냥 싫었어요. 왜 하는지 이해도 안 갔고. 게임할 시간에 공부를 하든, 책을 읽든, 잠을 자든 했으면 했거든요.
지금은 고등학생, 중학생이 된 두 아들이 게임을 처음 접한 시기는 초등학생이었습니다. 아빠가 일찍 집에 있는 날, 아빠의 핸드폰으로만 할 수 있는 게임이었어요. 어쩌다 한 번씩 그렇게 했던 게임이 이제는 매일 꼭 해야만 하는 하루의 일상이 되었습니다.
저희 집에는 게임에 관한 규칙이 있었습니다.
주말에만 할 것.
칼이나 총으로 인해 선혈이 낭자한 게임은 하지 말 것.
롤플레잉 게임은 하지 말 것.
그런데 이런 규칙도 아들의 머리가 굵어지면서 어겨지는 경우가 종종 생겼습니다.
'주말에만 할 것'에서 '매일 하는 게임'으로
'칼이나 총으로 인해 선혈이 낭자한 게임은 하지 말 것'에서 '칼과 총은 있지만, 직접적인 잔인한 장면과 붉은 피는 절대 안 나오는 게임입니다.'로 퉁치면서 시작한 무기를 사용하는 게임으로.
그나마 아이 아빠가 절대로 금지했던 롤플레잉 게임은 하지 않더라고요. 아이 아빠는 모든 게임은 40분 이내에 깔끔하게 끝낼 수 있어야 된다고 아이들에게 이야기했습니다. 그러면서 롤플레잉 게임은 시작하면 하루종일 앉아서 할 수도 있고, 잘못되면 중독 수준까지 갈 수 있으니 롤플레잉 게임만큼은 절대로 금지한다고 이야기했습니다. 게임에만 관대한, 엄격한 아빠가 절대로 금지한 게임이라 그런지. 아들 녀석들이 거기까지는 손을 안 데더라고요.
하지만 시도 때도 없이 하는 게임이 저는 너무 못마땅했습니다. '해야 할 것을 다 했으니, 게임을 해도 된다.'는 아이들의 주장과, '게임할 시간에 책을 읽든, 잠을 자며 휴식을 가져라.'는 저의 의견이 매일 충돌했습니다.
그나마 중학생 아들은 하루에 한두 시간 이내로 시간 조절을 하며 게임을 해서, 어느 정도 제가 참을성 있게 바라볼 수 있었지만.
고등학생 아들은 엄마의 말이 전혀 들어먹질 않았습니다. 이제 정말 중요한 시기인데, 하루종일 핸드폰 게임을 하고 있더라고요. 내일이 시험인데, 시험공부를 다 못했다고 하면서. 4시간이 넘게 핸드폰 게임을 하고 있는 모습을 보니 억장이 무너졌습니다. 혼내기도 하고, 달래 보기도 했지만, 다 소용없더라고요. 게임의 목표한 레벨을 올려야지만, 잠시 게임을 멈추고 해야 할 일을 하곤 했습니다.
그렇게 게임이 좋으면 아예 프로게이머가 되던지.
"엄마, 형은 이미 늦었어요. 형아 나이면 지금 프로에서 열심히 뛰어야 할 전성기이고, 20대 들어가면 은퇴해야 할 나이예요."
"그리고, 게임 잘하면 구단에서 먼저 연락 온데요."
그러면 게임을 직접 만드는 사람이 되든지.
게임 개발자나. 게임 음향 관련 직업이나. 게임 스토리 만드는 직업이든.
"코딩 싫어요."
"음악 못해요."
"게임 스토리 만들려면 국어국문학과 가야 해요? 저 국어 못해요."
생각 없이 게임만 하는 것처럼 보이던 아들이 하루는 말합니다.
"엄마, 저 이 레벨까지만 올리면 게임 앱 다 지우고 다시는 게임 안 할 거예요."
그래, 하루만 참으면 고등학교 생활 내내 게임을 안 한다고 하니. 어디 한번 참고 기다려보자.
기다렸습니다. 중간고사를 앞둔 황금 같은 주말이었지만 꾹 참았습니다. 잔소리 한마디 안 하고요. 이틀 내내 정말 핸드폰 게임만 하더라고요. 그러고선 일요일 밤에 자랑스럽게 저한테 옵니다. 게임 랭킹이 올라서 무슨 챔피언이 되었다고 웃으면서 이야기를 합니다. 속은 문드러졌지만, 웃으면서 대답을 해주고선 기다렸습니다. 게임 앱을 지울 때까지요.
네. 게임 앱을 그날 지우긴 지웠습니다.
그 후로도 계속 지웠습니다.
다시 깔았다가 지웠다. 또 깔았다가 지웠다. 반복이 되었지만요.
얼마 전에 고심해서 아들과 만나게 해 준, 좋은 대학 들어간 멋진 대학생 형아도 게임은 했다고 하더라고요. (아들이 정신 차리길 바라며 멘토 형아를 수소문해서, 멋진 이웃 형아를 만나게 했었습니다.)
저는 그 형만큼은 게임을 하지 말라고 할 줄 알았어요. 그런데 게임을 하라고 합니다. 스트레스 해소용으로 게임은 필요하대요. '하지만 공부가 주가 되고, 게임은 부가 되어야 한다. 그런데 고등학생인 너는 조절이 안 되니. 형아가 처방을 내려 줄게. 핸드폰 게임을 학교에서만 친구들과 하는 거야. 집에서는 조절이 안 되니. 하교하고선 아예 부모님께 핸드폰을 맡겨두고, 집에서는 게임을 안 하고 공부만 하는 거야.'
엄마 말은 안 듣지만, 형아 말은 잘 듣는 고등학생 아들이 그 후로는 집에서 핸드폰 게임을 거의 안 합니다. 하교 후에 정말로 저에게 핸드폰 반납을 하더라고요.
그런데 형아 말을 어찌나 잘 듣는지. 정말 학교에서 핸드폰 게임을 열심히, 아주 열심히 합니다. 어제는 점심시간에 점심밥도 안 먹고, 친구들과 핸드폰 게임을 했다고 하더라고요. 이노므 아들은 중간이 없습니다.
아들의 핸드폰 게임으로 고심하던 시기에 한 엄마의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공부를 잘하는 모범생 아들이 있데요. 그런데 게임 레벨을 친구들보다 더 높이고 싶어 한데요. 그래서 아들은 공부를 열심히 하고, 엄마는 집에서 열심히 게임을 하며 아들의 게임 레벨을 올려주고 있다고 하더라고요. 아들의 친구들은 아이가 공부는 안 하고 게임만 해서 게임 레벨이 엄청 높은데, 공부도 덩달아 잘하는. 그런 머리 좋고 게임 잘하는 아이가 되어있었고요.
큰 아들을 불렀습니다.
엄마가 너의 게임을 대신 해줄까?
너는 공부를 하고, 엄마는 너의 게임을 할게.
엄마가 너의 게임 레벨을 높게 올려주마.
솔깃했나 봅니다. 아들이 잠깐 생각을 하더라고요. 동시에 저는 제 핸드폰에 게임앱을 깔고 게임을 시전 해보았습니다. 레벨 1부터 시작하며 연습해 볼 요량으로요.
그랜드 챔피언인 아들이 레벨 1인 엄마의 연습 게임을 잠깐 바라봅니다.
웃으면서 바로 제 핸드폰 게임을 제멋대로 지우더라고요.
지는 지 게임 방해하면 큰일 나는 줄 알면서, 제 게임은 끝나지도 안 았는데 지 멋대로 지워버립니다.
엄마, 저 공부할게요.
엄마 게임하지 마세요.
얼마만큼의 유효기간이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스스로 공부하겠다고 이야기합니다.
엄마로서 또 속아줘야겠지요.
아들이 오늘 학교 점심시간에는 게임만 하지 않고, 점심밥도 먹길 바라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