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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온화 Jun 26. 2024

아들이 무심히 건넨 선물

 

 학교에서 하교한 아들이 방에 들어가 공부를 잠깐 하더니,

 갑자기 제 방에 들어가서 뒤적뒤적 뒤집니다.


 "엄마 물건 마음대로 뒤지지 마. 뭐 찾는데? 엄마한테 말하면 찾아줄게."

 "찾았어요. 가정 실습 때문에 흰 실 하고 바늘이 필요해서요."

 "학교에 가져가려고? 그대로 가져가면 바늘 위험하니까. 이리 줘봐."

 "아니에요. 지금 잠깐 필요해서요."


 공부하다 말고 바늘과 실을 방으로 가져가더니 바느질을 시작합니다.

 요즘 기말고사 기간입니다.  공부를 해야 하는 녀석이 공부는 안 하고, 갑자기 바늘을 가져가니 할 말이 막히더라고요. 꾹 참고, 최대한 친절하게 물어봅니다.


 "수행평가야? 지금 꼭 해야 해?"

 "수행평가 다 끝난 거예요. 여기 요 부분만 잠깐 마무리하면 돼요."

 "그럼 엄마가 해줄게. 너 시험범위까지 공부 다 못 다면서. 수행평가도 끝난 바느질이면, 엄마가 해줄게. 이리 줘봐."

 "잠깐 머리 식힐 겸 제가 할게요. 금방 끝나니까. 좀! 제가 할게요!"


 이를 꽉 물고. "그래, 그래라." 화를 최대한 내지 않으려 노력하며, 아들 방에서 나왔습니다.


 다음주가 기말고사예요. 공부도 다 못했으면서, 무슨 바느질을 한다고. 평소에 하지도 않던 바느질입니다. 굳이. 꼭. 지금. 해야 할 건 아니잖아요. 머리 식힌다고, 게임도 잔뜩 하면서. 웬 바느질이래요. 물론 게임보다는 바느질이 조금 괜찮아 보이긴 하지만, 그래도 시험기간인데 시간이 아깝잖아요. 속에서 부글부글 끓었지만, 우선은 바느질하는 아들을 그대로 나뒀습니다.


 조금 있다가 아들이 옵니다.

 "엄마, 이거요."

 "어. 수건 만들었네. 잘 만들었다."


 형식적인 대답만 해주고 있는데, 아들이 자신이 만든 수건을 쑤욱 제게 내밉니다.

 "엄마 거예요. 엄마 줄려고 만들었어요."

 

 저 쉬운 여자였나 봅니다.

 공부는 안 하고 바느질만 하는 아들놈에서, 공부하느라 바쁜데도 엄마 선물 주려고 시간을 쪼개 바느질 한 착한 내 자식으로 둔갑되어 있더라고요.


 "우리 아들은 바느질도 잘하는구나. 못 하는 게 없네. 고마워.

 엄마가 아들이 준 건 지금까지 잘 간직하는 거 알지? 키친타월 꽂이도 10년째 잘 쓰고 있어. 핸드폰 가방도 잘 갖고 다니고 있고."

 "알아요."

 "수건도 아끼면서 평생 잘 쓸게."

 "네."


 요즘 고민이 많았거든요. 사춘기 아들을 어떻게 대해야 하는지에 대해서요. 전문가의 의견도 찾아보고, 인터넷에 있는 실제 아들과 엄마의 사례도 찾아보고요.

 

 믿고 기다려 줘야 한다. 언제나 네 편이라는 걸 알게 해줘야 한다.

 고쳐야 하는 건 무슨 수를 쓰더라도 강하게 바로잡아야 한다.


 이 중간쯤에서 아들과 저에게 맞는 선은 어떤 선인지 고심하고 있었습니다. 마냥 오냐오냐 좋게 타이를 수도 없고, 도망갈 구멍 없이 강하게 쪼이기만 할 수도 없고. 아들이 사회에 나가 자기 역할을 제대로 하려면 어떻게 키워야 하는지, 정말 고민이 많았습니다. 정작 아들은 아무 생각 없이 되는대로 생활하는 것 같아 속이 부글부글 끓는 상태였는데 말이죠. 


 손수건 하나로 모든 걱정과 미움이 사르르 없어졌습니다.


 가정 수행평가에서 만들던 수건이었나 봐요. 수행평가는 좋은 성적으로 잘 마무리 짓고, 집에 갖고 와서 다시 손을 본 거더라고요. 학교에서부터 엄마 줄 생각으로 만들었다는 말에 눈물까지 핑 돌 뻔했습니다.


 아무리 밉고, 아웅다웅 서로 할퀴어도.

 그래도 엄마와 아들인가 봅니다.


 아들이 무심히 건네준 수제 손수건 하나로 세상이 아름다워졌습니다. 기한이 얼마나 갈지는 모르겠지만, 따뜻하고 행복한 감정을 최대한 느껴보려고 합니다. 내일 당장 게임을 하고 있는 아들의 모습을 보면, 세상이 다시 어두워질 수도 있겠지만.


 지금은 따뜻한 감정을 맘껏 느껴보려고 합니다.

 이런 기분 상태가 얼마만이지 낯설기까지 하네요.


 아들아. 고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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