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려놓는다는 건 무슨 의미일까?
요즘 자주 입에 올리는 말이다. 다 내려놓으니까 마음이 편하네. 자기 인생이니까 알아서 살겠지.
인생의 큰 고통을 겪은 것도 아니다. 고작 아이 문제로 '내려놓았다.'라는 말을 하고 있다. 내려놓은 그 아이가 소위 말하는 문제아도 아니고, 어디가 아픈 아이도 아니다. 그런데도 나는 아이를 내려놓았다고 표현한다.
내가 살아온 길이기에, 아이의 길도 보인다는 착각을 했나 보다.
나는 학창 시절 공부만 하는 모범생이었다. 시간이 그냥 흘러가는걸 못 보는 빡빡한 계획형 인간이었다. 연년생을 키우면서도 아이를 등에 업고 손에는 책을 든 채 하루를 보내는 사람이었다. 아이들이 어린 나이에는 기관의 선생님보다 엄마가 더 좋다는 개인적인 신념으로 가정보육을 하면서도 틈틈이 공부해 힘든 자격증을 따기도 했던 사람이었다. 지금도 마찬가지다. 그냥 흘러가는 단 5분이 아깝게 느껴진다.
그런 내가 생각할 때, 고등학생은 자신의 할 일을 열심히 하는 생활을 해야 했다. 내가 학창 시절에 공부만 했으니까, 내 아이들도 공부만 해야 한다고 당연히 생각했다. 내가 텔레비전을 안 보니까, 아이들도 보지 않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내가 게임을 안 하니까 아이들도 안 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아이는 아니었다. 아이는 드라마도 챙겨봐야 했고, 영화도 봐야 했고, 좋아하는 유튜버의 영상도 봐야 했다. 게임도 해야 했다. 멍하니 보내는 시간도 필요로 했다.
공부가 인생의 전부는 아니야. 네가 정말로 하고 싶은 일이 생겼다면, 그 일을 위해 열심히 하면 돼. 하지만 지금 너에게 하고 싶은 일이 없다면서. 그러면 너의 본업인 공부를 열심히 하면 되는 거야. 공부는 비포장 길인 너의 인생에 고속도로를 까는 일이라고 생각하면 돼. 나중에 네가 진정으로 하고 싶은 일이 생겼을 때 비포장 길로 힘들게 나아가는 것보다는 고속도로로 빠르고 쉽게 가는 게 좋잖아.
적어도 엄마보다는 고등학생인 네가 더 공부를 많이 해야 하는 건 아니니? 너의 본업은 학업이잖니. 모든 것은 다 때가 있단 말이야. 지금 하고 싶은 거 잠깐 미뤄두고 우선은 해야 할 일을 열심히 해보자. 엄마는 이제껏 살면서 후회하는 일이 하나도 없어. 모든 걸 열심히 했기 때문에, 설사 일이 잘 풀리지 않더라도 깨끗이 털고 일어나 다른 일을 시작할 수 있어. 후회 없는 삶을 살기 위해 있는 힘껏 열심히 해봐.
소귀에 경 읽기.
옆에서 무슨 말을 해도 아이는 하루를 그냥 흘려보냈다. 달래도 보고, 혼내도 보고, 멘토를 만나보게도 하고. 안 해본 방법 없이 모든 수단을 동원해 아이의 습관을 바로 잡아주려 했다. 할 줄 아는 아이가 안 하고 있으니 답답했다. 못 하는 아이면, 다른 길을 찾아볼 텐데. 할 수 있는 아이가 손을 놓고 있으니 조바심이 났다. 공부가 싫으면 기술을 배워보자고도 했다. 인문계에서 특서화고로의 전학도 준비해 봤고. 자퇴 후 마이스터고로의 입학도 고민했었다. 선택의 기로에 있을 때마다 아이는 지금의 자리에서 열심히 해보겠다고 이야기했지만, 여전히 영상을 보고 게임을 하며 하루를 그냥 보냈다. 영상이 그렇게 좋으면 영상을 만들어 볼래? 싫어. 게임이 좋으면 프로게이머는? 싫어.
아이와의 관계도 안 좋아지던 어느 날. 갑자기 정신이 들었다. 나는 할 만큼 다 했다. 후회 없이 있는 힘껏 다 해봤다. 이제는 순전히 아이의 몫이다. 내 인생은 내 인생이고. 아이의 인생은 아이의 인생이다. 아무리 이야기해도 듣지 않는 사람에게 이야기해봤자 잔소리로 들릴 뿐. 스스로 깨우쳐야 무언가를 시작하는데, 그것을 타인이 대신해 줄 수는 없는 것이다.
그러니 보였다. 아이는 학교생활을 즐겁게 하고 있었다. 하교 후 친구들과 칼국수를 사 먹고, 볼링을 치러 다니는 그 또래의 평범하고 활발한 아이였다. 공부는 안 해도 수행평가는 열심히 준비하는 아이였다. 고3인 동아리 누나가 예쁘다고 누나가 졸업하면 아쉬워서 어쩌냐고 소소한 수다를 떠는 아들이었다. 샤워시간은 한 시간이 넘어도 지각 한 번 안 한 아이였다. 음악을 좋아해 샤워할 때마다 화장실에서 고래고래 소리 지르며 노래 부르는 아이였다. 가족 여행이 있을 때마다 음악을 선곡해 usb에 노래를 준비하는 아들이었다.
엄마가 내려놓으니, 아들의 표정이 좋아졌다. 이제는 농담도 하는 아들이 되었다.
건강하게만 자라 다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