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홍색을 좋아했다.
어릴 때에도 나이가 든 후에도.
새 책상을 사기 위해 가구점에서 책상을 고르던 날이 생각난다. 초등학교 4학년쯤이었던 것 같다. 그동안은 아빠가 써왔던 튼튼한 책상을 쓰고 있었다. 아빠의 책상이기에 그냥 좋아했던 기억이 난다. 무엇보다도 그 생김새가 흔하지 않은 책상이었다. 책상 덮개가 있어 열면 책상이 되고, 닫으면 숨겨지는 책상이었다. 하지만 그 책상의 색깔은 어린 소녀가 좋아할 만한 색이 아닌 튼튼한 원목 그대로의 어두운 나무 색깔이었다. 나는 분홍색을 좋아했다. 새 책상을 사기 전에 내 방에 분홍색 책상이 있으면 얼마나 예쁠까 하는 생각으로 들떴던 기억이 난다. 하지만 나는 분홍색이 아닌 초록색 책상을 샀다. 가구점 안의 초록색 책상 옆에는 파스텔톤의 분홍색 책상이 분명히 있었지만, 곧 중고등학생이 되고 어른이 될 테니까 분홍색은 너무 아이 같다는 이유로 초록색 책상을 고르게 됐다. 초등학교 4학년이면 아직 어린이인데. 왜 하고 싶은 마음과 달리 제일 싫어했던 초록색을 골랐는지 모르겠다. 엄마가 초록색을 좋아했는데, 엄마의 입김이 작용했던 걸까. 초등학생 어린 소녀가 꿈꿨던 분홍색 방의 로망은 없어졌고. 청소년이 된 나는 여전히 분홍색을 좋아했다.
하지만 분홍색 물건을 갖기는 여전히 어려웠다. 옷을 사도, 애매모호한 색이 어울리지 않고 사람 인상을 더 흐리멍덩하게 한다는 이유로 나의 옷은 원색이 주를 이루었고. 분홍색 학용품을 사려해도 학교 앞 문구점에는 분홍색 학용품이 있지를 않았다. 그러면서 어른이 되었다.
어른이 되어서 소소하게 분홍색 한풀이를 하는 듯했다. 분홍색 학용품과 생활용품들이 학창 시절에 비해 눈에 많이 보였다. 볼펜도 분홍색으로. 필통도 분홍색으로. 컵도 분홍색으로. 냄비받침도 분홍색으로. 그러다가 첫 자동차를 가질 수 있는 나이가 되었다. 분홍색 차가 갖고 싶었다. 하지만 첫 자동차는 여기저기 긁혀도 속상하지 않을 차를 몰아야 한다는 어른들의 말씀에 적당한 중고차를 구하면서 하얀색 자동차를 갖게 되었다. 대신 자동차 안을 모조리 분홍색으로 만들었었다. 의자 시트를 모조리 헬로키티 분홍색으로 만들었었다. 기분이 좋았었다. 외관은 하얗지만, 내가 보이는 모든 부분이 분홍색인 자동차를 끌고 출퇴근하는 길은 꽤 괜찮은 시간이었다.
이제는 분홍색 옷도 썩 잘 어울렸다. 흐리멍덩하다는 나의 얼굴에 눈썹을 그리고 입술을 빨갛게 하니, 얼굴에 윤곽이 생기면서 파스텔톤의 분홍색 옷이 제법 잘 어울렸다. 그렇게 옷장과 신발장에도 분홍색이 많아졌다.
분홍색 물건이 점점 늘어들 때쯤 아이를 낳았다. 딸이 아닌 아들이었지만, 어린 아들은 내 취향대로 꾸며도 별 불만이 없었다. 분홍색옷을 입혀도 아들은 예쁘다고 좋아했다. 딱 5살 때 까지였던 것 같다. 6살 이후로는 분홍색을 멀리 하는 아들에게 아쉬움을 느낄 때쯤, 딸이 태어났다. 온통 분홍색으로 꾸며도 주위에서 뭐라 안 할 어여쁜 딸이 태어났다. 옷도 신발도 머리핀도 가방도 모두 분홍색이었다. 그러나 딸아이는 아들보다 이른 나이에 분홍색이 싫다고 선언했다. 유치원도 들어가지 않은 5살밖에 안 된 나이였는데. 엄마, 나는 분홍색 보다 민트색이 더 좋아. 파란색이 더 예뻐. 분홍색은 이제 그만할래. 그래, 그만하렴.
인테리어를 할 기회가 있었다. 부엌을 싹 다 고치는 일이었다. 싱크대를 모조리 분홍색으로 바꿔버릴까. 너무 예쁘겠는데. 냉장고도 새로 산다고 했는데, 냉장고도 세트로 분홍색으로 해버려야겠다. 하지만 이번에도 내 뜻대로 하지 못했다. 초등학교 4학년 때 초록색 책상을 골랐던 것처럼, 냉장고는 짙은 회색의 냉장고로 바꿨고. 부엌의 싱크대는 바꾸지 않고 그냥 쓰는 걸로 결정했다. 그래서 냉장고와 비슷한 색인 짙은 회색과 하얀색이 섞인 어두운 싱크대이다. 이번에도 분홍색으로 부엌 인테리어를 하고 싶은 마음은 컸지만, 내 마음보다는 다른 사람의 관점에서 생각하고 결정했다. 내 집인데도 말이다.
분홍색을 좋아한다고 했지만. 분홍색 집을 갖고 싶었고, 분홍색 자동차를 갖고 싶었지만. 막상 그런 기회가 나에게 주어지면 나는 분홍색을 선택하지 못했다. 기껏 해봐야 분홍색 생활용품이 다였다. 제일 큰 분홍색이라고 해봐야 침구였다. 매트리스 커버와 덮는 이불이 내가 갖아봤던 제일 부피 큰 분홍색이었다. 도배만큼은 연한 분홍색으로 해도 괜찮았을 텐데, 그때도 무난한 하얀색을 선택했다.
왜 분홍색을 좋아하면서도, 외면했을까? 분홍색만 보면 기분이 좋아지고, 가슴 뛰었던 감각은 분명히 좋아하는 감각일 텐데. 어째서인지 커다란 분홍색은 선뜻 겁내면서 받아들이질 못했던 것 같다. 그러면서 분홍색과 이별을 하게 됐다.
작년까지만 해도 좋아했던 분홍색 표지의 연습장이 꼴 보기 싫어졌다. 분홍색 볼펜이 촌스럽게 보인다. 즐겨 쓰던 분홍색 컵이 찬장 깊숙한 속으로 들어가게 되었다. 분홍색이 뵈기 싫게 보인 지 두 달쯤 돼간다. 이런 내 모습이 낯설다. 지금 입고 있는 옷도 분홍색인데, 좋아서 입는 것이 아닌 있으니까 그냥 입는 것뿐이다. 컵도 짙은 갈색 컵을 즐겨 쓰게 된다. 자주 쓰는 연습장은 진작에 무채색 톤으로 다 바꿨다. 이렇게 끝이 있을 분홍색과의 사랑이었다면, 더 열렬히 좋아하고 흠뻑 빠져볼 걸 후회도 든다. 분홍색 방을 못 가져 본 것도 아쉽다. 하지만 분홍색 싱크대로 안 바꾼 과거의 나에게 안도한다. 싱크대가 분홍색이었다면, 지금의 나는 살림을 때려치워 버렸을 거다. 이제는 분홍색을 보면 숨이 턱 막히니까. 그래도 크게 한 번쯤 분홍색으로 일을 저질러 볼 걸 그랬다. 그랬다면 분홍색을 볼 때마다 찜찜하고 후회스럽진 않을 텐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