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마흔 중반에 들어온 취업 제안

by 온화


감사한 일이었고,

안타까운 일이었다.


연구소에서 일하다 출산과 육아로 경력 단절된 지 10년. 운 좋게 마흔 살에 신입사원이 되었었다. 기존 연구소에서 하던 일은 아니었지만, 오랜만에 일하는 기쁨에 열심히 배우고 성실히 일했었다. 노력이 가상했었는지, 다행스럽게도 굳었던 머리와 손은 빠르게 돌아왔었고, 나이 많은 선배에게도 나이 어린 선배에게도 미움받지 않고 회사생활을 잘 했었다. 그러다 또 그만두게 되었다.

가정에서 나의 입지가 제일 마지막이었기 때문이다. 남편이 나보다 많이 버니까 남편 위주로. 아이들이 잘 커야 하니까 아이들 위주로. 이런저런 이유로 소중하게 왔던 일자리를 내 손으로 떠나보냈었다.


그러고선 집에 있던 와중 전화가 왔다.

마흔 살에 입사했던 연구소 선생님들과는 종종 안부 연락을 하며 지내던 참이었다. 가끔 일손이 모자라다고 언제 다시 일할 거냐는 농담 섞인 제안은 가끔 들어왔었지만, 이번엔 제대로 된 제안이 들어왔다.

지금 한 사람이 비니까, 바로 시작하면 좋을 것 같아요.

모든 조건이 다 좋았다. 일하는 환경도 좋았고, 급여도 좋았다.

한 가지 문제라면 거리였다.

조금만 더 생각해 보고 연락드릴게요.


생각할 게 뭐가 있겠냐만은. 내 상황에 저런 제안이 왔으면 넙죽 엎드려 바로 받아들여야 될 것 아니냐라는 생각도 들었지만. 나 혼자 사는 게 아니니까.

엄마, 엄마는 집에 있는 것보다 나가서 일하는 게 더 좋아?

응, 엄마는 연구소에서 엄마 일 하는 게 더 좋아.

그럼, 엄마 회사 다녀도 괜찮아. 나 혼자 잘할 수 있어.


고딩이는 엄마의 직업 유무가 상관이 없었다. 어차피 일찍 등교하고 늦게 하교하니까. 오히려 간섭하는 엄마가 없어지니까 더 좋아하는 느낌도 들었다.

중딩이도 상관 없었다. 엄마가 집에 안 오는 것도 아니고, 학교에 있는 동안 회사 갔다가 집에 오는 거니까. 엄마가 하고 싶은 일을 하면 된다고 이야기했다.

막둥이는 상관이 있었다. 엄마 없이 등교해야 했고, 엄마 없이 빈집에서 오래 있어야 했다. 그래도 엄마가 좋아하니까, 회사에 다녀도 괜찮다고 흔들리는 눈빛으로 이야기하는 아이를 보니 심란했다.

남편은 나 하고 싶은데로 하라고 했다. 막둥이가 걱정되기는 하지만, 그래도 그 정도면 컸으니까. 나만 힘들지 않다면. 내가 하고 싶은 일을 선택하라고 했다. 어떤 선택을 하더라도 다 좋다고. 아마도 외벌이의 부담이 줄어드는 쪽을 선호하는 것 같긴 했다.


하지만, 나는 지금 주말부부로 혼자서 아이들 셋을 다 보살피고 있는 중이다. 출근을 하게 되면, 고속도로를 달려 한 시간이 조금 안 걸리는 곳에 위치한 연구소를 매일 다녀야 했다. 고속도로 왕복 두 시간. 물론 그 정도 거리를 힘들지 않게 출근하는 선생님도 계시다. 그러니까 나에게도 제안이 왔겠지. 나는 운전도 서툰데. 출퇴근하다가 기운이 다 빠지겠구나. 지금 상황에서는 집에만 있어도 벅찬데, 힘든 상황에서 연구소 일까지 더 얹을 수 있을까. 일하고 싶은 마음이 90프로, 힘들어서 안 되겠다는 마음 10프로였다.


마지막 기회일 수도 있는데, 나이가 들면 이런 기회는 또 오기 힘든데.

지금 취직하게 되면, 일도 집안도 모두 엉망이 될 것 같았다. 다 잘하고 싶은데, 나에게는 그런 체력과 능력이 없었다. 막내가 더 크면, 집 걱정 안 하고 나가서 일할 수 있을까. 오만가지 생각을 뒤로하고, 회사에는 안 나가는 걸로 결정했다.


엄마 집에 있기로 했어.

아무 상관없다고 말했던 가족들 모두 반가워하는 느낌이었다.

남편은 내 마음대로 하라고 말은 했지만, 속으로 걱정했다고. 남편이 도와줄 수도 없는 상황에서 회사일에 아이들 3명에 다 하기가 힘들 것 같았다고. 막내도 어리고.

고딩이와 중딩이는 엄마가 회사 다녀도 상관은 없지만, 그래도 집에 있는 게 마음은 더 편하다고.

막둥이는 엄마가 집에 있을 거라는 말에 그냥 좋아했다.


엄마라는 단어는 단 두 글자인데 반에, 그 의미와 책임감이 가볍지만은 않은 것 같다.

마지막 취업 제안일 수도 있는 기회를 흘려보냈지만, 또 다른 기회가 있을 거라고 생각한다. 연구소에서 벌 수 있었던 돈과 눈에 보이는 커리어는 잡을 수 없었지만. 다른 큰 거를 잡기 위해 부단히 움직여야겠다.




keyword
수요일 연재
이전 15화내려놓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