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일 기다리는 시간입니다.
30분을 걸어서 도착한 도서관 자료실의 큰 책상에 앉아 있는 시간이요.
가는 길에 따뜻한 라테를 준비해 가는 것도 잊지 않습니다.
30분을 걷다 보면 더워지지만, 도서관의 서늘하면서도 시원한 온도를 생각하면 따뜻한 커피가 최고입니다.
도서관에 도착하면 시원한 물을 벌컥벌컥 마시며 더위를 잠깐 식혀주고,
마음에 드는 자리에 얌전히 앉습니다.
읽고 싶은 책을 펴서 독서를 합니다. 그러다가 생각나는 문구를 적기도 하고, 마음에 드는 책 구절을 끄적이기도 하고요.
이마에 맺힌 땀이 식으면서 더위가 사라지면, 미리 준비해 간 따뜻한 라테를 조용히 홀짝입니다.
며칠 동안 겪었던 스트레스가 모두 없어지는 저만의 경건한 시간입니다.
가장 좋아하는 시간이에요.
도서관에 매일 가지는 못하지만, 시간이 날 때마다 가려고 합니다. 그래야 스트레스가 풀리고, 짜증을 덜 내는 조금은 즐거운 삶을 살아갈 수 있으니까요.
바빠서 한동안 못 가다가, 일주일 만에 가게 된 도서관이었습니다. 그날따라 햇빛이 뜨거워서, 커피를 주문할 당시에는 아이스가 너무나도 먹고 싶었습니다. 그런데도 꾹 참고 따뜻한 커피를 주문했습니다. 도서관에도 무사히 도착했고, 읽고 있는 책도 야무지게 챙겨서 가져왔고요. 모든 것이 완벽했습니다.
저만의 루틴대로 평소의 순서를 차분히 진행하고 있던 중이었습니다. 평소와 다르다면 유난히 뜨거웠던 커피가 문제였을까요?
뚜껑을 잠깐 열어서 식힌다는 걸, 뚜껑을 계속 열어두었나 봐요. 뚜껑을 아예 열어서 책상 위에 내려놨으면 더 좋았을 걸. 커피컵 위에 뚜껑을 아슬하게 걸쳐놓고 있었나 봐요.
책을 읽다가 뚜껑이 살짝 열려있는 걸 모르고, 그대로 커피를 마셨습니다. 이상하게 바지가 따뜻해지는 느낌이 들더라고요.
'아뿔싸, 내가 아까 커피 뚜껑을 열어놨었지.'
순식간에 책상 위와 바지가 젖었습니다. 그나마 다행인 건 하얀색 윗옷이 멀쩡하고, 도서관에서 대여한 책이 멀쩡하다는 것뿐이었어요. 그리고 소리를 크게 지르지 않고, 속으로 삼켰다는 것도 참 다행이었습니다. 그날따라 도서관에 책 읽는 사람들이 많았거든요. 그 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책과 공부에 집중하는 나머지, 옆에 책상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신경을 안 쓰는 것도 다행이라고 생각합니다. 부끄러웠거든요. 분위기 잡으면서 커피 마시다가 커피를 호로록 다 엎은 거잖아요. 가방 안에 휴지도 없더라고요.
화장실로 빠르고 조용하게 가서 휴지를 갖고 왔습니다. 소란스럽지 않으면서 재빠르게 책상을 닦고 바지를 닦았습니다. 도서관에 온 지 10분 밖에 안 됐는데, 바지가 축축하다고 이대로 집에 가기에는 아쉬웠습니다. 더위를 참고 30분이나 걸어서 왔는데. 그것도 일주일 만에 온 도서관인데 말이죠. 짧은 순간 머릿속에서 집과 도서관을 몇 번을 왔다 갔다 했는지 모릅니다. 심각하게 고민을 하다, 더 있기로 했습니다.
책상 위는 깨끗해졌고요. 커피를 닦은 휴지도 쓰레기통에 버려서 깔끔했고요. 의자도 깨끗했습니다. 바지의 허벅지 부분만 조금 젖었으니까요. 바지색깔도 어두운 색깔이라, 커피 묻은 표가 전혀 안 났어요. 바지가 조금 축축했지만, 휴지로 닦으니까 금세 뽀송해졌다는 최면에 걸린 듯했습니다.
결국 도서관에는 한 시간을 더 있다가 왔습니다. 저만의 스트레스를 푸는 경건한 의식을 축축한 바지 때문에 망치고 싶지는 않더라고요. 다음날 바로 도서관에 올 수 있는 시간이 안 나서 더 그랬나 봅니다. 한 시간 후에 도착한 집에서는 그리도 찝찝한 바지가 도서관에서는 왜 그리 뽀송하게 느껴졌을까요.
별 것 아닌 듯 하지만, 도서관에서의 시간이 저에게는 그만큼 중요했었나 봅니다. 불편함을 감수하더라도 도서관에 한 시간을 더 있다가 온 제 모습이 집에 와서는 낯설게 느껴지더라고요. 시간을 자주 내서 도서관에 더 많이 다닐까 봐요. 그래야 커피를 쏟으면, 미련 없이 바로 집에 올 수 있는 마음이 생기게 말이죠. 얼마나 도서관에서의 시간이 소중했으면, 불편함을 감수하더라도 계속 머물렀는지 참 알쏭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