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선경 작가님이 쓴 [어른의 어휘력]이라는 책에서 나온 내용이에요.
"너의 나라 바다는 무슨 색이니?"
"블루"
"정말?"
"바다가 블루인 나라는 드문 걸로 알고 있는데 ······."
"너의 나라 삼면의 바다가 다 같은 색, 블루야? 확실해?"
나는 대한민국 삼면의 바다 색깔이 모두 다르고 무엇보다 블루가 아니라는 사실을 스무 살이나 먹고 대한민국 삼면의 바다가 없는 독일에서 알아차렸다. ··· 사물과 대상을 있는 그대로 순수하게 보지 못하고 있었다. 남의 눈으로 보고 있었다. 말과 글의 관성에 갇혀 누르면 나오는 자판기처럼 타성적으로 표현하고 있었다.... 우리는 관심이 없어 관성적으로 보고 듣고 타성적으로 쓰고 말한다. ··· 빌려온 남의 눈이 아니라 내 눈으로 대상과 사물을 바라볼 수 있을 때, 우리는 신비와 환희에 가득 찬 기쁨을 맛보며 오롯이 표현하고 싶은 욕구를 느낀다.
p.55~ p59
저도 마흔 살이나 먹도록 대한민국 삼면의 바다가 파란 바다라고 무의식적으로 알고 있었어요. 바다를 좋아한다고 하면서도 바다의 색깔에 대해 한 번도 제대로 보려고 하지 않은 거지요. 그동안 봐왔던 기억 속의 바다를 어렴풋이 더듬어 보았습니다. 정말 파란색이었는지요. 사진첩에 있는 바다를 다시 찾아보기도 했습니다. 다시 보니 바다는 여러 색을 갖고 있었네요. 파도가 부서지며 생기는 거품 같은 하얀색, 강렬한 햇빛에 반사돼서 보이는 반짝거리는 하얀색, 저 멀리 보이는 바다는 짙은 청록색. 남색처럼 보일 때도 있고요. 회색처럼 보이기도 하고요. 바닷물이 그냥 투명해서 모래사장이 보이면, 반짝거리는 황토색으로 보이기도 합니다. 정말 파란색으로 보일 때도 있네요. 일출이 뜰 때의 바다는 주황색과 노란색과 빨간색과 옅은 회색이 섞인 채 반짝거리는 색을 갖고 있었습니다.
그동안 얼마나 무성의하게 여러 말을 입 밖으로 내뱉었는지요. 보는 것도 무성의하게 보아왔고요. '우리는 관심이 없어 관성적으로 보고 듣고 타성적으로 쓰고 말한다.' 딱 저를 보고 말하는 것 같습니다. 아무런 생각 없이 그냥 바다는 파란색. 하늘은 하늘색. 잔디밭은 초록색. 이렇게 보인다고 무의식적으로 믿으면서, 생각 없이 말하고 다녔습니다.
마흔 살이나 넘어 책을 읽은 후에야, 바다의 색깔에 대해 다시 제대로 볼 수 있었습니다. 이런 식으로 내 눈이 아닌 다른 사람의 눈으로 보아 넘긴 자연과 일상이 얼마나 많았을지 한숨이 나오더라고요. 다시 보니 휘황찬란한 다채로운 바다의 색깔을 40년 동안 놓쳐버린 채 살아온 것처럼요.
그런데도 일상생활을 하다 보면 타성에 젖어, 여전히 예전처럼 다른 사람의 눈으로 세상을 바라보려고 합니다. '봄이 되니까, 분홍색 벚꽃이 너무 예쁘다. 나무도 초록초록하고.' 정말로 벚꽃이 분홍색인지, 나뭇잎이 초록색인지 관심 있게 보지도 않은 채 말이지요. 그나마 희망적인 것은. 말을 한 후에 '아차'하면서 다시 주변을 제대로 살펴보게 됩니다. 벚꽃도 제대로 보고요. 봄날의 나무도 다시 한번 보고요.
살아있는 눈과 귀로 세상을 관심 있게 살펴보며 살아보도록 하려고요. 새로운 세상이 열릴 것 같아 설레기도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