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 준비를 다 하고, 이부자리에 누웠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벨이 울리는 거예요. 밤 10시 30분에는 찾아올 손님이 아무도 없는데 말이죠.
인터폰을 보았지만, 아무도 보이지 않고 우는 소리만 들렸습니다. 혹시나 해서 물어봅니다.
"누구세요?"
......
"할머니, 저 옆집 소정이에요. 엉엉엉."
밤늦게 저희 친정집에 찾아온 꼬마 손님 이야기입니다.
친정 부모님은 두 분이서 아파트에 사십니다. 옆집에는 초등학교 3학년 여자아이와, 유치원생 남자아이가 살고요. 친정집에 놀러 갔을 때 몇 번 본 기억이 납니다. 똘망똘망하니 예쁜 아이들이었어요. 친정 부모님 두 분이서 지내시기가 적적하신지, 옆집 아이들과도 친하게 지내셨습니다. 자주 보지 못하는 손자들이 생각난다고 하시면서요.
그래서 그날 밤, 옆집 꼬마 아가씨가 용기를 내서 친정집의 벨을 눌렀나 봅니다. 엉엉 울면서 말이지요.
"할머니, 밤이 늦어서 주무실 거 같았는데, 훌쩍.
너무 춥고 무서워서 벨을 눌렀어요. 훌쩍.
죄송해요. 훌쩍.
아직 안 주무셨지요?
......
엄마가 쫓아냈어요.
엉엉엉."
잠옷을 입은 그대로 책가방을 맨 채 현관문 밖 통로로 쫓겨났던 모양입니다.
밤늦게 옆집에 와서 우는 아이가 귀엽기만 했던 친정 엄마는 꼬마 아가씨를 달랬고, 친정 아빠는 슬쩍 옆집으로 가셨답니다. 소정이 우리 집에 있으니까, 걱정하지 말라고 알려드리려고요.
가정폭력, 어린이 학대 이야기는 아닙니다. 요즘은 가정 폭력이 많이 대두되고 있어서 이야기하기가 조심스럽지만, 화목한 일반 가정에서의 이야기입니다. 말썽꾸러기 아이를 키워보신 분들은 공감하실 수 있을 거예요. '오죽 말을 안 들었으면 쫓아냈을까.'라며 말이죠. 저희 집 아이도 9살 때쯤 현관문 밖으로 쫓겨난 적이 한 번 있습니다. 너무 말을 안 들어서요. 저희 집도 잠옷 차림에 쫓아냈었어요. 너무 화가 나 쫓아내긴 했지만, 부모 마음이 그렇잖아요. 인터폰으로 계속 살펴보고 있었습니다. 집에 들어오지 말래 놓고선, 눈 앞에 없으니 걱정이 되어 어쩔 수 없더라고요. 잠옷 차림에 서있는 모습을 보니 또 마음이 안 좋아져서 문 열고 겉옷은 건네줍니다. 지금 생각해보니, 들어오라고 하면 될걸 겉옷까지 주면서 쫓아냈네요. 감기 걸릴까 봐 겉옷을 목 위까지 단단히 여며주고 다시 문을 닫았던 기억이 납니다. 5분도 안 돼 쫓겨났던 아이는 집에 들어왔지만, 사춘기가 된 지금의 아이에게는 밖에 나가라는 말은 농담으로도 못 합니다. 정말로 나가면 안 되니까요. 물론 참한 아이들이 있는 집은 이해가 안 될 거예요. 저희 집도 아이들 셋 중에 유독 귀여운 아이 한 명만 쫓겨난 경험이 있거든요.
저는 집에서 아이를 쫓아내는 행위가 '잘한 행동이다. 잘못된 행동이다.'를 말하려는 건 아닙니다. 저는 아동 심리학자도 아니고, 아이를 훌륭하게 성장시킨 베테랑 엄마도 아니니까요.
다만 집에서 쫓겨난 아이를 보고 아파트 이웃에 대해 생각해 보았습니다.
친정 엄마와 꼬마 아가씨의 밤 방문에 대한 대화를 하면서도 같은 이야기를 했었거든요. '그래도 꼬마 아가씨는 옆집에 찾아갈 수 있는 할머니, 할아버지가 있어서 좋았겠다.'라고요. 저희 집 아이는 쫓겨났을 때 찾아갈 옆집도 없었을뿐더러, 오히려 통로에서 시끄러우면 안 되니까 조용히 서있다가 들어왔었거든요.
지금 살고 있는 아파트의 옆집 사람을 잘 모릅니다. 가끔 엘리베이터에서 마주치면 가벼운 목례 정도는 하지만, 그 이상은 없습니다. 저는 어렸을 때부터 아파트에서 살았습니다. 저 어렸을 때의 아파트를 생각해보면, 한 동 전체에 누가 사는지를 다 알았어요. 몇 층은 누구 아저씨가 살고, 몇 층은 누구 언니가 살고. 가끔은 시간 되는 아저씨들끼리 친목회도 했습니다. 아줌마들끼리는 커피 마시러 옆 집에 자주 가기도 했고요. 더운 여름이면 아파트 계단에 돗자리를 펴놓고 같은 아파트 친구들끼리 소꿉놀이도 했습니다. 맛있는 음식을 하면 서로 나눠 먹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지금의 아파트는 안 그렇습니다. 같은 층만 겨우 알고, 다른 층은 아예 모릅니다. 제가 문제인지. 시대의 문제인지. 사회의 문제인지. 옛날 아파트의 풍경과 지금의 아파트 이웃을 생각하면 그냥 씁쓸합니다.
이웃사촌이라는 말이 이제는 어색하기만 합니다. 같은 아파트 사람인데도 안면이 없으면 인사하기 어색한 분위기가 되었습니다. 눈이 마주치면 미소를 짓고 목례를 하면 되는데, 눈이 마주치면 서로 외면합니다. 엘리베이터에 여러 명이 타게 되면 어색한 분위기가 됩니다. 가벼운 안부인사 한 마디면 될 텐데, 서로 못 본 척하는 분도 계십니다. 인사를 하고 싶은 제가 눈 딱 감고 '안녕하세요.' 하면 되는데, 저는 저대로 쑥스러워하며 머쓱하게 목례만 하는 둥 마는 둥 합니다.
이웃사촌이 없어진다는 말이 이제야 나온 새로운 말은 아니지만. 갈수록 더 삭막해지는 것을 느낍니다. 나이가 지긋하신 분들을 봐도 비슷한 감정을 느낍니다. 예전에는 할머니 할아버지 분께서 먼저 말을 건네 오시는 경우도 있었어요. 어린아이들과 함께 있으면 더 친근하게 다가오셨지요. 사소한 안부인사도 건네고. 우스갯소리도 해주시고요. 그런데 요즘은 어르신들도 마음을 닫으신 것 같아요. 사건사고가 많아지면서 세상이 무서워진 이유도 있겠지요.
이럴 때는 내성적인 제 성격이 조금은 아쉽습니다. 동네에서 마주치는 이웃 분들께 큰 소리로 우렁차게 '안녕하세요.'를 먼저 건네고 싶은 마음은 굴뚝같은데, 목소리가 모기소리만큼 나올까 말까 해서요. 그래도 계속 인사를 먼저 건네봐야겠지요. 저희 집 아이들이 스스럼없이 찾아갈 수 있는 이웃집은 만들어주지 못할지언정, 마주치면 반갑게 인사하는 분위기만큼은 만들어주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