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주에 인생 책을 만났습니다.
처음 알게 된 작가였어요. 책이 좋다 보니, 그 작가분의 예전 책들도 찾아볼 정도로 이번 책이 참 마음에 들었습니다. 철학에 관련된 책인데, 챕터 별로 여러 철학자들의 삶과 사상을 알기 쉽게 설명해주는 책이었습니다. 철학 초보자인 저도 술술 읽히면서, 연필로 줄 긋고 싶은 곳이 너무 많은 책이었습니다.
평소처럼 책을 뿌듯하게 덮고, 간략히 SNS에 남겼습니다.
책 읽고 끄적거리는 계정이 하나 있거든요. 팔로워도 없고, '좋아요'를 눌러주는 사람도 거의 없는 그냥 혼자만의 만족으로 유지되는 공간입니다. 알람도 꺼놓고 생각날 때마다 들르는 거의 잊은 채 생활하는 곳이에요.
그런 곳에 '좋아요' 하트가 눌러졌습니다.
이번에 읽은 책을 집필한 미국 작가의 '좋아요'였습니다.
그 순간 저는 멈칫했습니다.
갑자기 호흡이 멈췄고요.
얼마 만에 느껴보는 가슴 떨림인지.
별것도 아닌 일인데, 마치 짝사랑을 갑자기 마주친 그런 느낌이었습니다.
저는 SNS가 안 좋다는 선입견이 있는 사람이었어요. SNS에 사진을 올리기 위해 사는 인생. '좋아요'를 받기 위해 사는 삶. 거짓 사진과 거짓 글을 올리는 사람. SNS는 시간 낭비라고 생각하며, '좋아요'의 기능에 대해 부정적인 생각을 갖고 있었습니다. SNS를 제대로 알지도 모르면서 의례적으로 나쁜 건가 보다 하고 있었지요.
사람 마음이 참 간사합니다. 막상 제가 좋아하는 사람에게서 '하트'를 받아보니, SNS에 대해 다시 생각해보게 되었습니다. 하찮게 보이던 하트가 특별하게 느껴졌습니다.
타인이 '좋아합니다.' 하는 건데 일부러 밀어낼 필요는 없다라고 생각이 바뀌었어요. '좋아요'에 목메는 극단적인 상황을 가리키며 안 좋다고 하는 이야기인데. 나에게까지 적용해서 지레 겁먹고 피하지 않아도 될 것 같았습니다. 사실 그동안 눌러졌던 '좋아합니다'의 하트를 볼 때면 슬며시 미소가 지어졌어요. 그런데도 '나는 SNS에 얽매인 인생이 아니야.'라는 억지스러운 생각에 좋아하는 기분을 억눌렀습니다. 겨우 '3~4'개의 하트에 그러고 있었습니다. 누가 보면 '좋아요' 백 개나 천 개 정도 받는 영향력 있는 사람인 줄 알겠어요.
제 생각이 그동안 모순적이었지요. 브런치의 '좋아합니다' 하트는 좋아하고, 감사해했습니다. 그런데 같은 '좋아합니다' 하트인데도 SNS의 하트는 차별하며 무시하고 있었어요. 제가 하트를 좋아하고 싫어하고에 따라 달라지는 일은 없겠지만, 선입견을 없애기로 했습니다. 지금까지 했던 것처럼 제 중심 지키면서 책 읽고, 기록하고, 글 쓰고 하면서 좋아해 주시는 분들의 하트를 즐겁게 받기로요. 몇 개 안 되는 한 두 개의 '좋아요'이지만, 감사하게 받기로 했어요. SNS의 '좋아요'도요.
외국작가의 '좋아요'라고 특별한 건 아니잖아요. 이웃분이 눌러준 '좋아요'와 외국작가가 눌러준 '좋아요'에 중요도의 차이는 아무리 생각해도 없더라고요.
미국 작가님은 아시려나요. 가볍게 누른 '좋아요' 하나로 한국에 있는 한 사람이 이렇게나 많은 생각을 하고 있을지를요.
여담으로, SNS를 통해 작가님의 얼굴을 보고 한 가지 또 깨달은 게 있습니다. 제가 좋아하는 작가님들의 공통점이요. 알랭 드 보통, 유발 하라리, 에릭 와이너...... 제 남편은 머리숱이 참 많은데 말이죠. 제가 흠모하는 작가님들의 머리를 보고 혼자서 슬그머니 웃음이 나왔습니다. 요즘 제 정수리의 머리숱이 점점 적어져서 고민이 많았거든요. 혼자서 제멋대로 결론을 내렸습니다. 제가 작가님들의 지식과 지혜를 닮아가면서 머리숱이 적어지나 보다로요. 이렇게라도 위안을 삼으려고 합니다.
제 복잡했던 머릿속은 상관없이, 이번 '좋아요' 작은 해프닝의 승자는 작가님인 것 같습니다. 무심코 누른 '좋아요' 하나로 한국에 골수팬 한 명이 늘었고, 팔로워 한 명이 늘었고. 책 판매수도 늘었으니까요. '좋아요'를 보자마자 좋은 감정을 주체 못 하고, 곧바로 작가님의 모든 책을 결재했거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