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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온화 Nov 10. 2021

낯선 할아버지의 초대

 처음 본 할아버지 집에 다녀왔습니다.

 

 중학생 아들이 야구 동아리 활동을 합니다. 친한 친구들과 만든 자율동아리인데, 일주일에 한 번씩 모여서 동아리 활동을 하더라고요. 한참 커가는 성장기여서 그런지 손의 크기가 하루가 멀다 하고 쑥쑥 큽니다. 잘 쓰던 야구 글로브가 금세 작아졌더라고요. 글로브를 새로 장만하기로 하고, 집 앞 마트에 가보기로 했습니다. 장도 볼 겸 온 가족이 나섰어요.


 마트의 스포츠 용품 매장을 둘러보았습니다. 저희 가족은 다섯이다 보니, 어딜 가도 복작복작합니다. 남편과 큰 아들은 글로브를 둘러보고, 둘째 아들은 농구공을 보고 있었습니다. 막내딸은 호기심으로 여기저기 구경하고, 저는 막내딸을 쫓아다녔고요. 그런 저희 가족을 한 할아버지가 유심히 보고 계셨나 봐요.


 조심스럽게 말씀을 건네십니다.

 "야구 글로브 찾나 봐요.

  그... 우리 집에 남는 글로브가 있는데,

 괜찮으면 갖다 쓸래요?

 깨끗한 거예요."


 저와 남편은 잠깐 당황했지만, 할아버지 말씀을 계속 들었습니다.

 

 잠깐 마트에 들르셨다가 저희 가족이 눈에 띄었나 봐요. 다섯 가족의 모습이 참 좋아 보이더랍니다. 아이들이 예뻐 보이기도 하고요. 그래서 실례인 줄 알면서 말씀을 건네셨다고 해요. 집에 있는 글로브가 생각나기도 하셨고요.


 어르신이 저희를 좋게 봐주시니 감사한 마음이 먼저 들더라고요. 글로브 갖는 문제는 나중으로 생각하고 우선 인사를 드렸습니다. 저희 가족 예쁘게 봐주셔서 감사하다고요.


 할아버지께서는 감사 인사를 받으신 후에야 편안하게 웃으셨습니다. 쓰던 글러브도 괜찮으면 연락 달라고 말씀하시면서 전화번호를 주시고 헤어졌습니다.


 전화번호를 받고 저희 부부는 고민했습니다. 정말 전화해도 되는 건가 해서요. 전화번호를 이렇게 교환해본 일은 처음이라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더라고요. 사실 겁도 났습니다. 처음엔 마냥 감사하기만 했는데 집에 돌아와서 곰곰이 생각해보니, 뉴스에서만 보던 무서운 일들이 생각나며 조심스러웠습니다. 

 좋은 할아버지일 수도 있는데... 

 저 혼자였으면 못했겠지만, 남편과 함께여서 약속 장소와 시간을 정했습니다.


 글로브에 대한 답례로 할아버지께 드릴 소소한 간식거리를 준비했습니다. 그리고 약속한 날짜에 다시 전화드렸습니다. 이런, 할아버지께서 지금 집에 계시다고 그냥 집으로 오라고 하시네요. 주소를 거리낌 없이 바로 알려주십니다. 소심한 저는 또 걱정을 하기 시작합니다. 처음 본 사람한테 이렇게 주소를 바로 가르쳐 주시는 분이 처음이다 보니, 무서운 일들이 또 떠오릅니다. 하지만 남편은 무슨 일 있겠냐고 하네요.


 할아버지가 또 전화를 하십니다. 아파트 지하주차장이 복잡하니까, 주차장 정문에서 우회전하고 좌회전하고...  세세하게 알려주십니다. 금세 걱정스러운 마음이 쏙 들어갔습니다. 마음 쓰시며 알려주시는 모습에서 친정아빠가 떠오르기도 했어요.


 할아버지께서는 마중까지 나오셨습니다. 지하로 내려오셨어요. 멋쩍게 웃으시면서 '지하주차장이 복잡해서.' 라며 말끝을 흐리십니다. 마트에서 뵀을 때보다 더 멋지게 옷을 차려입으신 할아버지를 따라 저희 부부는 집까지 들어갔습니다.


 할아버지 집은 여느 가정집의 모습과 마찬가지였습니다. 깔끔했습니다. 그런데 유난히 썰렁하게 느껴지더라고요. 할아버지는 현관에 들어서자마자 큰 봉지에다가 이것저것 담기 시작하십니다. 눈에 보이시는 것들 중에 쓸만하다 하면 다 담으시는 것 같았어요. 저희 갖다 쓰라고요. 손 세정제, 마스크, 청소 세제... 괜찮다고 말씀드려도 할아버지는 필요 없는 물건이라 쓰지 않는다면서 기어코 계속 담으십니다. 그러고선 부엌 식탁에 앉으라고 하시네요. 무슨 커피 좋아하냐고 물으시면서 집에 있는 커피 종류를 다 꺼내십니다.


 그 큰 집에 할아버지 혼자 사셨습니다. 두 아들이 있다고 하십니다. 작은 아들은 근처에 사는데, 일 때문에 바쁘다고 하네요. 큰 아들은 결혼하자마자 주재원으로 해외에 간지 5년이 넘어가는데, 그곳에서 사업을 시작한다고 합니다. 외국에서 태어나 한 번 밖에 보지 못한 채 4살이 돼버린 손주도 있었습니다. 너무 예쁘다면서 사진을 보여주셨어요. 큰 아들이 사업을 시작하면서 며느리도 일을 도와야 하는데, 손주 봐줄 사람이 없어서 할머니도 외국으로 가셨다고 합니다. 혼자 지내신 지 한 달이 되었답니다. 


 이제야 할아버지의 모든 행동들이 이해가 갔어요.

 사람이 그리우셨나 봅니다. 그래서 유난히 복작거렸던 저희 가족이 더 눈에 밟히셨나 봐요.


 많은 이야기를 하십니다.


 집을 나서는 길에 글로브를 챙겨주시면서, 뭘 계속 꺼내십니다. 아까 저희 주려고 담으셨던 봉지도 가득 찼는데 계속 찾으세요. 제가 챙겨갔던 소소한 간식거리가 민망해질 정도로 계속 챙겨주십니다. 친정 부모님이 챙겨주시듯이 말이에요.


 마음이 착잡합니다. 부엌일이 아직 서툴러 보이셨는데, 끼니는 제때 챙겨 드시는지. 작은 아들이 가까이에 있어서 그나마 다행이지만, 같은 집에 사는 게 아니다 보니 그것도 걱정되더라고요.

 무엇보다 저희한테 하신 것처럼 아무한테나 주소를 알려주시고 집에 초대할까 봐. 그것도 걱정되었습니다. 어르신이다 보니 주제넘어 보일까 봐. 모르는 사람한테 주소 알려주지 말라고 말씀드리진 못했지만, 지금도 걱정됩니다. 세상이 무섭잖아요.


 할아버지께서 주신 글로브는 너무 좋았습니다. 맛있는 커피도 따뜻했습니다. 그런데도 할아버지 집을 나서는 마음은 무거웠습니다.


 할아버지의 글로브는 각박한 세상에서 느낄 수 있는 이웃의 따뜻한 정이었는지. 가족과 떨어져 지내는 고독한 노인의 쓸쓸함이었는지. 정확히 한 단어로 단정 짖기 어려웠습니다. 고마움과 안쓰러움. 따뜻함과 답답함. 양면의 감정이 한꺼번에 느껴졌습니다. 거기다 할아버지의 따뜻한 정을 색안경 끼고 경계했던 제 모습이 겹쳐지니 더 씁쓸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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