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온화 Aug 18. 2023

퇴직했습니다. 거창하지 않은 퇴직이에요.


 퇴직했습니다.

 거창하지 않은 퇴직이에요.


 몇 십 년 힘들게 다니다가 퇴직한 회사도 아닙니다. 뚜렷한 목표의식이 있어서 그만둔 회사도 아니에요. 그렇다고 회사에서의 불합리함을 못 참고 정의로운 전사답게 멋지게 퇴직한 회사도 아닙니다.

 경력단절로 10년의 전업주부 생활을 하다가 운 좋게 취직된 연구소였습니다. 좋으신 분들과 재미있게 연구소 생활을 2년 정도 하다가 개인사유로 퇴직했습니다. 연구소 대표님께는 이사를 가야해서 어쩔 수 없이 회사를 그만두어야 된다고 퇴직이유를 말씀드렸는데요.

 결론은 이사 하루전날 급작스럽게 이사가 취소되었고요, 집안 분위기는 엉망이고, 수입은 0원입니다.


 퇴직을 해서 지금 제 상황이 어떻고, 앞으로 어떻게 살겠다. 혹은 '똑똑한 퇴직 생활'같은 제가 잘 모르는 이야기를 말씀드리려는 건 아니에요. 그냥 제 삶에 또 하나의 마침표를 찍고 싶어서 퇴직했다고 말씀드립니다.  


 책 읽기도 좋아하고, 글쓰기도 좋아했지만. 회사생활 하는 동안은 좋아하는 일을 하기가 참 어렵더라고요. 그런 의미로 회사 생활하면서 책도 읽으시고, 글도 쓰시는 분들이 참 대단해 보였습니다. '시간이 없다.'라는 말을 한심한 변명으로만 생각했었어요. 실제로 회사생활 하며 아이들을 키우다 보니, '시간이 없다.'라는 말이 절실하게 느껴졌습니다. 예전에는 '시간이 없으면 자는 시간을 줄이면 되잖아. 시간이 없다는 말은 참 무능력해 보이는 말이야.'라고 생각했었는데요. 막상 제가 시간이 없다고 느끼다 보니, 정말 시간이 없더라고요. 읽고 싶은 책은 점점 쌓이는데, 해야 할 일은 다 끝나지 않고. 자는 시간을 줄이자니 더 이상 줄일 잠은 없고요. 침대에 언제 누웠는지도 모르게 잠에 빠져버리기 일쑤였습니다. 정말 정신없는 지난 2년이었습니다. 저의 저질체력도 다시 한번 뼈저리게 느끼는 계기도 되었고요. 

 

 그래도 통장에 들어오는 돈을 보며 즐겁게 연구소에 다녔었는데 말이죠. 오랜만에 사회생활을 하다보니 살아있다는 느낌도 들고 참 좋았습니다. 누구 엄마가 아닌 온전한 제 이름으로 불리는 느낌도 좋았고요. 아이들과만 하는 대화가 아닌 어른들과 하는 대화도 좋았습니다. 무엇보다 출근 후에 여유있게 마시는 커피 한잔이 그렇게 꿀맛이었어요. 회사에서 일하느라 몸은 피곤했지만, 마음은 정말 즐거웠습니다. 


 지금 제 상황은 정말 복잡다난한 상황입니다. 제 상황을 자세히 글로 쓸 용기도 없고, 터놓고 말할 수 있는 사람도 옆에 없지만. 그냥 좋아하는 책을 읽고 글을 쓰며 하루하루를 보내보려고 합니다. 아이들을 보살피며 해야 할 일들을 묵묵히 하면서요. 편안한 시간은 아니지만 그래도 책 읽을 시간이 있다는 사실 하나에 감사함을 느끼려고 마음을 다잡습니다. 이렇게 브런치에 글을 올릴 시간도 있고요. 퇴사만의 마침표가 아닌, 여러 의미의 마침표를 제 인생에 찍고 다시 시작해 보려고 합니다. 제 장점인 꾸준함을 무기로 매일 책을 읽고, 매일 글을 쓰고 꾸준히 하루하루 지내보려고 합니다. 그러면 무언가 보이겠지요.

 

 저는 거창하지 않은 퇴직자이지만, 퇴직하시는 모든 분들과 새로 시작하시는 모든 분들에게 진심 어린 응원을 전해드리고 싶습니다.


 
















매거진의 이전글 낯선 할아버지의 초대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