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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온화 Aug 29. 2023

밤 9시에 마트를 갑니다.


 집 앞에 대형 마트가 있습니다. 


 평소에는 잘 다니지 않는 마트에요. 집 앞에 있기는 한데, 차 타고 가자니 애매하고 걸어가자니 귀찮고 해서 거의 가지 않게 되더라고요. 집 앞에서 횡단보도만 건너면 되는 위치인데 말이죠. 


 하루는 저녁을 먹고 밤마실이나 잠깐 나가볼까 하고 슬슬 걸어 나갔습니다. 그날따라 유난히 날이 무덥더라고요. 그래서 그런지 집 앞에 있는 시원한 마트가 눈에 띄었습니다. 그때가 밤 9시 조금 넘은 시간이었어요. 에어컨 바람 좀 잠깐 느끼면서 장이나 봐볼까 하는 생각으로 마트에 들어섰습니다. 저는 장을 주말 오전에 보거든요. 밤에 마트를 가본 적은 처음이었습니다.

 

 밤의 대형마트는 완전 신세계였어요. 마치 시장에 온듯한 느낌이랄까요. 사람들도 꽤 많더라고요. 오히려 평일 오전보다 더 많은 느낌이었습니다. 1시간 있으면 마트문을 닫을 텐데, 사람들이 왜 이리 많은 걸까 궁금했습니다. 복작복작했습니다. 그중에서 사람들이 유난히 몰려 있는 곳이 있었어요. 사람 많은 곳부터 가보았습니다. 궁금하잖아요. 나이가 들면서 사람이 몰려 있는 곳에 안 가면 왠지 손해 보는 느낌이 들더라고요. 꼭 가봐야 할 것 같고요. 사람이 모여 있는 곳으로 직진했습니다. 세상에나. 물건 가격이 저렇게 낮아질 수 있구나를 새삼 느꼈습니다. 알고 보니 직원분이 가격표를 할인해서 다시 붙이고 있는 곳에 사람들이 모여 있더라고요. 


 수산코너는 기본 50% 세일을 했습니다. 저는 눈이 휘둥그레져서 고등어, 백조기, 알탕을 잽싸게 집어서 카트에 담았습니다. 그때 옆에서 쇼핑하는 부부의 대화소리가 들렸습니다. 아내분은 세일하는 생선을 사고 싶어 하셨고, 남편분은 싱싱하지 않아서 안된다고 사지 말라고, 두 분이서 티격태격하는 대화소리였어요. 귀 얇은 저도 50% 싸게 사는 생선은 싱싱하지 않은 건가 하는 생각에 잠시 망설였습니다. 하지만 상관없을 것 같더라고요. 오늘 오전에 정가에 팔던 생선을 밤이라서 50% 할인하는 거니까요. 어차피 마트에서 산 생선을 바로 요리해서 안 먹고 다음날 먹는 경우가 종종 있었거든요. 수산코너는 유난히 할인율이 높았습니다. 오늘 무조건 다 팔아야 해서 더 그런 것 같았어요. 50% 할인하던 상품들은 집에 와서 먹어본 결과 모두 훌륭했습니다. 고등어도 싱싱했고, 백조기도 맛있었고, 알탕도 정말 얼큰하니 좋았습니다.


 치킨이나 닭강정, 초밥 같은 식품을 파는 조리식품 코너도 할인을 많이 하더라고요. 종류마다 시간대마다 할인율이 달랐는데, 20%, 30%, 40% 요렇게 나눠져 붙어 있었습니다. 유제품은 유통기한 임박한 제품들을 한 곳에 모아두고 50% 할인을 했고요.


 처음에는 할인제품을 집어서 카트에 넣는 게 조금 어색했습니다. 같은 물건을 사는데, 저는 50% 할인 가격표가 붙은 제품을 사고, 옆에 예쁜 아줌마는 할인 제품이 있는데도 정가의 제품을 구매할 때요. 이런 경우는 뭔지 뭐를 이상한 기분도 들었습니다. 계산을 할 때에도 제가 산 제품에 모두 할인가격표만 붙어 있을 때는 부끄럽다는 생각마저 들기도 했어요.  잘못한 것도 없는데, 괜히 움츠러드는 느낌이 들더라고요. 어쭙잖은 체면치레 때문일까요, 알량한 자존심 때문일까요. 할인제품을 사는 게 제 체면을 깎고 제 자존심을 무너뜨리지는 않는데 말이죠. 상대적인 비교로 저 혼자 작아진 결과일까요. 모두가 다 할인제품을 사면 괜찮았을 텐데, 일부는 정가제품을 사고 일부는 할인제품을 사는 데서 오는 상대적인 비교로 인한 저의 움츠러듬이었나 봐요. 사실 필요 없는 움츠러듬 이었는데 말이죠. 밤 마트 마실 이틀 만에 '반값에 싱싱한 재료 사서 저희 가족들 맛있게 먹으면  좋은 거다.'라는 편안한 결론에 도달했습니다. 


 이제는 할인제품 사는 맛에 재미 들려 밤 9시의 마트를 더 좋아하게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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