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시골앓이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온화 Apr 11. 2022

화분의 꽃이 다 죽었습니다.


 화분의 꽃이 다 죽었습니다.


 꽃이 만발한 정원을 갖고 싶었지만, 마당 없는 아파트에 살고 있기에 대리만족으로 꽃 화분 몇 개를 샀었습니다. 베란다 마저도 없는 아파트여서 거실 한편에 화분 몇 개 갖다 놓고 마당이라 생각하며 지냈었어요. 그렇게 들여온 식물들을 두 달 정도 아끼면서 잘 키웠나 봅니다. 


 그러고선 화분을 잊어버렸습니다.


 오늘 갑자기 생각이 나 살펴보니, 화분이 모두 죽어있습니다. 생명력이 강한 아이들만 데리고 왔는데도 말이에요. 


 지난 한 해 동안 그렇게 원했던 귀촌과 귀농도 머릿속에서 사라졌습니다.

 

 마음의 여유가 있어야 귀촌을 생각하게 되는 건지.

 귀촌을 생각하게 되어서 마음의 여유가 생기는 건지.

 

 작년 1년 동안 시골에서 살고 싶어 많은 곳을 돌아다녔습니다. 시골집을 보러 다니고, 농사 지을 땅을 보러 다니고. 전국을 다 돌아다녔습니다. 그런데 그렇게도 하고 싶던 귀촌이라는 두 글자가 머릿속에서 한 순간에 사라졌습니다.


 큰 이유가 있는 것도 아닙니다. 그냥 생각지도 못하게 취직을 했을 뿐이에요. 회사를 다니게 되니 여유가 없어지고, 자연스레 시골을 생각할 틈이 없어졌습니다.


 느긋한 삶을 바라며 귀촌을 원했는데, 오히려 더 바쁜 삶을 살게 되었습니다. 귀촌에 대한 생각을 아예 못하게 되었어요. 집 안에 있는 식물 한 그루 돌볼 여유마저 없어졌습니다. 지난달에만 해도 분홍색, 하얀색, 빨간색 예쁘게 활짝 피어있던 꽃들이 갈색으로 말라비틀어졌습니다. 깡 마른 화분을 보고 있자니 속상합니다. 제 안의 여유도 갈색으로 건조하게 말라버린 것 같아서요.


 시골 살이를 원하는 소망이 잠깐 스쳐가는 호기심이었는지. 다른 삶에 대한 단순한 갈망이었는지.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 시골 땅을 찾아 헤매던 그 당시에는 진지했지만, 지금에 와서는 귀촌이라는 단어가 제 마음속에서 희미해졌습니다. 


 새벽에 출근해서, 저녁에 퇴근하고. 집에 와서는 바쁘게 집안일 하고 아이들을 돌보고. 반복적인 바쁜 생활이 익숙해졌습니다. 한가로운 삶을 바랐는데, 꽃 한 송이 돌볼 여유마저 빼앗겼습니다. 아이러니한 점은 이런 생활이 불편하지 않고, 평소의 내 모습인 듯 익숙하다는 거예요. 


 시골에서의 삶도 마냥 여유롭지는 않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시골에서 자연과 함께하는 자발적인 바쁨과, 도시에서 회사로 인한 타인에 의한 바쁨은 결이 다를 것 같습니다. 자연과 함께하고 내가 주도할 수 있는 삶을 원했는데, 원하는 삶의 색깔이 희미해졌습니다. 그냥 하루하루 살아가게 되었어요.  


 마음을 다잡고, 화분의 시든 꽃을 정리했습니다. 다행히 뿌리까지 죽진 않은 것 같아요. 잘 자라길 바라는 마음을 담아 정성스레 물을 듬뿍 주었습니다. 물이라도 제때 주었으면 이렇게까지 시들진 않았을 텐데, 미안함 마음이 듭니다. 꽃들이 다시 활짝 피길 바라면서, 제 마음의 여유도 다시 생겨나길 바랍니다. 



매거진의 이전글 베란다가 마당을 대신할 수는 없지만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