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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흰돌 Oct 25. 2023

원래 내 꿈은 얌전한 딸아이를 하나 기르는 것이었다

쌍둥이, 그것도 남자 쌍둥이를 가질 줄 몰랐던 날의 이야기


  M이라는 친구가 있다. 눈썰미가 좋고 센스도 뛰어난 그녀는 종종 친구들의 이야기를 들으며 "그럴 줄 알았어!"라는 말을 하곤 한다. 친구들이 전했던 앞이야기를 통해 뒷일이 그렇게 될 줄 본인은 대충 눈치로 짐작했단 뜻이다.


  그런 그녀는 결혼 후 주변 사람들이 아이를 하나, 둘 낳기 시작하며 관찰해 온 데이터 값에 본인만의 감을 더해 뱃속에 있는 아이의 성별을 추정하기 시작했다. 더 나아가 뱃속에도 없는, 향후 언젠가 태어날 아이의 성별을 가늠하기도 했다.


  그녀의 주장에 따르면 아들을 낳는 여자들에게는 딱 꼬집어 설명할 수는 없지만, 묘하게 시어머니와 같은 분위기가 풍긴다고 했다. 반면 딸을 낳는 여자는 친정어머니와 같은 느낌이 있다나.


  나로서는 설명을 듣고도 이해할 수 없는 세계라 그러려니 하고 흘려들었는데, 하여간 그녀는 내가 아이를 갖기로 노력한 기간 내내 확신에 차서 말을 했다.


  "넌 무조건 널 닮은, 얌전한 딸아이를 낳을 거야."


 ⓒ2023. delight.H(https://www.instagram.com/delight.hee/). All rights reserved.



  사람이 참 재미있는 것이, 처음엔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넘겼던 말이 예상보다 길어진 난임 기간을 거치면서 저도 모르는 사이 마음에 박힌 모양이었다.


  아이를 바라는 마음이 간절해질수록 나는 우리 부부 사이에서 태어날 아이를 상상하는 날이 잦아졌는데, 그때마다 내 상상에 자리 잡은 건 얼굴을 남편을, 성격은 나를 닮은 여자 아이였다.


  나는 아이를 옆에 앉히고 피아노를 쳤고, 어린 시절 내가 좋아하던 동화책을 읽어주었으며, 부족한 솜씨를 백 분 발휘하여 긴 머리카락을 예쁘게 땋아주었다.


  아이는 날 닮아 말수가 많진 않았지만 눈이 마주칠 때마다 애정이 담긴 미소를 지었고, 나는 그런 아이가 너무나도 사랑스러워 가득 안아줄 수밖에 없었다.


  남편과 나, 그리고 아이가 함께하는 집은 늘 정돈되었으며 기분 좋은 적막이 감돌았다. 가끔 트는 블루투스 스피커를 통해서는 내가 좋아하는 재즈가 흘러나왔고 화이트 톤으로 인테리어 한 집에는 계절에 맞추어 새롭게 구매한 액자가 걸려있었다.


  그것이 내가 가졌던 '아이'가 생긴 '우리 가족' 대한 꿈이었다.


  하지만 그로부터 몇 년이 흐른 지금, 우리 집의 현실은 상상과는 너무나도 동떨어져 있다.


  내가 가끔이나마 피아노를 치려하면 쌍둥이 아들들은 그새를 참지 못해 피아노 뚜껑을 닫아 내리고 집안은 정리하지 못한 장난감으로 난장판이 된 지 오래다. 가끔 트는 블루투스 스피커에서 흘러나오는 건 뉴욕풍의 재즈가 아닌 카봇과 또봇, 고고다이노와 캐치 티니핑의 오프닝뿐이다.


  소파 모서리를 밟고 올라가 액자를 잡아당기는 아이들 때문에 계절별로 바꾸어 달 예정이었던 액자 자리는 비어있으며 앞으로도 그 자리가 찰 일은 소원할 것으로 예상된다.


  꿈과 현실이 다르다고 마냥 좌절할 일은 아니다. 꿈보다 달콤한 현실은 분명 존재하기 때문이다. 나는 괴물이 된 나를 무찌르기 위해 뽀뽀 공격을 하는 아이들을 안아줄 때 그 누구보다 행복하다.


  하지만 그와 별개로 나는 쌍둥이 아이들을 내 '현실'로 받아들이기까지 생각보다 오랜 시간이 필요했다. 난임 기간부터 쌍둥이 임신부터 출산, 육아에 이르기까지 내가 막연히 그럴 것이라 생각했던 기대는 매번 빗나갔고 나는 예상과 다른 현실에 적응하기 위해 발버둥을 쳐야만 했다.


  임신과 출산, 육아는 예상치 못한 일 투성이다. 일종의 파도 타기와 비슷하다고나 할까. 그때그때 밀려오는 파도에 몸을 맞추어야 한다. 임시방편도 좋고 대충도 좋다. 어떻게든 그때의 파도만 넘기고 나면 또 새로운 파도가 밀려온다.


  일평생 산을 오르면 올랐지, 파도를 타본 적은 없던 나는 몇 번이고 파도에 휩쓸려 길을 잃고 바닷물을 잔뜩 들이마셨다. 앞으로 이어질 기록들 역시 '나는 어떻게 파도 타기에 실패했는가'에 관한 이야기가 될 것이다.


  그러나 과거의 나에게도 멋진 서퍼의 꿈은 있었다.


  그 꿈은 바로, 얌전한 딸아이를 하나 낳아 기르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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