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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흰돌 Oct 27. 2023

가장 힘겨웠던 건 난임 병원을 찾기까지의 시간


  스물일곱의 겨울에 결혼을 했다.

  또래 중에선 이른 편에 속하는 결혼이었다.


  이른 결혼을 결심하기까지에는 몇 가지 이유가 있었는데, 가장 큰 이유는 이 둘이었다.


  하나는 아버님의 정년퇴직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것이었고 다른 하나는 내가 결혼 후 이 년 정도는 아이 없이 남편과 둘이 생활하길 원했다는 점이었다.


  돌이켜보면 그때까지의 나는 흔히들 말하는 '삶의 궤도'를 한 치의 오차도 없이 성실하게 밟으며 살았다.


  초, 중, 고등학교 교육을 순탄하게 마쳤으며 비록 원하던 대학은 아니었지만 당시 집안 사정과 개인적인 욕망을 고려했을 때 차선이라고 생각한 대학에 한 번에 합격했다.


  대학 졸업장을 따기 무섭게 전공을 살려 취직을 했고, 그렇게 일하기 시작한 직장에서 남편을 만났다.


  남편과의 연애는 처음부터 안정적이었다. 나보다 다섯 살 연상인 그는 나와 교제를 시작하면서부터 자신은 결혼을 전제로 한 교제를 하고 싶다고 고백했고 나는 첫사랑과 결혼하는 것이 한때 목표였던 이였던 만큼 그의 진중함은 부담스럽기보다 기꺼웠다.


  대학 입학부터 취직, 연애와 결혼으로 이어지던 일련의 흐름은 무척이나 자연스럽게 이어졌다. 그랬기에 결혼 다음의 관문으로 느껴지던 임신과 출산, 그리고 육아 역시 어떻게든 잘 되리라는 근거 없는 확신에 차 있었다.


  확신에 금이 가는 데는 정확히 일 년 육 개월이 걸렸다.


  처음에는 피임만 하지 않으면 임신이 될 줄 알았다. 다음으로는 배란일에 맞춰 관계를 맺으면 임신이 될 줄 알았다. 하지만 임신과 동시에 처분할 요량으로 배송이 되는 최소한의 수량을 구입하던 배란테스트기가 동나고, 다시 구입하고, 또 다 쓰는 일을 여러 번 반복하는 동안에도 아이는 생기지 않았다.


  임신준비기부터 먹으면 좋다는 이야기에 챙기기 시작한 엽산 영양제를, 원래라면 아이를 이미 낳고도 남았을 시기만큼 오랫동안 먹은 뒤에야 나는 현실을 받아들였다.


  우리는 어쩌면, 아이를 갖지 못할지도 모른다.

  

  ……앞으로 평생, 계속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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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난임 병원을 찾기까지의 사정은 부부마다 다를 것이다.


  나처럼 쉽게 임신이 될 줄 알았다가 안 되는 데 놀란 이도 있을 것이고, 서른 후반이나 마흔 초반에 결혼하여 몇 달 임신을 시도해 보고 바로 병원을 찾는 이도 있다. 첫 아이는 쉽게 자연 임신이 되었는데 둘째가 오랫동안 생기지 않아 병원 문을 두드리는 사람도 있다.


  이유야 어찌 되었든 아이가 자연적으로 생기지 않는다는 것을 받아들이고 병원을 찾아가기까지는 큰 용기가 필요하다. 아니, 용기를 뛰어넘은 일종의 결단이 필요하달까.


  나는 살면서 많은 병원의 대기실에 가 보았지만, 난임 병원의 대기실만큼 조용한 곳을 본 적이 없다.


  그곳에는 아파서 신음하는 이도 없고, 긴 대기에 지쳐 칭얼거리는 아이도 없다. 삼사십 대의 성인들이 모여 조용히 제 차례를 기다릴 뿐이다. 이곳에 모인 이들의 본질은 '기다리는 사람'이기에, 그들은 기다리고 또 기다린다.


  자신들의 기다림에 끝이 있길 기도하며.




  세상의 많은 문제는 그것이 '문제'라는 것을 받아들였을 때 해결의 실마리가 보인다.


  나 역시 그랬다. 내가 '난임'이라는 걸 받아들이고 병원 문을 열기까지의 시간이 가장 고통스러웠다. '문제'를 '문제'로 받아들인 뒤에 이어진 절차는 오히려 놀랄 정도로 간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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