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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해달별꽃 Jun 27. 2021

'사랑한다'는 한 마디가 주는 전율, <오월의 청춘>

오월의 청춘(웨이브 드라마, 2021)

"희태씨 없는 오월은 싫어요" 


이토록 가슴 아리는 사랑 고백이 있었던가. 


올해 상반기에는 드라마 <오월의 청춘>을 재밌게 봤다. 


극 중 5회에서 황희태(이도현 분)를 향한 김명희(고민시 분)의 말 한마디는 단순한 고백이 아니었다. 참고 포기한 것에 익숙하던 한 여자의 용기이자, 어두운 시대 현실에 희생되어온 힘없는 시민의 아우성이었다. 


명희가 학창시절 군부에 끌려가 고문을 받았을 때, 그녀를 면회 온 아버지는 말했다. 무조건 "네"라고만 말하라고. 명희는 자신이 하지 않은 잘못을 왜 했다고 인정해야하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그녀의 태도는 사랑으로까지 옮겨갔다. 가난한 집안 형편에 동생들을 돌보는 역할까지 도맡아 해야 하는 명희는 자신의 삶에 불쑥 찾아온 희태에게 설렘을 느끼지만 감정을 잘 표현하지 않는다. 


아버지의 말대로 힘 있는 자의 말에 복종하며 없는 듯 지내왔기에, 사랑하는 마음 역시 나 아닌 다른 누군가를 위해 표출하지 않고 견뎌낸다. 심지어 사랑하는 사람에게 다른 여자와 약혼을 하라고 부탁할 정도로 철저히 감정을 숨긴다. 


이는 남녀 주인공의 돌직구 고백에 단련된 요즘 시청자들에게 고구마같은 갑갑함을 줄 수 있다. 그러나 사실 명희의 태도는 1980년대 군부 독재를 경험하는 소시민의 그것과 닮아있어, 오히려 더 큰 전율을 선사한다.  


희태를 끝내 밀어냈던 그녀가 약혼식 날 희태에게 자신의 마음을 고백했을 때, 마치 죽은 듯 살던 한 인간이 처음으로 '꽥'하고 자신이 살아있음을 알리는 것처럼 들렸다. 모든 걸 양보하고 포기하기만 해온 그녀가 처음으로 선택한 게 바로 희태였다. 



희태에게도 명희의 고백은 특별하다. 그는 보안부대 대공수사과 과장인 아버지의 감시 속에서 살아있어도 살아있지 않은 것 같은 기분을 느꼈다. 


그런 희태에게 숨통을 트이는 기분을 느끼게 해준 것이 명희인데, 사랑의 감정을 꾹 참는 명희를 보며 희태는 자신과 비슷하다는 생각을 했을 것이다. 그런 명희가 처음으로 속마음을 내비치고 용기를 낸 것은 희태에게 앞날에 대한 작은 희망을 안겨주었으리라. 


유복한 가정에서 자란 이수련(금새록 분) 역시 독재타도를 외치는 운동권 학생이라는 속내를 숨긴다는 점에서 이들과 크게 다르지 않다. 그녀는 사업가인 아버지의 뜻에 따라 원치 않은 정략 약혼을 했다.


청춘 남녀의 사랑을 내세워 시대의 아픔을 문학적으로 그려낸 <오월의 청춘>이 있기까지, 5.18 광주민주화운동을 이야기하는 여러 작품의 노력이 있었다. 


원치 않는 진압작전에 투입된 계엄군의 고뇌를 다룬 <황무지 : 5월의 고해>(1989)를 시작으로 광주의 공포의 순간을 한 소녀의 눈으로 담아낸 영화 <꽃잎>(1996), 진압군의 눈으로 광주를 바라본 <박하사탕>과 시민군 최후의 순간을 담아낸 <화려한 휴가>에 이어 <26년>, <택시운전사>, <김군>, 지난 12일 개봉한 영화 <아들의 이름으로>까지 '그날'을 기억하고자 하는 미디어 속 움직임은 끊임없이 이어졌다. 



<오월의 청춘>은 불안한 역사적 상황 속에서 사랑을 나누는 것도 자기 마음대로 할 수 없는 청춘들의 이야기라고 할 수 있다. 


사랑의 장벽이 부모나 신분 차이가 아닌, 시대적 현실이라는 점이 특별하게 다가온다. 또 넷플릭스 드라마 <스위트홈>에서 남매 케미를 보여준 이도현과 고민시가 연인으로 재회해 익숙하면서도 색다른 호흡을 맞췄다.


이제 내게 당분간 이도현은 황희태, 고민시는 김명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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