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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해달별꽃 Oct 08. 2021

난 기계가 아니야!

일과에 대한 고찰

어제 오후 3시쯤인가.


방광이 저린 느낌이 나서 상가 화장실로 뛰었다. 이 길로 가면 미팅에 최소 5분은 늦는다는 걸 알지만, 급했다. 비밀번호를 누르고 들어가야 하는 화장실인데, 다행히 누군가가 문을 여는 바람에 번거로운 일 없이 화장실을 사용했다.


가만히 멍 때리니, 현타가 왔다.


내가 왜 화장실 갈 시간조차 없을 정도로 일을 하고 있지?


누군가가 하루 일과가 어떠냐고 물으면 난 이렇게 답할 것이다. 나도 잘 모른다고.


시시때때로 바뀌기 때문에 근무지도, 출퇴근 시간도 명확치 않다. 내가 있는 곳이 곧 내 사무실이 된다. 어떤 때에는 합정의 카페가, 또 어떤 때에는 지하철 안 벤치가, 또 어떤 때에는 달리는 버스 안이 내 일터가 된다.


나의 일상은 휴대폰과 함께 흘러간다.


전화 한 통을 하고 새로 온 문자가 있는 지 확인한다. 매일 오전 9시쯤이면 대략 20개의 문자가 와 있다. 오후 2시쯤에는 추가로 10개가 더 왔을 때도 있다. 카톡방이 쉴 새 없이 업데이트 된다. 아래에 있던 방이 위로, 위에 있던 방이 아래로 내려간다.


사람을 끊임없이 만난다.


오후 12시쯤 점심 미팅을 하고, 남는 30분 정도의 틈에 기사를 하나 써놓고 오후 2시쯤 또 다른 미팅을 위해 이동한다. 어떤 때에는 오전 10시나 오후 5시쯤 취재를 하러 간다.


평범한 직장인이 보기엔 ‘사무실에만 박혀있는 우리와 달리 밖에 나돌아다니는 자유가 있어 부럽다’고 할지 모르겠지만, 문제는 그 만남이 친구와의 모임이 아닌, 업무라는 것이다.


밥을 먹고 차를 마시면서도 뇌가 계속 움직여야 한다.


그렇다고 해서 오후 6시에 근무가 끝나는 건 아니다. 어떨 때는 오후 4시쯤에도 퇴근을 할 수 있지만, 어떨 때는 새벽 2~3시에도 일을 한다. 오후 7시, 8시에도 업무 관련 카톡을 읽어야 한고 주말 오전 9시에도 상사의 업무 지시를 받는다.


나는 기계가 아닌데, 기계처럼 깨어있어야 한다. 어떤 때는 나를 사람으로 대하지 않는 이들에게 화가 난다.


화의 대상은 곧 타인이 아닌 나에게로 향한다. 왜 이렇게 툴툴대니? 왜 평화롭게 네 안의 갈등을 매듭짓지 못하니? 왜 일을 위해 너를 희생하니? 왜 너를 사랑하지 못하니?


미어터지는 연락에 숨이 턱턱 막힐 때면 연락 없던 시절을 생각하며 버틴다.


그땐 폰에 문자 하나가 오면 반가워서 확인했다. 그러면 광고가 와 있다. 연락할 사람도, 연락받을 사람도 없어서 이럴 거면 폰이 무슨 쓸모가 있나 생각했다. ‘까똑’ 하는 알림음이 계속 울렸으면 좋겠다고 상상했다.


그에 비하면 너무 행복한 지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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