핑클과 함께 한 아찔한 장기자랑의 추억
“오늘 물 흐르듯 자연스럽게 진행해주셔서 세션이 매끄럽게 흘러갔던 것 같아요.”
독서모임이 끝나고 멤버 S가 말을 건네 왔다. ‘물 흐르는 것 같은 진행’이라는 격한 칭찬에 몸이 배배꼬였다.
“어휴, 아니에요. 말을 얼마나 버벅댔는데요. 첫 모임이라 긴장도 많이 했어요.”
진심이었는데, S는 겸양의 표현으로 받아들인 듯 이렇게 답했다.
“긴장을 했는데도 그 정도면 말을 정말 잘하시는 거 아닌가요?”
내가 말을 잘한다고? 내 몸에 안 맞는 옷처럼 그 말이 쑥스러웠다. 이게 나한테 하는 말이 맞는지 믿을 수 없어. 저 사람은 립서비스가 훌륭해. 흥분된 마음을 다독였다.
말을 잘 한다는 칭찬에 이토록 몸둘 바를 모르는 것은 아주 오래전부터 꼭 듣고 싶었던 평가였기 때문이다.
스쿨버스를 타고 집에 왔는데 엄마가 안계시면 바로 울어버리는 아이,
화장실이 가고 싶어도 가고 싶다고 말하는 게 부끄러워 그냥 앉은 자리에서 오줌을 누는 아이,
수업시간에 선생님의 질문에 손을 들고 답을 못해서 웅얼웅얼 읊조리던 아이
그게 나였다.
사람들은 나를 ‘내성적이다’라는 한 마디로 표현하고 기억했다. 생활기록부에서도 ‘명랑하다’ ‘활발하다’ 보다는 ‘차분하다’ ‘온화하다’라는 말을 더 자주 볼 수 있었다.
사실 나는 오래봐서 편한 사람들과는 대화도 잘 하고 잘 웃는 명랑한 아이였다. 또 내면에 많은 친구를 사귀고, 인기를 얻고 싶은 욕망도 있었다. 그러나 나설 용기가 부족해 생각을 입 밖으로 내뱉지 못했다.
그런 내게 좌절감을 안겨준 첫 사건은 초등학교 1학년이던 어느 날로 기억한다.
한 사람도 빠짐없이 장기자랑에 참가해야한다는 선생님의 말씀에 깊은 고민에 빠졌다. 내 고민은 춤을 춰야하나? 노래를 해야하나? 하는 ‘방법’에 관한 물음표가 아닌, 내가 친구들 앞에 서 있을 수 있을까 하는 보다 근원적인 물음표였다.
당시 걸그룹 핑클이 1집을 냈는데, 디디알 배경음악으로도 쓰일 정도로 인기가 많았다. 친구들 사이에서 핑클 책받침을 비롯해 핑클빵, 멤버들이 착용하는 악세서리도 유행이 됐다.
그래, 이거다!
장기자랑 때 핑클의 ‘영원한 사랑’을 부르자는 결심을 했다. 당시의 나라면 절대 행동으로 옮길 수 없는 파격적인 용기였다.
핑클의 1집 카세트테이프를 사서(엄마에게 처음으로 뭔가를 사달라고 한 순간이었다) 필름이 늘어질 정도로 ‘영원한 사랑’을 들었다. 핑클이 나오는 무대는 빠지지 않고 TV 모니터링을 했고 각 소절에 어울리는 율동도 정했다. 부모님 앞에서 실전 같은 리허설까지 했다.
그때의 노래 연습이 조기 교육이 된 것인지 성인이 된 지금도 ‘영원한 사랑’은 전주 첫 1초만 들으면 바로 제목을 맞출 수 있다.
드디어 디데이. MC를 맡은 선생님께서 내 이름과 곡명을 발표하자마자, 친구들의 수군거림이 들렸다.
“쟤가 영원한 사랑을 부른다고?”
‘얘가 어떻게 하나 보자’라는 몇 십개의 눈동자를 의식하며 교실 앞으로 나갔다. 발걸음을 떼는 몇 초가 슬로우비디오처럼 더디게 느껴졌다.
매일 기대감과 응원, 의심과 실망감이 뒤섞인 시선을 감당해야하는 국가대표 선수와 연예인들은 어떻게 그 얼음같은 차갑고 딱딱한 기분을 견딜까?
음악을 틀고, 입을 뻥긋대는 4분 남짓한 시간이 희미하게 나마 머릿속 앨범에 남아있다. 준비한 율동도 못하고 전봇대처럼 다리를 땅에 박고 서 있는 한 소녀. 당장이라도 울 것 같은 표정으로, 정면이 아닌 옆을 바라보며 음정 박자 무시하고 노래를 부르는 모습이 벌칙 받는 것과 다름 없어 보인다.
학예회처럼 부모님이 보고 계시지 않아서 다행이라는 생각을 지금에 와서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