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해달별꽃 Oct 22. 2021

말보단 글, 입 보단 손

나는 어떻게 글을 쓰게 되었나?

입이 크면 말을 많이 하고 귀가 크면 잘 듣는다는 썰을 들은 적이 있다. 그 주장은 제법 일리가 있다.


실제로 입이 큰 내 친구는 말하기를 좋아하고, 은행원이라서 손님들과 쉴새 없는 대화를 나눈다. 반면 내 입은 조그맣다. 그렇다고 말수가 적은 것은 아니지만, 말 보다 글에 자신이 있다.


초등학생 때부터 고등학생 때까지 나는 반에서 이렇다 할 존재감을 뽐내지 못하는 아이였다. 아마 지금 동창들에게 내 이름을 언급하면 ‘그런 친구가 우리 반에 다녔었나?’ 생각하는 이들이 꽤 있을 것 같다. 


그 흔한 선도부도, 임원도 해본 적이 없다. 전학경험도 없어 내 소개를 할 기회도 없었다. 아, 분필 가루와 선생님의 침을 맞는 맨 앞자리에 앉은 적이 몇 번 있어서 맨 뒷자리에 앉았던 친구들은 더더욱 나를 잘 모를 수도 있다.  


종종 겁쟁이처럼 나를 알릴 일이 생기면 숨었다. 한자를 잘 쓴다고 한문 수업 시간에 서기로 뽑혔는데, 남 앞에 나서는 게 걱정이 되어 다른 친구에게 권한을 양보했다. 수업 도중 생기는 질문을 속으로 삼켰으며, 선생님의 물음에 옆 자리 친구도 안 들릴 정도로 중얼거렸다. 


그럼에도 내 이름이 동네방네 알려지는 드라마 같은 순간이 몇 번 있었다.


고등학교 국어시간에 선생님께서 여름방학 때 내주신 글쓰기 과제에 대해 피드백을 하시다가 갑자기 내 이름을 부르셨다. 


헉, 내가 뭘 잘못했나?


출석을 부를 때를 제외하고는 이름을 불릴 일이 거의 없었기 때문에 긴장했다.


“이렇게 열심히 글을 쓴 건 전체 학년 통틀어 너 혼자다” 


나중에야 다른 친구들은 1~2편 제출한 과제를 나는 10편 넘게 제출했다는 걸 알았다. 


이후에 교내 시화전이 1~3학년 전체 학생이 투표를 해 수상작을 뽑는 대규모 방식으로 열렸는데, 내 작품이 최우수상에 뽑혔다. 부름을 받고 교무실로 갔더니 선생님들이 날 보는 시선이 이전과 달랐다. 


특히 그동안 내 이름을 한 번도 불러준 적이 없던 문학 선생님께서 친근하게 다가오시더니, 작품 해설까지 하시면서 ‘흙속의 진주’라고 오글거리는 발언까지 하셨다.


그때 처음으로 내가 글쓰기에 소질이 있나? 생각했다.

작가의 이전글 내가 말을 잘한다고?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