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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해달별꽃 Oct 22. 2021

여유는 무수한 연습에서 온다

적극적인 발표자

출전했던 대회 중 하나가 바로 교내 중국어말하기 대회였다. 중어중국학과 전공생으로서 꼭 한번 도전해봄직한 기회라고 생각했다. 


나는 2학년이었고, 1학년과 3학년이 함께 겨룬다. 물론 주제의 난이도는 학년별로 달랐지만 전체 참가자 중에 1등과 2등을 뽑는 대회였다.


그전까지 학과에서 중국어로 튀는 학생은 아니었다. 중국에서 살아본 적도 없고 매 시험에서 수석이나 차석을 한 적도 없었다. 그냥 열심히 수업 듣고 적당히 지각도 하면서 학교에 다니는 평범한 인물 중 하나였다.


그런 내가 2학년 참가자로 모습을 드러내자, 다른 지원자들은 나를 생소하다는 표정으로 봤다. 나한테 말도 안 걸고 특별히 경계하는 눈빛도 아니었는데 그게 정신승리를 하는 데 도움이 됐다.  


각자 발표할 대본을 제출한 후, 참가자들은 정기적으로 소강당에 모여 연습시간을 가졌다. 소강당은 대략 100명은 앉을 수 있는, 계단이 있어 위에서 아랫방향으로 칠판과 교단을 내려다보는 구조의 공간이었다.  


일반 강의실과 다른 포스에 실제 대회 같은 긴장감을 느꼈다. 5분 남짓한 발표 시간에 준비한 말을 정확한 발음으로 다 하면서도 PPT가 넘어가는 것도 신경을 써야했다. 


속상하게도, 연습 때마다 한 번도 빠짐없이 실수를 했다. 말 할 문장을 까먹어서 자꾸 “죄송합니다”라고 말했다.     


다른 참가자들은 실수없이 잘 하고 무대를 내려가는데, 나는 자꾸 버벅댔다. 심지어 대회 하루 전에 치른 마지막 리허설에서 조차 틀린 부분을 또 틀렸다. 


그렇게 많이 읽어보고 외웠는데도 왜 실수를 하지? 의욕처럼 행동하지 못하는 나 자신에게 답답한 생각이 들었다.


전 국가대표 피겨스케이팅 선수 김연아는 빙판에서 넘어지면 손으로 땅을 박차고 일어났다고 한다.


‘그래, 이러고 있을 수만은 없어’ 


남들앞에 설 준비가 덜 돼 식은땀을 흘렸던 과거처럼 나한테 부끄러운 기억을 남기고 싶지 않았다. 몇 번을 넘어져도 다시 일어나겠다는 마음으로 나를 토닥였다.


리허설 현장을 빠져나와 아무도 없는 복도로 갔다. 휴대폰 녹음기를 켜고 실전에서 말할 속도로 대본을 읽었다. 그것도 잘 읽지 못해 몇 번의 NG가 났지만 여러 번 하다 보니 한결 매끄러워졌다. 


이를 통해 예상 시간을 쟀고, 실수를 해서 시간이 지연됐을 경우 어느 정도 속도로 말을 하면 규정 시간을 지킬 수 있는지 계산했다. 말할 시간이 빠듯할 경우 같은 내용을 다른 표현으로 어떻게 말할지도 구상해뒀다. 


이제 대본에 의지하지 않고 녹음한 내용을 틀어 이어폰으로 들었다. 동시에 입으로 중얼거리면서 말하기 연습을 했다. 집중도를 높이기 위해 발표 내용에 어울리는 손 동작도 몇 개 정했다. 


처음엔 입이 귀에서 나오는 소리를 따라갔으나, 점점 입이 빨라지더니 나중엔 입에서 나오는 소리와 귀에서 나오는 소리가 겹쳐졌다.


지나가던 학생들이 흘끗보는 시선이 느껴졌지만 개의치 않고 중국어를 쏼라쏼라거리며 나와의싸움을 이어나갔다. 


그리고 다음 날, 나는 대회에서 1등을 차지했다.


내 이름이 불렸을 때 의외의 인물을 향한 관심이 쏟아졌다. 단상으로 나가기까지 시간이 더디게 흘렀지만, 초등학생 시절 친구들 앞에서 핑클의 ‘영원한 사랑’을 부르러 나갈 때와는 달랐다. 


말로 형언할 수 없는 뿌듯함과 벅차오름을 느끼며, 노력으로 이뤄낸 달콤한 성취를 즐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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