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를 보고서2
기자의 세계에선 ‘나와바리’(출입처)라는 말이 있다. 취재거리를 발굴하는 곳이라는 의미도 되지만, 침범해선 안되는 ‘선’이란 말이다. 이는 ‘목욕탕에서 타인의 신체를 촬영해서는 안 된다’, ‘다른 사람의 집에 함부로 들어가선 안 된다’와 같은 윤리적 규범과 맥락을 같이 한다.
내가 기자생활을 하며 엄격하게 배워온 게 바로 ‘베끼면 안 된다’는 것이다. 학보사 기자를 하던 20대 초반, 내 기사에 들어갈 사진을 찍어준 동료기자는 사진에 본인의 바이라인이 들어갈 수 있도록 강력히 요구했다. 4년 전 인턴으로 근무할 때 나는 남이 찍은 사진을 출처 기입도 없이 내 기사에 싣거나, 다른 사람이 쓴 기사를 ‘복붙’하면 혼나곤 했다.
같은 소재의 기사들이 쏟아져 나와도 ‘단독’을 단 기사는 당당하다. 왜? 내가 가장 먼저 썼으니까. 직접 취재해서 한 자 한 자 쓴 ‘내 것’이니까. 대학 논문이나 드라마 분야에서도 표절 논란이 자주 불거지는 것도 모두 이와 연결된 논리다. 그만큼 ‘콘텐츠’의 영역에서는 ‘선’이 중요하다.
그렇기에 선을 침범 당했을 때 나는 화가 난다. 상대가 아무런 죄책감없이, 구렁이 담 넘듯 마땅히 지켜야할 것을 지키지 않으면 드라마 ‘스토브리그’의 이세영 팀장처럼 인상 팍 쓰며 소리치고 싶다. “선은 니가 넘었어!”
오늘 오후, 우리 부서의 기사들을 읽어보다가 경악을 금할 수 없었다. 내 기사와 토씨하나 틀리지 않은 코멘트가 다른 기자의 기사에 실려 있었기 때문이다. 글쓴이는 우리 부서의 1년 후배였다. 그녀는 문제의 기사가 올라오기 1시간 전쯤 내 출입처 연락처를 물었었다. 그녀의 기사에서 발견한 코멘트는 내가 오늘 낮, 직접 전화 취재한 내용이었다. 당연히 그녀가 내 것을 베껴썼다고 오해할 수밖에 없었다. 베껴쓸 의도가 아니었다면 최소한 내 기사를 확인하고 자신의 것을 수정했어야 했다.
그럼에도 그 기자는 “A 선배가 기사를 봐준 것”이라며 책임을 전가했다. 자기 이름이 걸려 나가는 기사에 그토록 무심한 그녀도 그녀지만, 더 놀라운 것은 이를 전해들은 우리 부서 선배들의 태도였다. 문제의 선배 A는 내 이의제기를 듣더니 오히려 “니가 고쳐라”라는 식으로 말을 했다. 부장 B도 “신경쓰지 말아라”며 갈등을 덮으려 했다.
이런 사람들이 기자랍시고 자리를 지키고 앉아있다니. 맞춤법만 신경 쓰면 뭐해. 기본적인 언론의식이 없는데...재택근무만 아니었으면 난 그들에게 말했을 거다. “선은 니가 넘었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