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해달별꽃 May 10. 2020

'뚜벅이'가 된 이유

20대 리마인드

 



내 취미는 걷기. 내 발은 평발에 무지외반증까지 갖고 있어 같은 거리를 걸어도 남들보다 쉽게 피로해진다. 그럼에도 걷는 걸 좋아한다.

 

기분전환이 필요할 때면 집을 나가 무작정 걷는다. 많이 걷기 위해 대중교통을 타다 일부러 목적지와 멀리 떨어진 역에 내리기도 한다. 한바탕 걷고 나면 행복해진다. 아무런 무리 없이 걸을 수 있다는 것에서 에너지를 얻는다.

 

걷기 예찬의 저자인 다비드 르 브르통은 현대의 속도로부터 벗어나 자기 자신에게 충실할 수 있어 걷기가 좋다고 했다. 나는 내가 무사하다는 것을 느낄 수 있어서 걷기가 좋다. 걷기 사랑의 시작은 아이러니하게도 한 사고에서 시작됐다.

 

2015년 중국 북경에 있는 한 대학에서 유학을 했다. 평소처럼 아침용 간식을 사들고 등교를 하는데 왼쪽에서 자전거 한 대가 빠른 속도로 달려오는 게 보였다. 찰나의 순간에 자전거 운전자의 불안한 눈빛을 봤다. 멈칫하는 사이 자전거 바퀴는 내 복부 아래쪽으로 돌진했고 나는 공중에 튀어올라 바닥에 나동그라졌다. 강의동 앞에 있던 5미터 가량의 인도를 건너다 벌어진 일이었다.

 

쓰러져있는 내게 사람들이 몰려들자 자전거 운전자는 뺑소니를 쳤다. 그 사실을 인지하기엔 몸이 너무 아팠다. 자궁 쪽이 심하게 쓰렸고 다리와 엉덩이에 힘을 줘도 움직일 수 없었다. 덜컥 무서움이 앞섰다. ‘앞으로 못 걷게 되는 건 아닐까?’

 

다행히 못 걸을 정도로 사고가 심각하진 않았다. 대신 그 일로 골반 쪽 근육이 조금 손상됐다는 진단을 받아 몇 달을 절뚝이며 걸어야했다. 타지에서 불편한 몸으로 생활하는 것은 쉽지 않았다. 바지는 침대에 누워서 갈아입어야 했고 계단을 오를 때면 난간을 붙잡고 온 힘을 써야했다. 횡단보도를 건널 때 남들보다 속도가 느려서 차에 치일 뻔 한 적도 있었다.

 

스스로 걸을 수 있게 될 때까지 꼭 반년이 걸렸다. 그 이후에도 산 넘어 산이었다. 그 중에서도 걷는 게 부자연스럽다는 소리를 들은 게 타격이 컸다. 분명 남들처럼 걷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그게 아니라고 하니 나를 잃어버린 기분이었다.

 

내가 옛날에 어떻게 걸었었는지 기억이 나지 않아 사람들을 관찰하면서 자세 교정을 했다. 박자부터 자세까지 평범해 보이려고 매일 걷기 연습을 했다. 마치 세상에 태어나 처음 걸음마를 배우듯 모든 게 새로웠다. 숨 쉬는 일 만큼 당연해서 미처 인지하지 못한 온전한 일상의 소중함을 그때 처음 깨달았다.

 

그게 걷기에 대한 욕망에 불을 지핀 것일까. 걷다가 쓰러지더라도 마음껏 걷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2016년 여름, 포항에서 서울에 이르는 국토대장정에 도전했다. 아침 7시부터 저녁 6시까지 하루 평균 25km가량을 걸었다. 가져간 신발이 안 맞을 정도로 발이 퉁퉁붓고 하루에도 몇 번씩 발에 물집이 잡혔지만 마음만은 행복했다. 내가 이토록 잘 걸을 수 있다니! 그야말로 피 땀 눈물을 흘리면서 얻어낸 성과였다. 충만한 에너지가 샘솟아 온몸을 따스하게 감쌌다.

 

중국에서 겪은 자전거 사고에 감사한다. 상실의 경험이 있었기에 새로운 시작이 가능했다. 걷기의 기쁨을 알려준 중국의 뺑소니범 덕분에 나의 일상을 되돌아보게 됐고 내 몸이 나에게 베푸는 혜택을 온전히 누릴 수 있게 됐다.

 

걷기는 내게 더 이상 숨 쉬듯 자연스러운 일이 아니다. ‘초심을 일깨워주는 존재다. 원하던 직장에서 일을 하고 있으면서도 힘들다는 이유로 문득 관두고 싶어질 때, 바쁘다는 핑계로 친구와의 연락에 소홀해 질 때, 다른 사람이 가진 게 부러울 때 마다 걸으면서 마음을 가다듬는다. 일을 하고 있다는 것, 연락할 친구가 있다는 것, 내가 현재 가진 것이 얼마나 감사하고 소중한 것인지 생각한다.   

 

나는 오늘도 걷고 또 걷는다.

작가의 이전글 선, 함부로 넘지 맙시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