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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해달별꽃 Jul 03. 2022

3개월, 오아시스 없는 사막

다시쓰는 퇴사일기

3개월 반.


이번 부서에서 내가 버틴 기간. 누군가는 6개월도 못버티는 인내심이라 비하할 수  있다. 그런 말을 들어도 좋다. 내게는 3년이라 느껴질 정도로 길었던 시간이니까.     

 

“어휴, 난 대체 니 머릿속에 뭐가 들어있는지를 모르겠어. 내가 이해력이 부족한 건지 헷갈릴 정도라니까.”     


A는 기사를 봐줄 때마다 이런 말을 했다. 결국엔 내 글이 이해하기 어렵다는 말인데 그럴 때마다 내 안의 부정적 자아가 튀어나왔다. 어른들의 말이라면 뭐든 아니꼽게 들리는 사춘기 학생처럼 반론을 제기하고픈 마음이 솟구쳤다.     

 

(후배가 부족한 부분을 메꾸는 게 당신의 일이지, 이렇게 매번 푸념을 하고 생색을 낼 잘못은 아니지 않아요?)     

B는 A의 보좌관 같은 느낌이었다. A의 말이라면 뭐든 동조했다. 내가 B에게 한 말이 A에게 전해졌다. 뿐만 아니라 B는 내가 행동하지 않은 것도 A에게 왜곡해 전했다.  

   

“너 그렇게 살지 마”     


어느 날 A가 내게 다짜고짜 전화를 해서는 뱉은 말이다. 무슨 일인가 싶어서 들어보니 내가 A의 기사 제목을 베꼈다는 의미였다.      


(A가 내 아이템을 베낀 건데 왜 그렇게 말을 하지?)     


속이 부글부글 끓었다.      

“선배, 왜 제가 선배 제목을 베꼈다고 말씀하세요?”     


나의 물음에 A는 이렇게 답했다.     

“B가 다 말했어. 너 거짓말 할 생각하지 마.”     

(헐.)      


B가 상황을 잘못 전달한 것 같다. 당혹스러움도 잠시, A의 감정을 진정시켰다. 나는 아니라고 해명했고, 우리가 쓴 기사 제목을 한번 보자고 승부수를 던졌다. 그제서야 A가 꼬리를 내렸고, 나는 사과도 듣지 못한 채 전화를 끊어야했다. 모함 아닌 착각일 수도 있지만 왜 잘못하지도 않은 일로 혼이 나고 감정노동에 시달려야하는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B는 고맙게도 나와 개인 톡을 많이 해줬다. 장점은 정보 제공이었고, 단점은 업무 지시였다.     


B가 내게 내린 지시는 비공식적인 것들이 많았다. A를 비롯한 선배들과 논의가 된 건 줄 알고 B의 지시에 따랐는데, 굳이 할 필요가 없었던 경우가 종종 생겼다.      


언젠가 B는 퇴근 시간이 한참 지나 본인이 보고해야하는 걸 대신 해달라고 내게 부탁했다. 또는 팀이 챙겨야할 업무를 내게 시켰다. 퇴근을 하려고 노트북을 덮은 순간 연락이 와서는 업무 지시를 했다.      


또 다른 날 나는 B가 틀을 잡아준 대로 기사를 썼다가 한참이 지나서야 그렇게 하면 안된다는 걸 알게 됐다. 하지만 B는 책임을 지지 않았다. 그는 ‘아님 말고’ 하면서 선을 그으면 그만이지만, 나는 가뭄에 말라가는 식물 줄기처럼 지쳐갔다.     


이 사막에 오아시스 따윈 없었다. A와 B의 히스테리는 점점 심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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