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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해달별꽃 Jul 03. 2022

이런게 가스라이팅? "회사 가기 싫어"

다시쓰는 퇴사일기

A와 B의 히스테리는 점점 심해졌다.    

      

A는 입사 후 초창기 업무를 할 수 있도록 내게 인수인계도 안 해줘놓고 “너 몇 년차랬지?”라는 질문을 해왔다. 이 말은 단순히 몇 년차인지를 묻는 게 아니다. 대체 왜 이런 기본적인 것도 못하냐는 질책이다.

      

물론 A가 말하는 ‘기본’은 이 회사에서의 기본이므로, 다른 회사에서 일을 해온 내겐 생소했다. 하지만 로마에 와서는 로마법을 따라야 하기에 이방인인 나는 그저 A에게 “죄송하다” “수정하겠다”고 하는 수밖에는 방법이 없었다.      


그렇다고 A가 기본에 대해 차근차근 알려주느냐 하면 그건 아니었다. 


본인 밥그릇을 누군가가 뺏어갈까봐 경계하듯 내가 배울 만한 알맹이는 철저히 숨겼다. 그리고는 본인이 궁금한 것은 내게 쉽게 물어봤다. 내가 답을 안 하면 ‘근거없이 취재를 했냐’하면서 정보를 알게 된 경로를 꼬치꼬치 따져물었다. 그런 점은 어린아이 같았다.     


게다가 A는 자기 자신밖에 몰랐다. 밥을 먹으면서 대화를 할 때도 무작정 본인 이야기를 쏟아냈다. 그런 건 개개인의 특징이니 다 넘어갈 수 있는데 선배로서 치사한 건 꼴볼견이었다. 그는 내가 아무리 일찍 기사를 써도, 본인 업무를 끝낸 후에야 내 기사를 봐줬다. 


나는 종종 노트북 화면에 뜬 카톡창을 바라보며 기약없는 기다림을 견뎌냈다. 혹여나 몇분 확인이 늦는 날에는 “왜 이렇게 연락이 안되냐”는 말을 들어야 했다. 대부분 그날은 A가 감정적으로 쫓기는 날이었다.      


B는 젊은 꼰대스타일이었다. 나이는 나보다 3살 정도 위면서 세대차이를 느끼는 척을 했다. 처음 보는 사람들에게 내 나이를 마음대로 말하면서 본인과 나 사이에는 명확한 경력차이가 존재한다고 선을 그었다. 기존에 함께 일한 직원들(지금은 퇴사)을 험담하는 것은 물론, 다른 팀 사람들의 업무에 대해 이러쿵저러쿵 코멘트를 달았다.


기사 욕심도 많았다. 내가 피드백을 얻기 위해 보여준 아이템이 부족하다면서 까더니, 다음날 본인이 채가는 것만 봐도 그렇다. 예쁨받는 것이 직장생활의 목표인 사람처럼 사소한 것에도 생색을 잘 냈다. 아마도 둘째이겠거니 하는 생각을 했다(실제로 집에서 둘째라고 한다.)   


내가 이들과 일하는 동안 가스라이팅을 당했다고 생각하는 지점은 ‘자유’를 느끼지 못했기 때문이다. 분명 그들과 다른 공간에서 일을 하는데, CCTV로 생중계를 당하는 기분이었다. 회사로 출근하는 날에는 왜 출근했는지 문자가 왔고, 퇴근할 때는 “눈치 보다가 퇴근해” “쉬어”라는 등의 문자가 왔다.     


다른 말로 세뇌를 잘했다. 예를 들어 다짜고짜 후배 C를 언급하면서 “걔는 MZ세대”라고 말한다. 과거 A와 B는 C에게 밤 11시부터 시작해 다음날 새벽까지 이어지는 행사 팔로우를 시킨 적이 있다. C는 다음날 연차라는 이유를 들면서 이를 거부했는데, A와 B는 이후로 C에게 정이 떨어졌다고 한다. 


이 일을 내게 말하는 이유는 ‘너도 조심해’라는 뜻이리라. 그들의 노련한 후배 관리를 볼 때마다 ‘연애를 할 때도, 아이를 교육할 때도 이런 식 일까’ 하는 생각을 했다.      


(회사 가기 싫어.)     


매일 밤 불면증에 시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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