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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해달별꽃 May 31. 2020

초록이 먹고 싶어!

초록의 위로 5



내 배는 조미료에 반응한다. 건강한 음식을 먹으면 아무 문제 없는데 기름진 음식이나 매운 음식, 고기를 먹으면 꼭 난리가 난다. 체하거나 배탈 나거나 둘 중 하나다. 며칠 전 유명 체인점에서 차돌박이를 사 먹었을 때에도 마찬가지였다.


‘다디단 유혹’에 빠지는 걸 주의해야한다고 했던가. 양념장에 찍어 먹는 고기의 맛은 아이스크림만큼 달콤했다. 입안에 넣자마자 녹아 사라졌다. 그러나 식당 문을 나서자마자 화장실 신호가 왔다. 배에서 부글부글 소리가 났고 복부 쪽 피부가 아렸다. 몸에 힘이 쭉 빠져 하루종일 식음을 전폐하고 누워있었다. 배탈을 앓고 나니 한동안 식욕이 사그라들었다. 괜히 음식 잘못 먹었다가 약한 내 장을 또다시 들끓게 할 순 없지 않나.


일을 하다 보니 MSG 범벅 음식을 자주 먹게 된다. 외부 미팅을 할 때면 파스타, 나쵸 등 탄수화물 위주의 식사를 종종 한다. 이 외에도 매일 밤마다 빵, 튀김, 떡볶이, 짜장면, 라면, 칼국수 등 밀가루의 유혹에 쉽게 흔들리곤 한다. 이런 식사를 하고 나면 맛에 대한 본질적인 욕구가 채워지지 않는 기분이 든다.


평소 자주 들르는 채소가게로 향했다. 상추·가지·애호박·아삭이 고추 등이 상자에 투박하게 담겨있는 걸 보니 그제서야 내가 식욕이 돋았다. 내가 찾던 맛은 다름 아닌 ‘초록’에 있었다. 주저않고 애호박 2개와 가지 4개를 2000원에 샀다. 배탈에 이만한 약은 없다.


집에 오자마자 부엌으로 갔다. 애호박과 가지를 물에 깨끗이 씻어 잠시 두고 계란을 풀어 플라스틱 용기에 잠시 뒀다. 애호박은 보름달 모양으로, 가지는 반달 모양으로 썰었다. 속까지 잘 익을 수 있도록 두께가 너무 두꺼우면 안 된다. 이들을 밀가루에 묻힌 후 탈탈 털어 계란물에 입힌 후 달궈진 팬에 올렸다. 차악~! 차돌박이를 구웠을 때 나던 소리가 났다. 이거지~비오는 소리를 듣듯 잠시 자연이 주는 ASMR을 감상했다.


노릇노릇하게 구워진 가지 한 조각을 호호 불어 입에 넣었다. 뜨거운 김이 입안에 가득 찼다. 조심스럽게 씹으니 가지의 알싸한 즙이 터져나온다. 아무런 간을 하지 않았는데도 계란과 밀가루가 섞인 맛이 고소함을 전해준다. 그야말로 자연이 준 ‘선물’에 행복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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