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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해달별꽃 May 31. 2020

오늘도 '건행'합시다

내안의 상담소3


외조부모님을 모셨던 묘가 올해로 20주년이 된다. 슬픔이 극에 달했던 감정은 20년이 흘러 덤덤하게 바뀌었다. 예전엔 산소에 올 때마다 눈물이 났는데, 지금은 외할아버지·할머니를 봰다는 반가움에 오히려 미소가 지어진다.


추모공원 사무실의 규칙에 따라 납골당으로 이전 작업이 이뤄졌다. 인부 3명이 망치를 들고 묘를 해체했다. 탕탕! 하는 철소리가 귀를 자극하자 가슴이 쿵쾅거렸다. 외할아버지·할머니가 20년 사신 집이 철거되는 일이지 않나. 이 행위를 하면서 투덜거리고 ‘루틴’이라는 냥 담배를 태우는 인부들에게 약간의 분노도 일었다. 내 집이 파괴되는 걸 지켜봐야만 하는 재개발 지역 거주민의 마음이 뭔지 조금은 알 것 같았다.


흙을 둘러싸고 있던 돌들이 쪼개지고, 흙만 남자 인부들은 이번엔 삽을 들어 흙을 파내기 시작했다. 각자 하나의 삽을 드는 게 아니라 한 명만 삽을 쥐었다. 나머지 두 명은 삽에 연결된 굵은 밧줄을 한 쪽씩 잡고 당겼다. 쉬지 않고 흙을 안정적으로 퍼내기 위한 최적의 업무 분배였다.


흙을 파낸 지 30분쯤 지났을까. 바닥 긁는 소리가 나면서 관이 모습을 드러냈다. 관이 땅속 깊이 묻혀있다는 건 이번에 처음 알았다. 뚜껑을 열자 해골들이 나왔다. 처음 그걸 목격하고는 공포영화의 한 장면을 본 것처럼 움찔했다. 태어나 처음 보는 사람의 뼈. 인부는 흙 속에서 뼈를 골라내 툭툭 흙을 털고 수거용 상자에 담았다.


조금 시간이 지나자 혐오감이 사라지고 관찰 모드로 바뀌었다. 정말 TV에서 본 그대로의 모양이구나! 신기하게도 할머니의 금니도 보였고, 무릎수술 때 삽입된 스탱도 있었다. 돌아가실 때 넣었던 화투장도 관에서 발견됐다. 면으로 된 수의는 썩어 사라졌지만 시체를 감싸고 있던 나일롱 수의는 썩지 않고 그대로 형태를 유지하고 있었다. 나무로 된 관이 지금까지 썩지 않은 것도 이례적인 일이라고 했다.


두 분은 양지바른 야외 납골당에 한 줌의 재로 놓이셨다. 가루가 되기까지는 5시간도 채 안 걸렸다. 모든 것을 지켜보면서 이런 생각이 들었다. ‘더 많이 가지려고 싸워서 뭐하나’. ‘집착해서 뭐하나’  


이제 갓 서른이 된 사람이 말하기엔 너무 무거운 주제일까? ‘죽음’은 누구에게나 갑작스럽고 또 공평하게 찾아온다. 10살짜리 아이도, 40대 엄마도, 90대 노인도 바로 앞의 인생을 예측할 수 없는 것은 같다. 그렇기에 주어진 하루하루에 감사하고, 마음 편하게 시간을 보내는 게 사소하지만 중요한 행위일 것이다. 오늘도 건행 해야하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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