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년 전 수술이 런생 시즌2 열었죠”

‘중고 신입 러너’ 조인협①

by 아임유어엠버

올해 5월부터 시작한 <I am your ambassador project>가 어느덧 10회차를 맞았다. 일부러 필자에게 편한 장소가 아닌, 인터뷰이가 좋아하는 장소에서 대화를 진행한 것은 러너의 개성과 취향을 파악하고 편안한 분위기 속에서 인터뷰를 진행하기 위함이었다. 그 덕에 각기 다른 10곳의 장소에서 이색적인 러닝 썰을 들을 수 있었다.

그 중 가장 인상적인 한 챕터를 꼽으라면 단연 조인협 러너와의 수영 인터뷰다. 조 러너와의 인터뷰는 다소 급작스럽게 성사됐기 때문이다.


한창 가을 시즌 대회 준비로 LSD 훈련에 여념이 없던 지난 여름의 끝, 필자가 여의도공원에서 러닝을 하고 아이싱으로 한강수영장에 가서 혼자 수영을 해야지 하고 생각하던 어느 날이었다. 마침 한강수영장 입장 티켓을 한 장 갖고 있어서 이동을 하려던 찰나, 필자의 수영 계획을 들은 조 러너가 함께 가겠다는 뜻을 밝혔다.


필자와 조인협 러너는 올해 여름 지인을 통해 무료로 얻은 여의도 한강수영장 티켓 덕에 대화를 나눴다.



그 전까지 필자와 조 러너는 존재만 알던 사이였고, 대화를 나눠본 사이는 아니었다. ‘게다가 장거리 러닝을 하고 체력이 소진된 상태에서 수영을 하러 간다는데 선뜻 간다고 하다니?’ 속으로 ‘진심인가?’ 생각하고 있는데 마침 조 러너가 지인을 통해 받았다며 여의도 한강수영장 티켓을 내밀었다. ‘아무리 타이밍이 맞더라도 이럴 수가 있나?’


10번째 인터뷰는 그렇게 믿기 어려운 운명적인 흐름으로 시작되었다.


그날 그렇게 대화도 나눠본 적 없고 심지어 밥도 함께 먹어보지 않은 사이에 수영복을 입은 모습으로 조 러너와 대면했다. 휴식 시간에 썬베드에 앉았는데, 조 러너의 발목이 눈에 확 들어왔다. 복사뼈 부근 피부가 검정색에 가깝게 멍이 들어있었다.


조인협 러너의 발목에는 수술 자국이 남아있다.


큰 부상의 흔적인 듯해서 상처에 대해 물었더니 수술 자국이라고 했다.


양측 복사 골절. 원위 경비 인대의 파열 및 불안정성

조인협 러너가 2024년 초겨울 받아 든 수술확인서 병명 란에 적힌 내용이다. 그는 이 수술로 인해 몇 개월의 재활로 인한 러닝 공백기를 가졌다. 러너에게 신체 일부, 특히 발을 다치는 것은 가수에겐 목소리를 앗아가는 것과 비슷할 것이다. 게다가 조 러너는 2023년 JTBC 마라톤에서 풀코스 3시간 12분을 기록한 러너이자 아식스 에이레이서 1기로 뽑힌 바 있는 ‘뛰조’(인스타그램 계정 @ddwi_jo)다. 런생뿐 아니라 일상에도 영향을 미치기에 어쩌면 인생의 위기라고도 볼 수도 있었다.


수술 후 엑스레이 사진. <출처 조인협 러너>


하지만 그는 2025 JTBC마라톤 3시간 4분 58초라는 기록으로 약 1년 반만에 재기에 성공했다. 그것도 2년 전보다 뛰어난 기량으로 말이다. 그의 다음 목표는 2026년 서울마라톤 풀코스 3시간 이내 완주다. 그는 어떻게 부상을 극복하고 다시 웃을 수 있었을까. 그동안 어떤 변화를 겪었을까.



오뚝이처럼 일어선 거 참 대견하네요!

제가 그전에도 엄청난 실력자는 아니었지만 수술과 재활이 오히려 기록을 좋게 만드는 밑거름이 됐어요. 부상 당한 직후부터 러닝 지인들로부터 너무 많은 도움과 위로를 받았거든요. 그게 재활을 열심히 하는 동력이었죠. 이 인터뷰를 빌려 감사하다고 가장 먼저 감사인사를 드리고 싶어요.


구체적으로 언급하고픈 분이 있어요?

제가 수술 받은 병원이 구급차가 데려간 병원이 아니었고, 제가 러닝 훈련으로 몸담고 있던 러닝아카데미 ‘런위드 주디’의 권은주 감독님이 소개해주신 병원이에요. 그 병원에서 수술이 너무 잘 되었기 때문에 재기에 대한 믿음을 더욱 가질 수 있었어요.


수술 후 병원에서 회복할 때와 집에서 쉴 때 찾아와 준 지인들, 그리고 입·퇴원 시 차로 데려다준 지인들, 마지막으로 지방에서 올라와 챙겨준 여동생에게도 감사한 마음이에요. 이 일을 통해 그동안 러닝을 통해 좋은 사람들을 만나왔구나 라는 걸 다시금 알게 됐죠.


필자가 조 러너에게 가장 궁금했던 것은 재활하면서 겪는 심리적 불안감에 대한 거였다. 필자도 고관절 부상과 발 통증을 겪고 휴식기를 가진 적이 있다. ‘나도 이제 찐 러너의 세계로 들어가는구나’ 하고 부상과 유명 병원 방문을 긍정적으로 여기는 마인드컨트롤을 했지만, 어떤 때는 ‘왜 이런 일이 나에게 생겼을까’하고 우울에 빠지기도 했다. 뛰고 싶은데 못 뛰고, 남들 뛰는 걸 보기만 해야하는 마음은 속이 장작처럼 불에 타틀어가는 기분이다. 하지만 맹세하건데 ‘러닝을 이제 그만하게 되는 거 아닌가’ 이런 식으로 이별할 생각은 한번도 한 적이 없었다.


러닝을 앞으로 못하게 되는 건 아닌가 하는 두려움은 없었어요?

두려움보다는 ‘올해(2024년)안에 다시 걷기부터 시작해서 마라톤 완주까지 해보고 싶다’라는 의지가 생겼어요. 물론 ‘다시 달릴 수 있을까?’ 이건 러너에겐 본능적인 두려움인 것 같아요. 그래서 의지가 약해질 수 있다는 데에 충분히 공감해요. 뼈가 부러지거나 인대가 끊어지면 아무리 복구가 잘 되더라도 그 전만큼 재생의 강도나 경도가 회복이 되지 않는 게 사실이거든요. 하지만 수술이 잘 되었다는 믿음과 지인, 친구들의 격려는 곧 재기에 대한 자신감이 되었어요.


제일 힘들었던 게 뭐에요? 달리지 못한다는 거요?

아니요. 걷지 못하고 뛰지 못하고 그게 중요한 건 아니었어요. 제가 그동안 매일 느꼈던 성취감, 자신감에 대한 패턴이 사라진 게 컸어요. 누구는 아침에 일어나서 이불 개는 걸로, 개그맨 김영철 같은 경우 아침에 10분 독서하는 걸로 하루를 시작한다고 하잖아요. 저는 러닝을 하면서 하루를 개운하게 시작하거나 마무리하며 활력을 얻었거든요. 그런 중요한 취미이자 하루일과 중 중요한 루틴이 깨졌기 때문에 많이 힘들었어요.


수술로 인한 재활 시기를 어떻게 보냈어요?

제게 다리가 부러져서 생긴 휴식기는 저 자신에 대해 돌아보는 시기였어요. ‘왜 빨리 재활을 해서 러닝을 다시 하고 싶어?’라고 제게 물어봤어요. ‘다시 달리기 위해 재활이 몇 개월 걸리는지 이런 걸 왜 찾아보고 있지?’, ‘왜 재활 관련 책을 읽고 있지?’ 이런 질문들이요. 제가 왜 러닝을 해왔는지, 수개월 간 러닝을 못하는 와중에도 러닝을 안 놓고 사는지에 대해 그때 정말 많이 생각을 했어요.


그래서 답을 찾았어요?

네. 돌이켜보니 저는 러닝을 위해 보낸 하루하루에서 정신적인 만족과 안정감을 얻는 사람이더라고요. 도파민과 자신감을 주던 주체(러닝)가 하루아침에 확 사라져 버리니까 허전했어요. 결국엔 제 몸이 ‘달리기를 다시 하고 싶어!’라고 외쳤던 것 같아요.


그전엔 소중함을 잘 모르고 지냈었어요. 뭐든지 잃어봐야 소중함을 아나봐요. 부상을 계기로 러닝이 제게 어떤 존재인지 알았고, 아무렇지 않게 해오던 러닝을 더 귀히 여기게 됐어요.


부상으로 휴식기를 갖는 건 러너에게 통과의례 같은 거잖아요. 이 시기를 어떻게 보내면 좋을까요?

내가 처한 상황을 인정하고, 할 수 있는 최선의 것을 하면 된다고 생각해요. 제 경우는 잘 걸을 수도 없었기 때문에 걷기 위한 재활을 열심히 했던 거죠. 저는 러너들 사이에서 유명한 ‘마일리지는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라는 말을 떠올렸어요. ‘지금 할 수 있는 만큼 재활 운동을 하다 보면 언젠가는 다시 걸을 수 있겠지’라는 마음으로, 조급해하지 않고 천천히 회복에 집중했어요.


저는 대학교 전공이 간호학이고 첫 직업도 간호사였습니다. 특히 정형외과 병동에서 근무했던 경험 덕분에, 수술 후 회복 과정에 대한 의료적 지식과 확고한 신념이 어느정도 있었어요. 조급한 재활이 오히려 독이 된다는 걸 잘 알고 있었거든요.


(교과서대로 형식적인 답을 말하려는 게 아니라^^) 재활은 정말로 의사 선생님이 권고하는 시기에 따르시면 된다고 러너들에게 조언하고 싶어요. 조금만 컨디션이 좋아져도 재활을 앞당기고 싶은 마음이 들기 마련이지만, 무리하다가 다시 부상이 오면 오히려 재활 기간이 더 길어질 수 있거든요. 그래서 더더욱 조심할 필요가 있어요.


개인적으로 의사 선생님의 권고보다 더 보수적으로 재활시기를 가져가시는 것을 더욱 추천합니다.


그런 멘탈 관리가 현실에서 어떻게 도움이 됐나요?

천천히 그리고 신중히 재활을 하고 나니 ‘이제는 달려야겠다’ 싶었을 때 굉장히 잘 달릴 수 있었어요. 물론 복귀 직후에는 예전만큼의 그런 가벼운 느낌은 없었죠. 체중도 많이 불어 있었고 발목의 가동 범위도 아직 회복이 안됐으니까요. 그렇지만 어쨌든 나아지리라는 희망과 믿음이 있었어요.


본인이 왜 부상을 극복하면서까지 달린다고 생각해요?

꾸준히 달릴 수 있는 원천, 동기, 원동력은 사람마다 다양할 텐데 제게는 성취감과 자긍심이에요. 러닝은 그런 내면의 만족감을 얻을 수 있는 오락이자 저를 표현하는 행위에요. 버텨서, 제가 강한 것이라는 걸 증명하는 거죠. 강해서 남는 게 아니라 살아남아서 강한 거일 수도 있다 생각해요. 살아남는 사람들은 ‘즐겨온’ 사람일 수도 있고 ‘포기하지 않은’ 사람일 수도 있죠.



전 러너들이 단순히 좋은 기록 하나 남기려고 달리는 건 아닌 것 같아요. 봄이나 가을 시즌 대회를 위해 러너들이 거의 6개월을 훈련하잖아요. 저 역시도 대회 준비 과정을 고생이라고 생각을 안 하기 때문에 꾸준히 달리고 준비할 수 있나봐요.


러너들에게 해주고픈 말이 있어요?

당신이 지금 현재는 못 느끼겠지만, 하루하루 러닝을 한다는 것 자체가 엄청 감사한 일이라는 거요. 그리고 생각보다 많은 것을 얻고 있다는 것을요. 함께 뛰든 혼자 뛰든, 기록이 느리든 빠르든 간에요. 러닝을 하는 거에 대해서 좀 더 가치 있게 생각하면 좋을 것 같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