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각장애인 동반주로 배운 ‘배려’와 ‘공감’

데일리 러닝라이프, 임원규 러너①

by 아임유어엠버

임원규 러너는 2023년 10월, 마블런(10K 49분22초)으로 러너로서 첫 대회를 치렀다. 그때의 나이가 40대였으니 러닝계에 늦바람이 든 셈인데, 그의 성장세는 무서우리만큼 가팔랐다. 바로 다음해인 2024년 같은 대회에서 37분13초로 12분가량을 앞당겼기 때문이다. 그리고 올해 마블런에서는 하프로 1시간19분16초를 기록했다.


분명 대단한 성과이지만 필자가 인터뷰 대상으로서 임 러너를 주목한 것은 '기록' 때문이 아니다. 임 러너는 자신의 성취를 이루는 데만 심취한 러너가 아니다. 러닝씬에 속해있는 사람들과 동반자적 성장을 추구한다.


필자가 임 러너를 알게 된 계기도 이와 맞닿아있다. 그동안 두 번의 접점이 있었는데 2024년 시각장애인 동반주 훈련 프로그램(Trust String)과 발달장애인 동반주 훈련 프로그램(션샤인)이다. 또한 임 러너는 평소 러닝 외의 인생선배로서 따스한 조언을 마다하지 않는다.


“시각장애인 동반주 프로그램(VMK)의 경우 제 러닝 지인 중 선한 걸로 유명한 분이 매주 남산 동반주 훈련을 나가는 걸 보고 참여하게 됐어요. 그분이 제게 ‘시간되면 같이 가서 하자’ 계속 그랬는데 말만 ‘알겠다’ 하고 한 번도 간 적이 없다가 결심해서 하게 된 거에요.


시각장애인 동반주를 해보니 어떠셨어요?

너무 뿌듯했죠. ‘나도 누군가한테 도움이 될 수 있구나’. ‘달리기 잘 못해도 내가 이 사람의 눈이 되어 줄 수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래서 동반주자로서 대회까지 나가게 된 거죠. 책임감이 컸죠. 내가 이 사람을 잘못 유도하면 위험한 순간이 발생하니까요.


훈련만 할 생각이었고 대회까지 나갈 생각은 없었는데 큰 책임을 맡게 되어서 긴장을 엄청 많이 했어요. 그런데 조끼 유니폼을 입고 뛰어 그런지 사람들이 파이팅을 너무 많이 해주셨어요. 러너들도 알아서 저와 시각장애인을 피해가기도 하고, 보디가드처럼 양 옆에서 같이 뛰어주기도 하고요.


이 활동이 봉사라고 생각하시나요?

아뇨. 그냥 러닝 활동이라고 생각해요. 그리고 그분들한테 제가 조금이라도 직접적인 도움이 될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행복하더라고요. 사람은 자기가 어떤 역할을 하거나 필요한 존재일 때 뿌듯함을 느끼나봐요.


시각장애인 러너와 어떻게 교감을 시도하나요?

시각장애인 러너과 처음 인사할 때 저는 “동반주자 누구입니다. 오늘 같이 달리게 돼서 영광입니다”고 이렇게 얘기하는 편이에요.


한국의 경우, 장애를 다루는 인식이 발전을 했다지만 그래도 아직 한계가 있다고 봐요. 몸이 좀 불편한 사람이라고 간단하게 생각을 하면 되는데 차별이 남아있으니까요. 우리가 악의로 그런 표현을 하는 건 아닌데 시각장애인 입장에서는 본인과 뛰는 게 ‘자원봉사’라는 표현을 들으면 언짢을 수 있을 것 같아요. ‘일반인’ ‘장애인’이라는 표현 말고 ‘비시각장애인’ ‘시각장애인’ 이렇게 부르는 것도 비슷한 이유에서죠.


구체적으로 어떤 점에서 장애에 대한 인식의 한계를 실감하셨나요?

대회에서 시각장애인과 동반주를 할 때의 일인데요. 주로에 러너들을 헤쳐 나가면서 “죄송합니다. 시각장애인과 동반주를 하고 있습니다”하고 얘기하는데도 안 비켜주시는 분들이 너무 많았어요. 당연히 사람들이 비켜줄 줄 알았는데 안 비켜주더라고요.


어떤 반응이었나면, ‘시각장애인이 대수야? 눈 안 보이는데 마라톤 하는 게 뭐 자랑이라고! 너네가 왜 나보고 비키라 마라야’ 이거였어요.


인상 찡그리면서 저희를 쳐다보는 사람들을 보면서는 조금 아쉬웠죠. ‘아직까지는 한국이 시민의식이 부족하구나’ 했어요. ‘앞이 안 보이는데도 불구하고 노력을 하네’라고 생각하지 않는 부분이요.


시각장애인이 나 자신이고 내 가족이었어도 이렇게 배려하지 않았을까요?
임 러너의 말에 동감해 필자도 목소리를 높였다. 잠시 동안 설전이 오갔다.
엠버 : “빨리 달리는 건 아니어도 말을 계속 해야하고 옆사람이 다치지 않게 챙기면서 뛴다는 게 진짜 힘든 일이잖아요. 달리기만해도 숨이 턱턱 차는데, 앞뒤 러너들에게 조심하라고 말하는 것도 온 힘을 쥐어짜서 말하는 거고요. 그런데 왜 일부 러너들은 우리의 말을 못 들은 척하거나 무시를 할까요?”
임 러너 : “그냥 안 들려서 그럴 수도 있고요. 솔직히 저희가 비켜달라고 하는 것도 어떻게 보면 이기적인 거라는 생각도 드네요. 시각장애인과 뛴다는 이유만으로도 의기양양하게 ‘비키세요’할 권리도 없고요. 그렇게 말한다고 러너들이 순순히 응해서 길을 터주어야 할 의무가 없잖아요. ‘그래, 여력없고 안 비키고 싶으면 그래도 되지’ 이런 생각도 혼자 여러번 해봤어요.
엠버 : “결국 배려의 문제 같아요. 특히 대회 중 좁은 주로에서 자전거 타고 쌩 지나가는 분들. 욕까지 하실 때는 화나더라고요.”


나와 다른 사람과 교류할 때, 입장을 바꿔 생각하고 공감하는 능력이 중요한 거 같아요.

맞아요. 만약 내가 큰일을 당했거나, 내가 당사자의 부모고 친구다 그러면 위기감을 크게 느낄텐데 남의 이야기라고 들으니 공감을 잘 못하는 경우가 많은 것 같아요. 어떤 뉴스가 나올 때마다 ‘그랬나 보지’하고 대수롭지 않게 넘기는 사람을 보면 전 이런 생각을 해요. ‘저 사람들은 자기한테는 저런 일이 안 생기라고 생각하나’라고요.


‘나는 그런 일 안 당해’ 라고 답하는 사람한테는 정이 떨어져요. 공감대가 전혀 없다는 거니까. 사람을 완전히 이해할 수도 없으니 같은 마음을 느끼라는 건 아닌데 ‘그럴 수 있네’ 혹은 ‘그렇겠다’ 정도는 해줄 수 있잖아요.


나도 이런 상황이 될 수 있다는 거를 어느 정도 공감만 해도 절대 이 사람에 대해서 함부로 말 못하거든요. 사람들을 대하는 말과 행동도 공감력에 따라 달라지다 보니까 저도 공감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을 해요.

“제가 시각장애인들하고 같이 달리며 한 생각이 뭐냐면 ‘나도 언제 어떻게 눈이 안 보일 수 있다’였어요. 또 갑자기 못 걸을 수도 있고 귀가 안 들릴 수도 있죠.”



“실제로 저는 귀 한쪽이 안 좋아요.”

임 러너가 뜻밖의 고백을 했다. 가슴 속 깊숙이 숨겨둔 상처 이야기에 귀를 기울였다.

“코로나19 시국즈음 약간의 돌발성 난청이 왔거든요. 어느 날 자고 일어났는데 갑자기 귀 한쪽에 물이 꽉 찬 느낌이 들더라고요. 샤워하고 나왔을 때 먹먹한 느낌이랑 비슷해서 처음엔 물이 들어간 줄 알고 시간이 지나면 괜찮겠지 했는데 출근을 해도 증상이 사라지지 않았어요. 바로 회사 앞 이비인후과에 갔는데 의사가 ‘놀라지 말고 들으세요’라면서 돌발성 난청인 것 같다고 하더라고요.”


놀라셨겠네요. 갑작스러운 진단을 듣고 어떻게 하셨어요?

의사는 ‘안 좋은 이야기 밖에 안 나온다’고 인터넷에 검색해보지 마라고 하는데 검색을 안 할 수가 있나요? 2주일 안에 조치를 안 하면 100% 귀가 아예 안 들린다라고 하더라고요. 그래서 치료를 받긴 했는데 바로 낫진 않았어요.


제일 큰 원인이 스트레스래요. 이거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스테로이드를 고용량으로 복용을 해야 한다고 하더라고요. 그래서 처방을 따르긴 했는데 귀에서 이상한 소리가 들려요. 예를 들어 노래가 흘러나오면 노래 소리가 외계음처럼 들리고 음이 하나도 안 맞는 식이요.

그럼 달리는 데는 지장없나요?

5년이 넘어가다보니 지금은 많이 익숙해진 상태에요. 가끔 한 번씩 크게 어택이 오면 아예 못 움직여요. 앉아서 고개를 숙이고 가만히 1시간 정도 있어야 진정되더라고요. 운전 중에 증상이 있으면 큰일이죠. 그래서 최대한 스트레스 안 받으려고 하고요. 달리기를 열심히하는 이유 중 하나이기도 해요. 오히려 ‘더 열심히 해야겠다’라는 동력이 된 것 같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