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대 중반에 공황장애를 앓았다.
한창 취준을 하던 시절, 지하철 사람 무더기 속에서 가끔 숨이 차 했다. 출근길 사람들에 억눌려 겨우 중심을 잡고 서 있을 때면 콩나물 시루에 있는 기분이었다. 고개를 위로 쳐들고 숨 쉴 공기를 찾았다. 공기가 점점 사라져갈까봐 숨을 크게 쉬었다. 너무 답답할 때는 도착지가 아닌데도 중간에 내려 벤치에서 잠시 쉬기도 했다.
열차에서 나와 갈아타기 위해 한 층을 올라갈 때면 에스컬레이터가 아닌 계단으로 향했다. 에스컬레이터에 오르면 빽빽이 서 있는 사람들 때문에 숨이 막히지 않을까 두려워서였다. 차라리 다리가 힘들더라도 공간이 널널한 계단이 자유롭고 편했다. 식은 땀이 나도, 그날 정해진 내 계획과 일정을 모두 끝내야 직성이 풀렸다. 공황장애를 앓고 있었다는 것을 그땐 전혀 몰랐다. 그 정도로 내 몸을 챙기지 못했다. 나를 사랑하는 것에 서툴러 그저 꿈만 보고 달렸다.
세월이 흘러, 나는 이제 첫 직장이 아닌 곳에서 일을 한다. ‘막내’라고 불리지도 않고, ‘배우러 왔다’라는 말을 하기엔 나이가 많은, 그런 ‘중고 막내’급 위치에 이르렀다. 자소서를 쓸 일도 없고 토익 시험 점수를 올리려고 공부하지 않아도 된다. 내가 꿈을 이루기 위해 노력했던 지난날들을 흑백사진처럼 기억 저 편에 묻어두고 현재의 순간순간에 집중하면서 산다.
“이 회사가 처음이에요?”
일을 하다가 낯선 이에게 이 말을 들을 때면 내 머릿속 시간은 ‘플래시백’이 되는 것처럼 되감기 되기 시작한다. 과거라 해봤자 고작 몇 년 전인데 오랫동안 들여다보지 않은 탓에 기억에 먼지가 쌓였다. 뭐라고 답해야 할지 막막해진다. 연예부 기자였다고 해야할까, 드라마 피디라고 해야할까. 그것도 아니면 임용 공부를 했다고 해야할까. 그것도 아니면 꿈을 이뤘지만 힘들어서 현실에 타협한 사람이라고 설명해야할까.
나를 뭐라고 소개해야할지도, 내 정체성이 뭔지도 모르겠는 어정쩡한 이력을 가졌지만 아주 긍정적으로 생각하기로 했다. 나는 이야깃거리가 많은 사람이라고.
모든 사람들의 인생이 각자의 특별함을 지니고 있다. 나에게도 평생 잊을 수 없는 ‘블링블링’한 순간들이 있었다. 분량 한정으로 자‘소설’에 미처 담지 못한 것도 많다. 아직 누구에게도 말한 적 없는, 내 가슴속에만 고이 묻어둔 생생한 기억들. 땀 흘려 얻어낸 ‘내 것’. 이미 ‘어제’가 돼버린 이야기에 숨을 불어넣기 위해 많은 이들과 나누기로 용기를 냈다.
“내가 이리 열심히 살았소”라고 자랑하려는 게 아니다. 그 시절 나처럼 절박한 이들에게 공감과 위로를 건네기 위해서다. 때 묻었다고 느껴지는 순간에 과거의 순수했던 나를 되돌아보기 위해서다. 나조차도 조금씩 잊어가는 기억을 되찾기 위해서다. 내가 어떤 사람인지 알기 위해서다. 이제서라도, 과거의 나를 보듬고 사랑해주기 위해서다.
어제의 나와 다시 마주하는 마음으로 2016년부터 써온 메모장을 오랜만에 펼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