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애 첫 청력검사를 받았다
첫 사회생활, 실수에서 배운 것
24살, 난타 공연장에서 안내원 아르바이트를 했다. 수능을 치른 직후 카페 아르바이트를 잠깐 했던 걸 제외하면 난타 공연장이 나의 첫 직장이었다. 좋아하는 공연을 마음껏 볼 수 있고 무대를 꾸미는 데 작은 일이라도 기여할 수 있을 것 같아 도전했다.
안내원 업무는 예상보다도 많은 ‘멀티’ 능력을 요구했다. 고객이 뭘 물어보면 입으로는 응대를 하면서 귀로는 무전 소리를 놓치지 말아야했다. 중국어나 영어로 말하다가도 한국어로 안내해야했다. 마이크에 대답도 해야하고 동시에 고객에게 말도 해야하는 순간이 자주 있었다.
무전은 쿵쾅거리는 난타 소리가 겹치거나 여러 무전이 겹치면 말이 잘 안 들렸다. 또 공연 중간 조용한 씬에서는 무전 소리를 줄여야했다. 공연 전까지, 공연 도중, 공연이 끝나고 각 시간대 마다 꼭 무전을 듣고 답해야 하는 타이밍이 있어서 이어폰을 항상 귀에 끼고 있어야 했다.
이외에도 공연 도중 사진 찍지 말라고 적힌 팻말을 들고 객석 중앙을 걸으면서 눈으로는 객석에 문제가 없는지 공연장 전체를 훑어야 했다. 어둠 속에서 관객을 객석까지 안내할 때는 한 손에 손전등을 들고 오리걸음으로 계단을 걸어야 했다.
동료 안내원들은 이것들을 참 잘 해냈다. 왜 모두에게 들리는 무전 소리가 내겐 웅얼웅얼 들렸는지 모를 일이었다. 이어폰 음성을 제대로 듣지 못해 답을 못하거나 해야할 행동을 하지 못하는 등 실수를 저질렀다. 그런 나를 두고 회의 시간에 동료들은 대놓고 혀를 찼다.
“귀에 무슨 문제 있는 거 아니에요? 병원 가서 검사라도 받아봐요”
매니저는 락커룸에서 옷을 갈아입는 내게 슬며시 와서 아주 순진한 표정으로 말했다. 걱정의 말이 아닌, 비아냥거림이었다. 귀에 이상이 있는 게 아니면 이렇게 소리를 못들을 수 없다는 의미였다. 자존감이 와르르 무너져내렸다.
매니저가 락커룸을 나간 후, 긴장을 한 탓인지 손이 덜덜 떨렸다. 덕분에 유니폼 단추가 하나씩 밀려서 잠겼다. 다시 화살 같은 잔소리가 날라와 가슴속에 박혔다. “단추 하나 제대로 못 잠궈?!” 일을 못해 혼이 난다는 건 나를 작아지게 만드는 일이라는 걸 그때 처음 느꼈다.
그날 결심했다. 정말로 병원에 가봐야겠다고.
가족들에게는 이야기를 하지 않고 혼자 이비인후과를 찾았다.
“어디가 불편하세요?
“저... 귀가...”
“예?”
“청력 검사를 해보고 싶어서요”
그 말을 내뱉기까지 많은 용기가 필요했다. 평소 잠귀가 예민해서 작은 소리에도 잘 깨는 나였지만, 자존심 상하는 이야기까지 들은 이상 객관적인 확인도 필요했다. 정말 아무 문제 없다는 것을 확인해보는 건데 뭐 어떠냐고 스스로를 설득했다. 지잉 소리가 울리는 쪽의 손을 드는 간단한 검사 외에도 헤드셋을 끼고 하는 정밀검사까지 모두 마쳤다. 결과는 이상 무! 잔뜩 겁을 먹었던 마음이 놓였다.
지금 와서 그때를 떠올려보면 내가 나 자신을 사랑하는 방법을 몰랐던 것 같다. 처음이니까 누구나 업무에 익숙치 않을 수 있고, 적응하기까지 시간이 필요한 건데. 더 잘하라고 한 말들에 생채기를 입고 스스로를 깎아내렸던 게 아닌가 싶다.
무전 못 듣는다는 이유로 혼난 것 때문에 알바를 하면서 늘 위축돼 있었다. 오늘은 실수를 몇 번이나 할까? 오늘은 무사히 업무시간이 끝나려나? 마음 졸이고 눈치를 보느라 일하는 시간이 지옥 같았다. 그래도 시간이 약이라고, 하루에 10번 하던 실수는 5번, 5번 하던 실수는 1번으로 줄었고 6개월 즈음 됐을 땐 제법 능숙하게 업무가 몸에 익었다.
지금도 가끔 상사에게 혼나 자존감이 깎이고 긴장되는 마음이 될 때마다 나는 그 시절을 떠올린다. 그리고 훌훌 털어버린다. 지들도 뭐 처음부터 잘했나? 오늘 실수는 오늘 실수고, 내일은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는 거야! 라고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