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 밤 불면증에 시달린 이유
창밖을 보면 비는 오는데
괜시리 마음만 울적해
울적한 마음을 달랠 수가 없네
잠도 오지 않는 밤에
슬픈 노래는 듣고 싶지 않아
김건모의 '잠 못 드는 밤 비는 내리고'의 가사 같은 마음이 들 때가 있었다.
새벽 1~2시가 돼도 잠이 안 와서 말똥말똥 까만 천장을 바라보다가 밤을 지새우던 날. 미래에 대한 불안감과 현실에서 벌어지는 복잡한 일에 마음 졸이며 푹 잠이 들지 못했던 날.
그런 날이면 머릿 속에 음악을 하나 떠올리고는 거기에 집중하려고 애를 썼다. 잠 못 드는 잠 비는 내리고 외에도 '잊혀진 계절' '비상' '되돌리다' '말하는대로' 등 많은 노래 속 가사들이 내 수면제가 돼줬다.
그렇게 괴로움 속에 밤을 흘려보내던 시간들이 지나, 비로소 피곤에 쩔어 눕자마자 잠에 빠지는 시기가 되었을 때 나는 문득 궁금해졌다. 왜 그런 잡생각이 들었을까? 무엇 때문에 그토록 힘들어 했을까?
그에 대한 답은 어느 여름 날 불쑥 찾아왔다.
올해 7월 마지막주부터 시작된 장마가 8월 중순까지 이어졌다. 어느 날에는 저녁 7~8시경에 시야가 뿌옇게 될 정도로 폭우가 쏟아졌다.
밤에 아주 잠시 비가 멈춘 틈을 타 며칠간 쌓아둔 쓰레기를 버리러 나갔다. 분리 수거장에 도착하기도 전, 멀리서 ‘부스럭부스럭’하고 깡통이 부딪히는 소리가 들렸다. 이따금씩 CCTV로 쓰레기를 제대로 분류하는지 감시하고는 핀잔을 주는 총무인가 싶어 털이 곤두섰다.
가까이에 가보니 총무는 아니었다. 투명 우비를 입은 사람이 분리수거통에 머리를 박고 쓰레기를 뒤적이고 있었다.
흘끗 보고는 내 할일을 했다. 내가 집중하고 있는 것 외에 주위에서 벌어지는 일에 대해 신경을 두지 않는 편이다. 그런데 커다란 박스에 가져간 쓰레기 들을 다 버릴 때까지도 아까의 깡통 소리가 계속 났다. 그 소리가 유리 부딪히는 소리로 바뀌었을 때 즈음, 나는 마지막으로 ‘금속’ 통을 열어 콜라캔 2개를 부었다.
“방금 버린 거 캔이여?”
우비가 말을 했다. 화들짝 놀라 움찔했다.
우비는 쓰레기통에서 머리를 빼고 뒤돌아 인상을 쓰고 나를 봤다. 얼굴에 주름이 가득한 여자였다. 뽀글 머리색이 검은 걸로 봐서는 할머니는 아니고 60대 정도의 아줌마인 것 같았다.
어쨌거나 우비 아줌마는 옆에서 포대 하나를 질질 끌고 와 보여주면서 캔은 여기에 모아놓았다고 말했다. 자신에게 캔을 바로 주지 않고 통에 이미 버린 게 짜증이 나는 모양이었다. 그러곤 내가 콜라캔을 넣은 금속 통에 머리를 박았다. 동굴처럼 컴컴하고 깊은 그 통 안으로 빨려 들어갈 것처럼. 그 모습이 기괴해서 온 몸의 털이 곤두섰다.
“어휴, 제가 모르고 먼저 버렸네요. 죄송해요.”
아줌마 등 뒤에 대고 이렇게 말하고는 돌아서는데 기분이 찝찝했다.
아줌마는 저렇게 우비를 쓰고는 얼마나 많은 집 쓰레기통에 머리를 박았을까. 혹시 누군가가 하루 할당량을 채우라고 때리고 괴롭히고 있는 건 아니겠지? 이렇게 폐지나 공병을 주워 받는 돈은 해봤자 하루에 2000~3000원일텐데, 끼니는 때울 수 있을까. 비가 와도 이 일을 해야할 정도로 생계를 유지하기 어려운가 보다..라고 생각했다.
장맛비를 맞으며 주택가를 서성일 아줌마의 모습이 머릿속에 그려졌다. 생선가게 사장님은 몸에서 생선 냄새가 나고 통닭가게 사장님은 몸에서 기름 냄새가 나듯이, 우비 아줌마는 집에 가면 몸에서 쓰레기 냄새가 나겠지. 밖에서 일하고 들어온 엄마의 몸에서 쓰레기 냄새가 나는 걸 본 자식들의 마음은 얼마나 찢어질까. 상상의 나래를 펼치면 펼칠수록 가슴이 뻐근해졌다.
집에 돌아와 동생에게 이 이야기를 했더니, 동생이 말했다.
“내가 대통령이나 시장같은 갑부가 되면
그런 아줌마아저씨들, 폐지줍지 않게 만들거야”
새삼 동생이 어린아이같은 순수한 면이 있구나 하고 느꼈다.
나도 비슷한 포부를 가진 적이 있었다. 20대 초반이었나. 작은 몸으로 폐지가 산더미처럼 쌓인 커다란 수레를 끄는 할머니들, 새벽 일찍 쓰레기 차를 몰고 다니며 집앞 쓰레기를 수거해가는 일꾼들, 도로변을 걸으며 쓰레기를 줍는 환경미화원, 건물 안 화장실 청소를 하는 미화아주머니들, 식은 된장찌개 하나에 밥을 비벼먹으며 손님을 응대하는 시장 상인들을 보면서 다짐했다.
내가 피디가 되면 이렇게 고생스럽게 사는 이웃들을 위한 이야기를 만들거라고.
연민을 자아내기 위해서가 아니라, 이들이 있기에 우리가 편히 생활하고 있는 것임을 세상 사람들에게 알리고 싶어서였다.
그래서 피디가 되려고 준비하던 시절, 버스운전기사나 폐지줍는 노인을 등장인물로 한 기획안을 종종 썼다. 자소서에는 ‘소시민을 위한 드라마’를 만들고 싶다는 이야기를 자주 넣었다. tvN 드라마 <나의 아저씨>에 극중 지안의 할머니가 폐지 줍는 할머니로 나왔을 때 나랑 비슷한 생각을 한 작가가 있구나 싶어 기뻤다.
이런 내게 스터디 팀원들은 PD가 아니라 사회복지사가 되고 싶은거냐고 물었다. 자소서는 지원하는 족족 탈락했다. PD는 마음이 따뜻한 사람이 아니라 차가운 머리로 재미를 추구하는 사람이구나 하는 걸 그때 느꼈다. 자연스럽게 이웃에 대해 품었던 관심과 애정은 잊혀져갔다.
이젠 폐지줍는 사람들을 관찰하거나 따스한 말 한마디 건넬 여유가 없어졌고 이들의 삶에 대해 마음 아파할 겨를없이 바삐 길을 걸어다닌다. 비가 쏟아지는 날, 누구는 에어컨 팡팡 나오는 안락한 집에서 야식 배달을 시켜먹는데 누구는 밖에서 우산도 없이 비를 맞으며 내일 끼니를 위해 일하고 있다는 사실에 가슴이 미어졌다. 그토록 원하던 PD가 됐지만 비오는 날 돈 될 거리를 찾아 쓰레기통을 뒤지고 다니는 아줌마를 보고 그냥 지나칠 수밖에 없는 현실이 참 슬픈 밤이었다.
아마도 내가 한동안 불면증을 앓은 이유는 내 뜻대로 되지 않는 여러가지 일에 대한 답답한 마음 때문이었을 것 같다. 목표를 향해 열심히 걸어온 길을 보상받지 못하는 기분, 나 하나 감당할 여력이 없어 주위를 둘러보지 못하는 것, 지금 이렇게 사는 게 맞는가에 대한 고민들을 하면서 꿈만 바라보며 순수했던 과거의 나를 그리워했을 지도 모른다.
내 마음속에 잠들어있는
네가 다시 나를 찾아와
나는 긴긴밤을 잠 못 들 것 같아